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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86275078 |
|---|---|
| 쪽수 | 17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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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더 다정한, 기타 선율 같은 시집
말보다 먼저 소리로 살아온 사람이 문장으로 남긴 마음의 기록
어떤 감정은 말로 꺼내면 너무 가벼워지고, 그대로 삼키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 이호준의 시는 바로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아프다고 크게 말하지 않지만, 읽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먹먹해진다. 화려한 수사보다 담백한 고백에 가깝고, 선명한 결론보다 오래 남는 여운에 가깝다.
이호준은 오랫동안 기타로 마음을 전해온 사람이다. 고교 졸업 후 기타 하나로 삶을 꾸려왔고, 한국 핑거스타일 기타 챔피언십을 개최했으며, 아카데미를 세우고 라이브클럽을 열어 연주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그 긴 시간 동안 그의 곁에는 고양이가 있었고, 볶아 내린 커피가 있었으며, 떠나간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기타 줄 위에 얹어 보내왔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문장에 담았다.
『커피 볶는 부엌』의 시들은 거대한 사건을 앞세우지 않는다. 떠난 사람이 남긴 자리, 비 내리는 창가, 커피잔 앞의 고요, 고양이의 온기처럼 소소하고 익숙한 장면들에 머문다. 그러나 그 사소함은 가볍지 않다. 반복되는 하루의 틈에는 말하지 못한 슬픔과 오래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조용히 배어 있다.
『커피 볶는 부엌』의 미덕은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 데 있다. 많은 위로의 말들이 괜찮아지라고, 빨리 털어내라고 말할 때 이 시집은 오히려 아픔이 머무는 시간을 허락한다. 「비의 저편」에서 시인은 “그저 조용히 앉아 / 비가 지나기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이 기다림은 체념이 아니다. 지나가야 할 것이 스스로 지나갈 때까지, 무너지지 않고 앉아 있는 마음의 자세에 가깝다.
저자의 삶을 알고 읽으면 이 시집은 한층 더 깊은 결을 얻는다. 서문에서 그는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와의 이별, 15년간 곁을 지켜주었던 고양이 네 마리, 끝내 이름을 적지 못한 존재 하나를 고백한다.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기타캣’이라는 이름 역시 그 깊은 사랑과 상실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 등장하는 커피, 고양이, 기타, 비, 밤, 침묵은 장식적인 소재가 아니다. 한 사람이 사랑하고 잃고 버티며 살아낸 시간의 흔적이다.
『커피 볶는 부엌』은 상실을 말하지만, 그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떠난 것들을 붙잡기보다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마음을 바라보고, 아픈 기억을 지우기보다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시집은 슬픔의 기록이면서도, 동시에 다시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다정한 동행이 된다.
기타 선율처럼 은은하게 흐르는 문장들은 독자의 밤과 계절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 오래도록 잔잔한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