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가나다 순) / 8
추적을 시작하면서 / 21
1. 장자권: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속여서 빼앗았는가? / 59
2. 성명권: 야곱의 이름은 사기꾼, 속이는 자인가? / 89
3. 축복권: 야곱은 이삭을 속였다! 그러나? / 125
4. 섭리권: 야곱과 다말의 속임수! 그 비밀은? / 191
5. 소유권: 야곱은 라반을 속여서 재산을 얻었는가? / 223
6. 이스라엘! 그것이 야곱이 받은 진짜 복이다! / 245
추적을 마치면서 / 269
참고문헌 / 276
[본 문]
그런데 저는 “빼앗았다”라는 표현에서 “과연 그럴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빼앗았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빼앗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이 주기 싫어하는 것을 강제로 빼앗는 것입니다. 둘째, 그 과정에서 협박, 폭력, 강제성, 무력 등 강압적인 압박이 있어야 합니다. “안 주면 죽인다!”와 같은 강제적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그렇게 해서 나는 받았는데 상대편에게 내가 준 것이 없을 때, 그때 빼앗았다고 합니다. 넷째, 그 모든 상황을 증명해 줄 만한 공식적인 상호 간의 협약, 동의, 계약이 없을 때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빼앗는 데 필요한 이 네 가지 조건이 야곱에게 해당됩니까? 하나도 해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첫째, 야곱은 상대방이 주기 싫은데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에서가 알아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가져가라며, “네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 과정에서 강압적인 압박, 협박, 폭력, 강제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셋째, 받은 것은 있는데 보답으로 준 것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팥죽을 주었습니다. 물론 형편없는 보상이지만 주었습니다. 넷째, 그 상황을 입증할 만한 공식적인 상호 간의 계약이 있었습니다. 언약하지 않았습니까. 맹세하라고 했고, 그 당시는 언약이 곧 맹세였습니다. 그것이 보증수표였습니다. 언약했고, 맹세하라고 하니 맹세했습니다. 도장을 찍고 재확인한, 요즘으로 말하면 인감도장을 찍은 것입니다.
그러니 속인 것도 없고, 빼앗은 것도 아닙니다. 오늘 장자권 거래의 말씀을 계속 보면 볼수록,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호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 합법적인 거래였음을 더욱더 확신하게 됩니다. _ 68p
여기 두 사람의 이름에 대하여 이 이상의 다른 추가 정보나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단지 털이 붉으니까 “에서”, 발목을 잡았으니까 “야곱”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훗날 이 야곱이 남을 속이고 남의 발목을 잡는 사기꾼이 될 사람이기에 “야곱”이라 지었다는 암시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에서라는 이름 그리고 야곱이라는 이름은 그저 그들이 태어날 때의 상황을 묘사한 것뿐입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갓 태어난 자식의 이름을, 그런 부정적인 의미로 지어주겠습니다. 더구나 리브가에게 있어 이 두 아들은 오랜 불임 상태에서 고생하다가 뒤늦게 낳은 자녀입니다. 이삭도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는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자녀를 얻는 데 있어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삭의 나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했지만, 그의 나이 60세가 가까울수록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불임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얻은 아들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부정적인 의미를 둔 것으로 지었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태어나는 이 상황과 그 상황에 근거하여 주어진 야곱이라는 이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 야곱의 이름과 태어날 때의 모습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가 호세아 12장 1-6절입니다. _ 92p
실제로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40년 가까이 기다렸고, 하란에서도 라반의 부당함을 참고 견디면서도 20년을 인내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와 야곱의 성급함을 비난하기 전에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축복 계획을 세운 이삭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사실 이 사건을 반대로 돌려보면, 이삭도 리브가나 야곱만큼 조급해서 그렇게 빨리 에서에게 축복을 주려 한 것 아닙니까? 얼마나 급했으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삭과 에서 둘만의 비밀 회동으로 진행했을까요? 이삭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다릴 수는 없었을까요? 이삭도 기다려야 했던 것 아닌가요? 리브가와 야곱만 조급했던 것이 아니라 이삭도 조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니 이것은 리브가와 야곱의 조급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행하는 일이 진행되도록 한 이삭의 이상하고 믿음 없는 축복 계획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_ 142-143p
만약 우리가 가나안 정복을 뺏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본다면, 그리고 기생 라합의 속임수를 사기꾼의 한낱 속임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로 본다면, 야곱의 경우도 똑같이 해석해야 합니다. 야곱 역시 말씀의 성취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야곱에게만 지나치게 비난하고 확실한 검증 없이 과도한 악평을 합니다. 속임수를 쓴 그 많은 사람 중에 오로지 야곱만 사기꾼이자 속이는 자라고 낙인찍힙니다. 이는 성경을 읽는 우리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 다 야곱을 사기꾼, 속이는 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특별한 소명과 사명을 받은 사람처럼 밑도 끝도 없이 야곱을 사기꾼, 속이는 자라는 틀에 끼워 맞추어 놓고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물론, 야곱이 이삭을 속였습니다. 당연히 잘못했고, 분명히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야곱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다말, 라합, 심지어 다윗이 남을 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윤리적인 잣대로 따지자면 야곱과 다른 사람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야곱보다 다른 사람들의 속임수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야곱만 그렇게 비난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이 한 번의 속임수로 야곱을 평생의 사기꾼, 속이는 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난이며 억울한 오해라는 것입니다. _ 204-205p
야곱이 한 일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그것이 과연 속여서 될 일입니까?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뭇가지 껍질을 벗겨 무늬를 내어 구유에 꽂아 두니, 양들이 그것을 보고 교미하여 그 무늬대로 새끼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속여서 될 일입니까? 이것은 유전학적으로도 이상한, 비과학적인 일입니다. 사기를 쳐도 좀 유전학적이고 과학적으로 쳐야 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그래서 월튼은 “야곱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양을 교배시키며 원하는 양과 염소를 얻은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1라고 말했습니다. 라반도 그것이 안 될 것이 뻔하니까 허락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야곱 이후에 야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방법으로 그런 품종을 얻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알려주신 대로 믿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그대로 순종했더니 정말 꿈에 본대로 된 것입니다. 야곱은 그저 자신이 꿈에서 본 것과 동일한 품종의 양과 염소를 자신의 것으로 달라고 계약조건을 내세운 것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무 막대기를 꽂아 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시킨 일입니까? 또 누가 한 일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믿고 순종하니 하나님이 야곱에게 되갚아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니 야곱이 나무껍질을 벗겨서 무늬를 입혀 물구유 앞에 꽂아 둔 것은 어떻게 보면, 야곱의 간절한 기도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_ 232-233p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쉽게 거져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 이름은 얍복강에서 목숨을 걸고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천사와 싸운 뒤에 얻은 이름이며(창 32:27-28), 나중에 엘벧엘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예배할 때 다시금 확인된 이름입니다(창 35:9-11). 그렇게 사생결단으로 천사와 씨름하고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하나님을 찾을 때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며, 다시 영성을 회복하는 마음으로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첫 은혜의 장소 벧엘에 가서 예배드릴 때 주셨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에게만 주어지고, 에서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에서에게는 ‘망령된 자’라는 오명만 있었습니다(히 12:16). 그 거룩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엘’은 하나님을 뜻하는 명사이고, ‘이스라’는 ‘겨루어 이기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이 됩니다. 문맥에 따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진짜 복은 아내, 재산, 자녀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할 때, 다시금 예배드릴 때 주셨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외에 부인, 아내, 자녀 같은 것들은 에서도 받은 복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수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_ 252-253p
30년간 야곱의 변호사로 살아온 한 목사의 최종 변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기꾼, 속이는 자라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면 야곱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와 편견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우리가 야곱이라는 성경 인물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하게 되는 것은 ‘사기꾼!’, ‘속이는 자!’, ‘교활한 도둑놈’, ‘비열한 사람!’ 아마 이런 표현들일 것이다. 야곱은 사기꾼이며 속이는 자이고 태어나면서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올 정도로 그의 본성과 영적 DNA는 평생 남의 발목이나 잡고 사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야곱의 이런 부정적인 모습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하고 있는 야곱의 진실된 모습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야곱의 모습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구속사)를 이어간 믿음의 족장 ‘이스라엘’이었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야곱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야곱은 사기꾼, 속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으로 선택되어 약속된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성실한 믿음의 족장 이스라엘임을 성경을 통해 변호하고 입증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여 그동안 사기꾼, 속이는 자, 남의 발목을 잡는 자라고 과도하게 비난하고 부적절하게 오해했던 야곱의 억울한 누명과 오명을 벗겨 주고 야곱의 부정적인 요소로 거론되었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변호하여 바로 잡는 것이다.
■ 이 책은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야곱을 변호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장자권: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속여서 빼앗았는가?
야곱이 에서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았다는 오랫동안 오해되어 온 기존 해석에 대해 성경적 관점에서 반론을 제기한다.
2. 성명권: 야곱의 이름은 사기꾼 속이는 자인가?
야곱이라는 이름에 얽힌 뿌리 깊은 오해를 바로잡고 그 진정한 영적 의미를 탐구한다.
3. 축복권: 야곱은 이삭을 속였다! 그러나?
야곱이 리브가와 함께 이삭을 속인 사건을 다룬다.
4. 섭리권: 야곱과 다말의 속임수! 그 비밀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인 행위를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속인 것과 비교하고 대조한다.
5. 소유권: 야곱은 라반을 속여서 재산을 얻었는가?
야곱과 라반의 관계를 살펴본다.
6. 이스라엘! 그것이 야곱이 받은 진짜 복이다!
야곱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진정한 복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었음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