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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88571284 |
|---|---|
| 쪽수 | 23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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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탓이 있었다-‘탓’에 대한 통념을 뒤집다
인류의 첫 탓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아담은 신 앞에서 자신에게 그 열매를 건넨 이브를 가리켰고, 이브는 다시 자신을 꾄 뱀에게 책임을 돌렸다. 잘못을 추궁받는 순간 책임을 딴 데로 돌리는 이 장면은 탓이 인간의 오래된 습성임을 보여준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이 어긋나면 우리는 어김없이 그 원인을 찾고, 마땅한 대상이 없으면 바람이라도 탓하곤 한다.
날마다 입에 올리는 말이기에 우리는 ‘탓’을 잘 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익숙한 말을 오랫동안 오해해왔다고, 탓을 흔히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이지만, 본래 어떤 일의 원인을 헤아리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밝힌다. 감정에 앞서 인과를 묻는 행위로 탓을 보는 관점이 이 책을 떠받치는 토대다. 탓을 원인을 따지는 사고로 바라볼 때 우리가 매일 되풀이하는 탓의 양상도 비로소 다르게 보인다.
K탓-내로남불과 자책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를 진단하다
탓하지 않는 문화는 없지만 무엇을 어떻게 탓하는지는 사회마다 다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탓하기 양상을 ‘K탓’이라 호명하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남 탓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부터 오늘날의 ‘내로남불’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표현이 유독 많다.
그에 못지않게 강한 또 다른 탓이 우리 안에 있다. 외환 위기 당시 직장을 잃은 이들은 세계 경제의 구조적 위기마저 ‘내가 더 노력했어야 했다’며 자기 탓으로 돌렸고, 이런 자책은 자살률 급증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1998년 한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두 배나 많아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K탓은 남 탓도 많고 내 탓도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상반된 두 탓이 음과 양이 맞물린 태극처럼 한 사회 안에 공존한다. 그 진폭이 커지면 개인 간 작은 마찰이 순식간에 집단의 쏠림으로 번져 편견과 차별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념과 성별, 국적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갈등이 깊어지는 오늘날의 세태는 책임을 피하려 남을 탓하는 목소리와 그에 휩쓸리는 심리 현상이 맞물린 자리에서 자라난 것이다. 저자의 ‘K탓’이라는 렌즈는 서로를 탓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의 갈등을 한 꺼풀 달리 보게 한다.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 심리학자다 - 탓이 이해를 멈추는 순간
문제는 원인을 찾는 일이 좀처럼 정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인과를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 정보에 앞서는 감정과 욕구, 믿음에 기대어 짐작하곤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리가 저마다 ‘아마추어 심리학자’로 산다고 꼬집는다. 누군가가 실수를 저지르면 상황을 면밀하게 따지기보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며 기질 탓으로 손쉽게 돌리고, 정작 자기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눙치며. 이성이 멈춘 자리에는 믿음이 들어선다. 손이 닿지 않는 일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통제 환상’도 그렇게 자리를 잡는다. 귀인 이론attribution theory을 비롯한 사회심리학의 오랜 연구는 우리의 탓하기가 얼마나 자주 또 그럴듯하게 어긋나는지 일러준다.
저자가 꼽는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탓은 모르면서도 안다고 잘못 믿게 해주는 가장 손쉬운 도구라는 것이다. 단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고 나서 세상이 설명되었다고 안심하는 순간 더는 묻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찍은 마침표는 이해의 끝이 아니라 이해의 중단일 때가 많다. 우리가 원인이라 믿는 것은 진실이라기보다 짐작에 가깝고, 잘못 짚은 원인 위에 쌓은 판단은 번번이 어긋난다. ‘나는 잘못이 없다’며 자신을 지키는 탓, ‘저 사람 때문’이라며 남을 재단하는 탓,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탓은 모두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통제하려는 마음이 도리어 통제를 어렵게 만드는 꼴이다.
탓도 관리가 필요하다- 원망, 자책, 갈등을 이해로 바꾸는 통찰!
저자는 탓이 인간을 무너뜨리는 패착인 동시에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실패와 불행을 겪고 난 누군가는 원망에 머물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찾는 까닭은 결국 무엇을 어떻게 탓하느냐에 있다. 이 책은 탓을 멈추라고 권하지 않는다. 탓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기에 없앨 수도, 없앨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탓의 방향과 방식이다. 충분한 근거 없이 사람을 탓하기보다 상황을 살피고, 감정에 휘둘려 원인을 단정하기보다 인과를 차분히 따져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저자는 그 작은 차이가 개인의 삶은 물론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까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남을 탓하는 마음만큼이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마음도 스스로를 향한 잘못된 탓하기에서 비롯된다. 실패 원인을 모두 자기에게 돌리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까지 책임으로 떠안으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책 역시 일상적으로 미루지 않고 점검해야 할 키포인트라고 저자는 주목한다.
『탓』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왜 탓하는지, 그 탓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묻는다. 원망과 자책, 비난과 갈등으로 얼룩진 시대에 이 책은 단순한 긍정이나 위로 대신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인간의 오랜 습관을 다시 들여다보고 함께 묻자는 제안을 건넨다. 그 물음 앞에서 탓은 이해를 닫는 마침표가 아니라 이해를 여는 물음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