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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4513735 |
|---|---|
| 쪽수 | 35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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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핵 침투에 맞서는 새로운 혁명론
핵은 어떻게 재난을 먹고 살아남는가
후쿠시마 핵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방사성 물질은 여전히 누출되고 있고, 핵폐기물은 수만 년 동안 생명체를 위협할 것이다. 그런데도 세계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AI 산업과 데이터 센터 확대,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핵발전은 다시 “미래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방사능과 혁명』은 바로 이 기이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왜 인류는 핵재난을 겪고도 핵을 멈추지 못하는가? 왜 세계는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더 쉽게 상상하게 되었는가?
일본 출신의 정치·사회 비평가 이와사부로 코소는 후쿠시마 핵재난을 국가·자본주의·군사주의가 얽힌 현대 세계체제의 “끝나지 않는 대재앙”으로 분석한다. 핵은 전력 생산과 핵무기 생산이라는 “야누스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군사·산업·정보·에너지 체계를 하나로 묶는 권력장치로 작동한다. 더욱이 핵산업은 폐기물 처리와 제염, 해체 산업 같은 끝없는 사후 관리를 통해 스스로를 연장하고, 국가와 자본은 방사능 오염마저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전환해 체제를 유지한다. 재난과 파괴조차 새로운 축적의 계기로 삼고좀비처럼 살아남는 체제. 저자는 이를 “묵시록적 자본주의”라 명명한다.
대재앙 위에 세워진 메트로폴리스,
결국 흔들리는 일본 국민국가 신화
이 책의 가장 도발적인 통찰은 핵이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은 국가와 자본, 군사주의를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키며 현대 일본을 조직해 온 핵심 장치로 그려진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 같은 자연 재난뿐 아니라 전쟁, 핵폭격, 경제 위기 같은 반복적 파국 속에서 국가체제를 강화해 왔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부국강병”의 이름 아래 천황제와 민족주의를 강화했고, 패전 이후에는 미국의 냉전 전략 속에서 핵기술과 핵에너지 체제에 깊이 편입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공포는 어느새 “평화로운 원자력”이라는 구호 아래 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신화로 탈바꿈했으며, 핵발전은 미래와 번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도쿄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욕망을 끝없이 빨아들이는 거대한 “도쿄장치”로 기능했다. 지방의 노동과 자원, 삶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메트로폴리스로 흡수되었고, 도쿄는 지역의 파괴와 대재앙 위에서 비대해져 갔다. 동시에 일본은 미국 냉전 질서의 정치·사회적 실험장으로 기능했으며, 원폭 피해자들조차 치료 대상이 아닌 방사선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한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결국 후쿠시마 핵재난은 “도쿄 역시 끝날 수 있다”라는 감각을 일본 사회 전체에 각인시키며, 안전과 성장, 국가 발전으로 상징된 일본 국민국가 신화를 뒤흔들었다.
방사능 군중의 출현,
새롭게 시작된 삶의 방식
핵재난은 단지 원자로만 붕괴시킨 것이 아니었다. 공원과 토양, 비와 음식처럼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까지 불안과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즉각적인 건강 피해는 없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사회를 정상 궤도로 복귀시키려 했고, 그 결과 방사능 오염은 전국으로 분산되었다. 가장 위험한 노동은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었고, 피폭의 부담 역시 사회 전체의 몫으로 재배치되었다.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재난 이후의 사회가 아니라 재난과 함께 살아가도록 조직된 사회로 변해 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DIY 방사능 측정소를 만들고, 독립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식품과 생활 공간의 오염을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도시를 떠났고, 일부는 새로운 공동체와 생존 방식을 조직했다. 이른바 “방사능 군중”이 출현한 것이다. 방사능 군중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이 강요하는 삶의 방식 바깥에서 생존과 돌봄, 자율적인 관계를 새롭게 실험하는 사람들이다. 인간과 자연, 생산과 재생산, 공동체와 삶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서식자들이여, 반향하라!
1968년의 혁명은 세계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위에서 움직였다. 반핵운동과 반전운동,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은 서로를 반향시키며 거대한 해방의 흐름을 형성했고, 혁명은 국가 권력 장악과 세계사적 변혁을 의미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핵위기, 재난과 붕괴의 시대를 지나며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를 바꿀 수 있다”라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지 못했다. 이제 정치의 중심은 혁명정당과 국민국가가 아니라, 생존과 돌봄, 재생산과 생활세계로 이동했다. 저자는 이를 “대문자 정치에서 일상생활의 정치학으로의 전환”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혁명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저자는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에로스 효과”와 들뢰즈·과타리의 “욕망기계” 개념을 통해, 혁명을 중앙 지도부가 조직하는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과 욕망이 공명하며 형성되는 집합적 흐름으로 다시 사유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가와 자본의 질서 바깥에서 자율성과 상호 부조를 실험해 온 아나키즘 운동의 계보와도 맞닿아 있다. 생활 환경 방어 운동, 이주 노동자 투쟁, 공동체 및 자치운동은 더 이상 국가를 장악하려는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재난과 붕괴의 시대 속에서 서로의 삶을 연결하고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행성적 정치”의 출현이다.
그렇다면 재난 이후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더 강한 국가도, 더 거대한 기술도 불필요할지 모른다. 이제 혁명은 세계를 장악하는 일이 아니라, 무너져 가는 세계 속에서도 서로의 삶을 붙들고 연결하는 일일 것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라는 혁명의 언어를 지나, 이 책은 붕괴의 시대를 향해 새로운 구호를 외친다. “지구의 서식자들이여, 반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