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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30396217 |
|---|---|
| 쪽수 | 272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정치/사회 > 법학
AI추천 이유

들어가며
언론과의 인연에 대하여
철학을 전공했던 저는 한때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예비 언론인들이 모인 다음 카페 ‘아랑’에 상주하며, 작문 스터디에서 밤늦게까지 기사 작성을 연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언론사 공채에 도전했지만 글 쓰는 재주가 부족했던지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 좌절 이후 몇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결국 변호사가 되었고, 개업 변호사로서 법무법인을 만들어 대표 변호사가 되면서 눈코 뜰 새 없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언론과의 인연은 끈질겼습니다. 제 결혼식 사회를 맡아준 가장 친한 친구는 기자입니다. 제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알았는지 친구 덕분에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마감 전날까지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며 문자 그대로 산고의 시간을 보냈지만, 전국에 배포되는 신문에 제 이름과 글이 인쇄되어 나온 날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칼럼이 나오는 날 전날 밤마다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는 운 좋게 승소한 사건들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례 없는 판결이라 보도된 사건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알려진 의뢰인의 사건이 자연스럽게 기사화됐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기자님을 알게 되었고, 전문가 의견으로 제 생각을 실어주신 분도, 직접 인터뷰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자와 변호사로서의 인연이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쌓여갔습니다.
고단하지만 즐거웠던 공보이사 경험
2024년 봄,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이사 직책을 제안받았습니다. 평소 동경하던 기자들을 매일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제가 작성한 성명서와 논평이 전국에 배포되는 무게감 있는 직책이기도 했습니다. 경험도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때라 목을 걸지 않으면 기본도 못 하겠다는 막막함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게 큰 가르침을 주신 분이 지금도 스승님으로 모시는 기자 출신 특별보좌관님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모든 법조기자를 찾아다니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법원 기자실 명단을 손에 들고 점심이든 저녁이든 가능한 시간에 약속을 잡았고, 그 자리에서 기자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재판 때문에 서울중앙지법 서관에 갈 일이 있으면 괜히 기자실 앞 1층을 한 바퀴 서성이다가, 아는 기자님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서초동 곳곳에서 기자님들과 소박한 술자리를 가졌는데, 기사 배포를 부탁드리며 정중히 읍소해야 하는 날도 있었고, 명백한 오보를 두고 얼굴이 붉어져 언성을 높여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소주 한잔 기울이며 서로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운함과 고단함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이후 2025년 초봄에 대한변호사협회 제1 공보이사로 임명되면서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계엄 선포, 탄핵, 검찰청 폐지 등 과거에 참고할 선례가 없는 역사적 이슈들이 매일 터져 나왔습니다. 하루에 50통이 넘는 기자 전화를 받는 날이 적지 않았고, 수많은 성명서와 논평을 밤을 새워 쓰고 고쳤습니다.
무척 고단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고생한 공보 담당 부협회장님, 제2 공보이사님, 수석대변인님, 두 분의 대변인님이 없었다면,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늘 도움을 주셨던 법조기자님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모두 감사한 분들입니다.
비록 특출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늘 공보에 진심이었던 공보이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능력이나 재주가 없어 몸을 갈아 넣었고, 만 2년이 되자 건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뇨가 심해져서 매일 관리가 필요해졌고, 번 아웃이 와서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공보단 분들께 죄송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공보이사 업무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늘 많은 것을 느끼고 얻어가는 언론중재위원회
공보이사로 일하던 2024년 가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제안을 받았습니다. 공보 담당자로서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컸습니다. 고민 끝에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답했고, 인사 검증을 거쳐 중재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첫 조정기일을 앞두고는 밤잠이 설 만큼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공보이사 경험 덕분에 신청인과 피신청인이 겉으로 내세우는 주장이 아니라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양 당사자의 감정과 논리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첫 사건들을 모두 조정 성립으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기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인상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언론계 중재위원으로 위촉된 선배님들은 수십 년간 성실하게 기자의 길을 걸어온 기라성 같은 분들인데, 본인도 평생 기자 생활을 제대로 해서 언젠가는 그분들처럼 언론계 중재위원이 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평소 조정실에서 언론계 중재위원님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인생의 통찰을 옆에서 보아온 입장에서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재부에 함께 계시는 모든 중재위원이 훌륭하시니 자연스럽게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언제나 진심으로 모든 사건에 임하고 헌신하시는 조사관님, 언론중재위원회가 훌륭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무국 등 어느 하나 최고가 아닌 것이 없어 그냥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복과 겹쳐 언론중재위원회 내에서도 계간지 <언론중재> 편집위원회 위원도 하고 있습니다.
세 개의 창으로 본 언론의 풍경
공보이사로서의 시간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아침부터 울리는 기자 전화벨에 잠이 깨고, 문장 하나, 조사 하나를 두고 치열하게 줄다리기하며 우리 측 입장이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갖추도록 애써야 했습니다. 오보를 막기 위해서는 때로는 팩트로, 때로는 관계로, 또 어떤 때는 양쪽 모두를 총동원해서 설득해야 했습니다.
중재위원으로서의 시간은 ‘수술실’에 더 가깝습니다. 이미 포털과 SNS를 통해 널리 퍼진 기사 속에서 상처받은 당사자와 언론사가 한 테이블에 마주 앉습니다. “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라는 신청인의 절규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였습니다”라는 언론사의 항변 사이에서, 법리라는 메스를 손에 쥐고 어디를, 얼마나 도려내야 할지 매 순간 고민해야 합니다.
변호사로서의 시간은 이 두 경험을 하나로 꿰는 실이었습니다. 때로는 신청인 측의 관점에서, 때로는 언론사 측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던 덕분에 언론분쟁의 양쪽 얼굴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정 시각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관련 법령과 최신 판례를 꾸준히 확인하며 균형을 잡고자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제1편 공보 담당자의 언론 대응 실무는 기사가 만들어지는 가장 앞단의 이야기입니다. 공보 담당자는 어떤 방식으로 기자를 상대해야 하는지, 어떤 선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지, 오보가 났을 때 어떤 순서와 톤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기자에게 환영받는 보도자료는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제가 몸으로 겪은 시행착오와 그 끝에 얻은 노하우를 최대한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이는 단지 언론을 이기는 법이 아니라 언론과 어떻게 건강하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제2편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및 중재 실무는 이미 기사화된 이후의 분쟁 해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막연히 억울함을 호소한다고 해서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정정보도·반론보도·후속보도의 성격과 요건, 손해배상의 구조적 한계, 조정과 중재·소송 사이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지, 조정실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오가는지 실무자의 눈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공공기관·전문단체·기업에서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공보·홍보 담당자들에게 이 책이 심심한 위로를 주는 한편 체계적인 지침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 책이 언론보도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에 실질적인 구제 방법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절차를 염두하고 계시는 예비 신청인이나 신청인을 대리하는 변호사님에게는 실무 지침서가, 언론사 기자들과 언론 종사자들에게는 읽어볼 가치가 있는 참고서가 되길 바랍니다.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6년 봄
서초동에서
도진수 변호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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