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이 책을 향한 찬사
들어가는 글: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숨은 노동’
1장 서론: 단절된 세상을 잇는 연결노동의 힘
데이터지상주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 위험에 처한 인간의 연결 관계 | 편리할수록 외로워지는 ‘탈개인화’ 현상 | 기술의 ‘맞춤형 서비스’로 과연 충분한가 | 연결노동이 ‘진정한 개인화’를 이루는 방법 | 마음을 읽히는 경험이 왜 중요해졌나 | 이 책을 위해 진행한 연구 | 왜 ‘인간의 마지막 직업’인가
2장 연결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감정의 악수’가 일어나는 과정 | ‘아하!’가 따라오는 반영적 공명 | 사회 속에서 친밀함을 느낀다는 것 | 서로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주는 유익 | 연결은 목적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한가 | 마음을 읽는 자에게 일어나는 변화 | 연결노동이 만드는 존엄, 목적, 이해의 실
3장 자동화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연결노동의 기계화는 가능한가 | 자동화가 인간보다 낫다는 세 가지 이유: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인간보다 낫다, 함께해야 낫다 | 무분별한 자동화의 의도치 않은 결과: 연결노동의 은폐화, 데이터 수요의 증가, 인간의 의미 변화
4장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장인의 기술
연결이 ‘인간의 활동’임을 보여주는 증거들: 도구로서의 몸, 감정의 언어, 주고받는 과정에서의 협력, 연결의 즉흥성, 실수하고 실수 관리하기 | 고도의 협력이 긴장을 낳는 순간: 고객 중심성과 전문성의 긴장, 안전과 판단 사이의 긴장, 취약성과 지속성 사이의 긴장
5장 사회는 어떻게 연결노동을 부리는가
어느 의사의 산골 마을 적응기 | 사명감으로만 일하는 환경의 한계 |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지만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번아웃 | 수익이 중요한 기업형 사회구조 | 인간적 연결을 차단하는 플랫폼 경제 | 번아웃이 일상화된 연결노동의 풍경 | 개인 맞춤형 서비스의 맹점 | 사회구조의 실패가 낳은 대가
6장 연결을 어렵게 하는 일상의 시스템
수익 극대화의 압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 대본화와 표준화가 실무에 주는 이점 | 표준화에 따를 것인가, 관계를 추구할 것인가 | 효율적 시스템이 과부하를 낳는 아이러니 | 데이터로 연결노동을 측정할 수 있는가 | 노동자들은 과부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 산업 모델의 거대한 문화적 영향
7장 불평등한 현실 속 연결노동의 대응
연결노동이 권력이 되는 순간 | 수치심, 사회적 불평등, 섣부른 판단 | 마법 같은 경청의 귀 | 잘못된 판단이 낳는 오해와 상처 | 연결을 돕는 ‘판단 보류’ | 불공정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 | 구원자를 넘어 목격자로 가는 길 | 하인처럼 취급당하는 연결노동자 | 유대감을 쌓거나 배신감을 느낄 때 | 연결을 연기하는 일의 슬픔 | 마음을 읽고 읽히는 일의 불공정성
8장 성공적인 연결을 위한 사회구조
인간다운 연결노동에 필요한 것들 | 관계적 설계: 리더, 멘토, 동료의 끈 | 연결문화: 사랑을 체계화하는 방식 | 자원 분배: 당신의 소중한 두 시간 | 연결을 촉진하는 사회구조는 가능하다 | 개인의 연결을 넘어 사회적 협력의 연결로
9장 결론: 인간다운 미래를 향한 선택
‘다름’을 뛰어넘는 소속감과 사회적 친교 | AI의 하인으로 전락할 것인가 | 미래를 지켜내는 연결의 사회운동
부록 연결노동을 연구한다는 것
이 책을 위해 연구한 사람들 | 연결노동 관찰하기 | 연구 종료 알아차리기 | 취약성을 지켜보는 연구자의 연구 윤리 | 연결노동 연구의 긴급성과 보람
감사의 말
주석
참고문헌
[본 문]
1장 서론: 단절된 세상을 잇는 연결노동의 힘
연결노동의 핵심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과, 그렇게 이해한 바를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것이다. 상담사, 코치, 교사, 매니저, 비서, 판매원 등 수많은 노동자가 연결노동에 의지한다. 하지만 연결노동은 근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너무나 특별하고 중요한 노동임에도 단편적으로만 이해될 뿐 인정이나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한다. 게다가 많은 이가 연결노동을 주로 여성성과 결부시킨다. 가르치거나 돌보는 일처럼 여성이 주로 맡는 직종과 연관시킬 뿐 경찰이나 법률가 등 남초 직종에서 나타날 때면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_22쪽
미래에 경제구조 상단에 속한 사람들은 말단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말단에 속한 사람들은 AI 봇에게서 연결노동을 제공받을 듯하다.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모르지만, 연결노동이 경제 전반에 걸쳐 확장하고 성장하는 현상과 연결노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시스템이 확산되는 현상이 서서히 충돌하는 광경을 모두가 지켜보게 될 것이다. 자기 마음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욕구와 그런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점점 더 격렬히 충돌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탈개인화의 위기라는 사회적 병폐를 마주하게 된다.
_36쪽
2장 연결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버디는 노숙인의 발을 씻겨주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간호라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겸손, 봉사, 관심이 핵심이었다. 버디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께 ‘제가 당신을 보고 있어요. 당신을 인정하고 있어요. 당신을 돌보고 있어요’라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분과 저 모두에게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분명 저한테도 전환점이었죠. 제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그래. 내가 이 일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지’라고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것이 연결노동이 제공하는 첫 번째 연결의 실이다. 제공자와 수혜자를 인간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음을 읽힐 권리가 있는 존재로서 묶어주는 실 말이다. 버디가 노숙인의 발을 씻겨준 일은 수많은 사람이 길에서 지나치며 외면한 그의 인간성을 자신만큼은 인정하겠다는 행위였다.
_81~82쪽
3장 자동화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헬레나가 계속 말했다.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의료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요.” 보험사들은 이 ‘간극’을 채우기 위해 간호사들을 활용한 전화 상담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헬레나가 지적했다. “간호사들은 기본적인 말만 계속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가 지쳐버려요. 저희가 자동화하려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이죠.” 물론 번아웃은 간호 업무의 질적 저하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간호사의 직무를 좀 더 다양하고 섬세하게 설계함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다. 꼭 기계로 대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용주가 사람을 더 채용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자 헬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람한테는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게 문제예요.”
_116~117쪽
4장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장인의 기술
세라는 특히 일부 사람에게 인식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이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 말이죠.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알아봐주지 않는 경험을 여러 차례 겪었던 사람들 말이에요.” 세라가 상담한 여성의 경우에는 군대처럼 모든 사람을 균일하게 대하는 조직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그런 배경에 해당했다. 실수를 바로잡는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게 작용할 수 있지만 특히 그런 태도가 부족했던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_189쪽
5장 사회는 어떻게 연결노동을 부리는가
플랫폼 내에서 일거리는 대개 단기 계약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연결노동자들이 구축하는 관계 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긱 경제 플랫폼에서 출장 요리사, 이사 도우미, 아이 돌보미로 일했던 해티 아널드는 이렇게 말했다. “단기 계약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회용 취급을 받을 때가 많죠. 높은 이직률에 익숙하다 보니 굳이 깊이 상호작용하거나 연결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어차피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텐데 굳이 관계 맺을 필요가 있을까?’ 싶으니까요.”
_234쪽
6장 연결을 어렵게 하는 일상의 시스템
간호사의 일이 지루하고 반복적일 때, 제공하는 모든 연결노동이 대본화되고 형식화될 때, 자동화는 당연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해고된 사람들의 고용 불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마련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실무자들을 과부하시키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작업을 맡기기 위해 업무를 대본화하려는 초기 결정들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다. … 대본화(언어, 신체, 그리고 시간을 표준화하는 것)는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고, 이는 로봇화된 연결노동으로 가는 길을 단축시킨다. 관계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아이러니하다. 만약 과부하의 원인이 연결보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데 있다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템플릿과 대본을 선택하는 것은 마치 17세기 의사들이 찰스 2세의 만성 통풍을 치료하기 위해 사혈 치료를 했던 것과 같다. 치료법이 오히려 질병을 닮아 있는 셈이다.
_279쪽
7장 불평등한 현실 속 연결노동의 대응
나는 행크에게 수년간의 기술 습득 후 다시 그 헤로인에 중독된 달콤한 미소를 가진 여성을 만난다면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것인지 물었다. “많이 달라질 겁니다”가 그의 대답이었다. “지금의 접근 방식은 훨씬 더 목격 중심적이고, 성찰적이며, 개입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녀와 다르게 걸어갔을 것입니다. 그녀를 고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증인이 되어주는 방식으로요.” 그의 성찰적 접근은 단순히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는 것뿐 아니라, 상대방이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그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제 자신의 임무를 ‘그들을 주도적인 위치에 놓고, 강점을 존중하고, 능력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고통이나 절망에 빠져 있다면 그것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통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이제 목격자가 되었다.
_343~344쪽
8장 성공적인 연결을 위한 사회구조
문제는 관계를 촉진하는 사회구조의 비용이 종종 학교나 클리닉 같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느껴지는 반면, 그 이익은 사회라는 거시적인 수준에서 느껴진다는 점이다. 교사와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학교 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때 우리 모두가 혜택을 본다. 치료적 연대를 이루어낸 상담사들은 내담자에게 더 나은 결과를 얻으며, 사람들의 정신건강 요구가 충족될 때 우리 모두가 혜택을 본다. 유니버시티트랜스포메이셔널케어의 급진적인 실험은 부분적으로 비용과 이익이 모두 지역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대학이 그 목표 인구의 의료 비용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결된 사회구조의 이점은 단일한 조직보다 더 크고, 단일한 비용-이익 분석이 목록화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 이러한 효과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지원하는 정책에 대한 공공의 지지가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_415쪽
9장 결론: 인간다운 미래를 향한 선택
만약 AI와 자동화가 지배하는 세계가 불가피하다면, 만약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대화를 피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레딧 댓글 작성자들을 닮아가고 있다면 나는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버전의 미래를 선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연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비록 괴짜이거나 노인이거나 병든 사람들로 한정된 공간일지라도 인간들이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살펴본 연결노동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비교해보면, 나는 8장에서 구현된 ‘고밀도 접촉’ 사회구조를 여전히 선호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 구조는 헌신적인 리더십, 진정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실천 공동체,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특징으로 한다.
_438쪽
“편리할수록 외로워지는 시대,
노동은 어떻게 ‘사람의 온기’를 회복하는가?”
자동화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
AI의 파도 앞에서 연결노동이 증명한 인간의 의미
“우리는 특정 직종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잃고 있다”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마지막 직업, 연결노동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셀프계산대’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대신 키오스크로 상품을 주문하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사람이 아닌 앱을 통해 전달하며, 은행원을 마주하지 않고도 앱 서비스를 통해 자산을 관리한다. 이같이 즉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들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기 위해 꾸준한 소통 능력이 요구되는 직업 세계에도 AI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가르침 대신 콘텐츠가 제공되고, 의사들은 환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기보다 데이터에 기반한 즉각적인 처방을 내리며, 상담사들은 앱에서 매뉴얼과 대본에 따라 자동화된 응답만을 내놓는다.
사람 대신 AI가 사용되면서 우리는 단순히 특정 ‘직종’을 잃는 것을 넘어 ‘일하는 방식’을 잃고 있다. 그것은 상호 소통과 공감, 이해에 바탕을 둔 ‘사람을 대하는 일’로서의 ‘연결노동connective labor’이다.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상담사, 의사, 교사, 관리자 등 수십 가지 직업군이 수행하는 연결노동의 현장에서 기술의 침투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일터가 마주할 미래란 무엇인지 노동자 100여 명과의 인터뷰로 조명한다. 끊임없는 경쟁의 압박 속에서 획일화된 시스템이 우리의 직업 세계에 일으킨 상처를 다각도로 짚는 이 책은 연결노동이야말로 AI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직업’임을 수많은 목소리로 증명해낸다.
“기술이 편리할수록 ‘사람의 위로’가 더욱 절실한 이유”
‘장인의 기술’로서 연결노동이 갖는 인간다움의 증거들
1~4장에서는 자동화 시대에 연결노동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란 무엇인지 전한다.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빠르게 기술로 연결되는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전염병은 마치 ‘목 없는 기병’마냥 사회 곳곳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를 ‘탈개인화depersonalization’ 현상으로 포착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개인을 타깃으로 삼아 그들에게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정작 개인의 모든 욕구와 필요는 측정 가능한 데이터로 환원되어 정보의 다발로 흡수되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개인성과 독자성은 공중 분해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에 맞서 ‘재개인화re-personalization’를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이 책은 연결노동을 통한 사회적 친밀감의 회복을 제시한다. 전직 저널리스트이자 현직 사회학자로서 저자는 연결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꼼꼼히 살피며 그들이 인종이나 성별의 경계를 넘어 개인 대 개인으로서 어떻게 깊은 공감과 위로, 깨달음과 성찰에 이르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한 연결의 과정에서 온갖 오해와 실수, 갈등이 일어나지만 저자는 이 고통스러운 순간마저 서로에게 존엄을 세우고, 목적을 부여하며, 이해에 다다르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임을 강조한다.
연결노동에 AI가 대체할 수 없는 ‘장인의 기술(몸과 감정의 언어, 협력, 즉흥성, 실수의 수정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직업 현장에서는 AI 시스템의 도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앱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실리콘밸리 실험학교에서 교사가 ‘콘텐츠 전문가(지식 전달자)’와 ‘조언자(상담사)’로 이분화되어 있음을 목격한다.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연결노동이 분리 또는 해체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저자는 ‘연결노동의 자동화’를 정당화하는 세 가지 주장(없는 것보다는 낫다, 인간보다 낫다, 함께해야 낫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 및 실천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연결노동의 은폐화, 데이터 업무의 과중화, 인간의 기계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고발한다.
“연결은 어떻게 개인을 넘어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가”
지속 가능한 연결을 위한 ‘협력의 사회구조’를 만드는 법
5~8장에서 연결노동을 향한 이 책의 눈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뻗어나간다.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의사 루시가 산골 마을에 들어가 의료를 펼치는 과정을 살피며 저자는 소수의 인원이 사명감으로만 일하는 사회구조가 노동자와 환자 모두에게 심각한 부담을 지우고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수익을 중시하는 기업형 사회구조, 그중에서도 플랫폼 산업에 종사하는 연결노동자들이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한 현실을 보여준다. 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결노동자들 역시 사실상 ‘하인’의 처지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해질수록 부유층은 하위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하위 계층은 앱이나 AI를 통해서 연결 서비스를 구매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연결 업무의 대본화, 표준화, 계량화를 마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보여준다. 저자는 자동화 시스템이 평균적으로 연결의 접근성을 높이고 시간의 단축을 이루어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연결노동의 질을 떨어뜨려 정량적 업무의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마음을 읽고 읽히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복잡한 관계를 살피며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상처에 연결노동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진정한 치유를 위해 필요한 ‘목격자’의 자세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이 책은 연결노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모색한다. 소수의 노동자가 막대한 업무를 맡는 기존의 시스템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실제 조직의 사례를 보여주고, ‘인간다운 연결노동’에 필요한 것들로 ‘관계적 설계’, ‘연결문화’, ‘자원 분배’를 제시한다. 연결노동자들이 서로 ‘지시하는 존재’가 아닌 ‘돌보는 존재’로서 리더‧멘토‧동료의 역할에 충실하고,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감정의 협력을 강화하는 조직 문화를 세워나가며, 물질적 자원 중 특히 시간을 ‘고밀도 접촉’을 위해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이 모든 ‘관계 중심의 연결 방식’이 노동자를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그 혜택은 조직을 넘어 사회적 수준에서 ‘정신건강 증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의 평범한 선택이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
헤드폰을 끼고 있을 것인가, 지금 대화를 시작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셀프계산대’가 무색하게, 네덜란드에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구호 아래 계산원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대화형 계산대’가 다시 도입되기도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수없이 많은 연결노동이 눈앞에서 지워져 왔음에도, 많은 사람은 여전히 연결노동을 통해 자신이 지역과 커뮤니티, 사회에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생각보다 꽤 강력하다. 개인주의를 넘어 알고리즘의 시대로, 그리고 AI의 시스템의 가속화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결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순간에도 ‘대화를 피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최대한 자신의 일을 빨리 처리’하려는 문화적 경향에 대해 우려한다. 개인 간 연결을 단절시키고 인간의 고립을 자초하는 자동화 시스템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는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담아낸 각계각층의 노동자 수백 명의 목소리는 우리가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음을 증거한다. 또 AI가 치워버리려 하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인간다움의 결정체이다. 아울러 또다른 연결노동의 수행자로서 저자가 보여준 바와 같이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AI의 일직선 답변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