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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9930407 |
|---|---|
| 쪽수 | 592쪽 |
| 크기 | B6(127mm X 188mm, 사륙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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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가.
누군가는 사랑이 부족해서 외롭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너무 많이 상처받아서 더는 관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한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사랑받고 싶지만 쉽게 자신을 내어줄 수 없고, 친밀함을 원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이 커진다. 월트 오데츠의 『우리는 왜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가』는 바로 이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감정의 구조를 집요할 만큼 깊이 들여다보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게이의 삶’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데츠는 30년 넘게 게이 남성의 심리와 관계, 욕망과 상실을 연구해온 임상심리학자로서, HIV/에이즈 유행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한 세대의 감정 구조와 관계 방식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한다. HIV는 단지 질병이나 사회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과 욕망, 몸과 친밀감, 관계와 미래에 대한 감각 자체를 바꾸어놓은 시대적 경험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험과 수치심 속에서 바라보도록 강요받았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상실과 죄책감, 불안과 자기검열 속에서 관계를 맺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오데츠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온 게이 남성들의 삶을 통해, 왜 많은 이들이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친밀감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관계 안에서 반복되는 회피와 집착, 자기혐오와 감정적 거리두기,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버려질 것이라는 공포는 단순히 개인의 결함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억압과 수치심, 차별과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형성된 생존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상처를 분석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오데츠는 게이의 삶을 단지 비극이나 결핍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며, 기존의 규범 바깥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깊은 애정을 보낸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과 성공의 모델 안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발명하고 삶을 만들어가려 했던 사람들. 이 책은 그러한 존재들의 회복력과 다정함, 그리고 끝내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기록한다.
그래서 『우리는 왜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가』는 단지 퀴어 공동체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은 게이 남성의 삶과 감정, 관계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그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깊이와 밀도를 지닌 퀴어 논픽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오늘날 사랑과 관계 앞에서 흔들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를 쉽게 소비하고 단절하는 시대, 친밀함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상처받고 멀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 어떻게 두려움과 수치심을 넘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황인찬 시인은 추천사에서 “사랑은 반드시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월트 오데츠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존의 규범 속에서 승인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삶의 형식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끝내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서로를 덜 상처 입히는 사랑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고.
『우리는 왜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가』는 사랑과 관계, 상실과 생존에 대한 가장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기록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 앞에서 자꾸만 무너지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랑을 만들어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