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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56123415 |
|---|---|
| 쪽수 | 404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한국역사/지리
AI추천 이유
언로는 막고, 한글은 가르치지도 않고
‘애민愛民’과 ‘훈민訓民’의 실상을 묻는다
백성을 위해 만든 ‘세계 최고 문자’, 그러나
한글은 금속활자, 거북선과 더불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우리는 학교에서 “성군聖君 세종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없는 어리석은 백성을 불쌍히 여겨” 만든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배운다. 맞다.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정도면 배울 수 있고, 바람 소리며 학 울음소리 등도 모두 적을 수 있으니”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탄탄한 한문학 실력을 바탕으로 꼼꼼한 자료조사를 거쳐 도발적이고도 흥미로운 책을 여럿 낸 바 있는 지은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신화를 제대로 보기를 제안한다. ‘훈민訓民’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려 한 것인지, 과연 한글 덕분에 민중의 형편은 나아졌는지 등을 따져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세종이 지은 〈어제서문御製序文〉을 중심으로 다양한 언해본과 사료를 분석해, 불편하되 설득력 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리석은 백성’은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우수한 한글을 농민과 노비가 사용했는지, 사용했다면 어떻게 사용했는지 묻지 않는다. 세종의 거룩한 의도만 확인했을 뿐, 세종이 가르치려 한 ‘우민愚民’에 대해선 잊고 지나친다. 그러나 세종이 말한 ‘어리석은 백성’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고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노비였다. 또 여성이었다. 일 년 열두 달 노동에 시달리는 농민과 노비, 여성의 일상에 읽기와 쓰기가 들어갈 공간은 그다지 없었다. 게다가 책은 귀했고, 종이는 비쌌다. 붓과 먹의 값도 만만치 않았다. ‘어리석은 백성’이 노동에 시달리면서 값비싼 도구를 사서 한글을 익혀 써야 할 여유도 이유가 정말 있었는지, 지은이는 궁금해 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기회마저 막혔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백성이 이용할 문자를 주겠다는 것이 세종이 〈어제서문〉에서 밝힌 한글 창제의 으뜸 목적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세종은 백성의 언로를 막았다. 백성들이 하려고 했던 ‘말’의 대부분은, 지방 수령과의 갈등에서 배태되었다. 그런데 한글 창제 이전인 1419년 예조판서 허조의 요청을 받아들여 부민이 지방 관장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한 ‘부민고소법’을 폐지하고 ‘부민고소금지법’을 제정했다. 이후 종성 절제사 김후의 부정을 계기로 사간원에서 부민고소법의 부활을 상소하기도 했지만 원래의 부민고소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은이는 민중의 입을 틀어막고 수탈의 자의성을 보장한 이 조치는 〈어제서문〉에 담긴 애민愛民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보았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도 모순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글 보급을 위한 제도적 노력도 미미했다
세종은 1443년 12월 한글을 창제한 뒤 급히 서리 10명을 선발해 한글을 가르쳤다. 어떤 관부의 서리인지,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것이 한글에 대한 최초의 교육 사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한글의 존재와 사용법을 민중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지만 지은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 어떤 제도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글 보급을 위해선 사용법을 담은 《훈민정음》(해례본)을 많이 인쇄해서 민중이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배포하는 것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인간印刊에 관해서 알려진 사실이 전혀 없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책판에 관한 기록도 찾을 수 없다. 이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실제로는 광범위한 보급을 위해 인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지은이는 보았다. 귀한 뜻으로 만든 한글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지배질서 강화를 위해 복종을 가르친 ‘훈민’
왕과 궁궐을 중심으로 한글 문서가 작성되긴 했다. 경서經書는 물론 불경과 농서農書, 의서醫書 등 다양한 실용서도 언해도 이뤄졌다. 한데 그 목적은 ‘훈민訓民’에 있었다. “비록 백성들 모두가 율문을 알게 할 수는 없겠지만, 별도로 큰 죄의 조문만이라도 뽑아서 이문吏文으로 번역하고 민간에게 반포해 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 죄를 알고 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한글 창제의 의도를 짐작케 하는 1432년 세종의 말이다.
‘가르치려는 백성’은 ‘말하고자 하는 백성’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 전자에서 백성은 주체가 되지만, 후자에서 백성은 대상이 된다. 훈민의 내용은 지배질서에 대한 ‘윤리적 의무로서의 복종’이었다.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을 담은 ‘열녀烈女’를 발명해낸 《삼강행실》이나 《소학》 언해본이 꾸준히 간행된 예가 대표적이다.
‘어리석은 백성’보다 사족 계급이 덕 봤다
지은이가 깨뜨리려 한 ‘한글 신화’ 중 가장 뜻밖인 것은 민중보다 사족들이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아동기 사족에게 한자를 가르칠 때 한글은 대단히 유용한 도구였다. 1586년 완성된 《언해소학》 수백 부가 인쇄되었다. 나아가 경서의 언해야말로 사족들이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서에 구결을 달고 언해하는 작업은 세종-세조 때 시작되었으나 완성된 것은 선조 대에 와서였다. 경서를 읽는 사족이 ‘어리석은 백성’일 수는 없다. 결국 한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들은 민중이 아닌 지배계급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한글의 창제 원리나 과학적 우수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의 애민정신에 토를 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친 자기 긍정의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세종과 한글에 대한 객과적 이해를 촉구할 따름이다. 지은이는 세종은 지배계급의 대표자였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이는 아마도 이는 한글에 관한 가장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갔던 흥미로운 사실을 여럿 알려주기에, 아는 기쁨과 더불어 읽는 재미가 각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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