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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62123157 |
|---|---|
| 쪽수 | 152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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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는 약속을 장부에 적었고
사람들은 그 장부를 마을의 역사처럼 품었다
손때 묻은 통장 한 권이 있다. 회색빛 종이 위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힌 이름과 숫자들. 어떤 줄은 쌀농사가 잘된 해의 기쁨이고, 어떤 줄은 아이 학비를 마련하느라 잠 못 이루던 밤의 흔적이다. 그 통장은 금융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었고, 그런 통장 수백 권이 모여 한 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40년을 몸담아온 저자는 바로 그 통장과 장부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1963년 경남의 다섯 마을에서 시작된 신용조합, 폐품을 팔아 만든 종잣돈 5천 원, 촛불 아래서 지우개로 여러 번 고쳐 쓴 회계장부, 장날이면 천막을 펼쳐 세웠던 임시 창구 위의 보리차 한 잔… 이 책에는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그러나 새마을금고의 정체성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담겨 있다.
그 시절 금고는 돈보다 안부가 먼저 오가는 곳이었다. 눈 오는 날이면 직원이 수레에 연탄을 싣고 마을을 돌았고, 글을 모르는 어르신에게는 통장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대출의 기준은 서류가 아니라 신뢰였고, 누군가 갚지 못하면 이웃이 함께 갚았다. “우리 마을 사람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새마을금고의 규칙이었다. 오직 "꼭 갚겠습니다"라는 약속 하나가 대출의 조건이었고, 이웃의 얼굴이 곧 신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을금고는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울타리였다.
문을 열면 은행이 아니라 마을이 보이던 곳
금고는 건물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저자는 새마을금고의 역사를 연대기적 사실로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촛불 아래 주판을 두드리며 장부를 적던 손, 장날 천막 아래에서 보리차를 나누던 창구, 투표함 앞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한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나지막이 불러낸다. 출자금 백 원에 담긴 신뢰, 연탄을 나르던 직원의 시린 손, 매일 아침 창가 자리에 앉아 직원들의 이름을 불러주던 어르신의 마지막 인사까지. 통장 한 권 한 권에 새겨진 삶의 무늬를 따뜻한 시선으로 되짚는다.
나아가, 저자는 따뜻한 회상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의 새마을금고를 향해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질문을 던진다. 수익과 효율이 사람의 얼굴을 덮어버린 시대, 숫자에 가려진 회원들의 이야기, 공동대출과 경쟁 속에서 흐려진 정체성. “우리는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가?” 이 물음은 새마을금고뿐 아니라 '공동체'의 의미를 잃어가는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다.
이 책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다. 오래된 통장 한 권을 다시 펼치듯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는 일이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시절의 기억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방향이다. 새마을금고가 사람의 ‘마음’을 잊지 않는 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반드시 사람들 곁에 남을 것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새마을금고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걸어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