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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79401530 |
|---|---|
| 쪽수 | 654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정치/사회 > 정치학
AI추천 이유
이 책은 한국 시민 정치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통사적 저술이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 초기까지 개혁 성향의 유림들은 위기의 국면마다 경전과 신학문을 오가면서 낡은 유교 정치 이상을 근대적인 정치·사회 개혁 원리로 전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심지어 유교 정치를 전복하려는 세력조차 그 비판과 극복을 위해서 유교 정치를 재해석하는 데서 출발해야 했다. 따라서 한국의 초기 시민 정치는 서재필과 독립협회에 의한 미국 시민 정치 원리의 수용과 실천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그것에 자극받아 형성된 애국·개혁 유림의 전통적 유교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전유의 과정이었다. 조선 후기 이후 사상사와 운동사를 종합적으로 탐구해서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과 ‘기원’ 그리고 초기 ‘전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은 서구의 ‘부르주아-시민’과 구별되는 ‘군자-시민’이 초기 시민 정치를 이끈 주체임을 입증했다.
저자 이황직(숙명여대)은 전작 군자들의 행진(2017)을 통해서 대한민국 건국과 민주화에 미친 의병 유림과 그 후예들의 주도적 영향력을 복원했는데, 말미에 후속 탐구 과제로 ‘유교와 시민’을 약속한 바 있다. 이후 알렉시 드 토크빌(2018)과 서재필 평전(2020) 저술로 시민 정치 개념과 이론을 정립하고, 구한말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유림의 정치운동이 어떻게 시민과 시민 정치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5년간 탐구했고, 그 결과를 한국 시민 정치의 기원과 전개에 담아 출간하며 마침내 약속을 지켰다.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 정치’인가?
오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단지 신생 민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한 민주 국가들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현재 민주주의의 붕괴는 과거 군사 쿠데타나 민중혁명 같은 비제도적 방식이 아니라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지도자와 정당이 지극히 민주적 절차에 따르는 제도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민주주의의 승리’ 또는 ‘국민의 명령’을 외치면서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보장한 ‘다수 권력’을 제약 없이 행사해서 공화국의 헌정 체제를 무너뜨린 데서 공통적이다.
이 책은 ‘누가 통치하는가’ 대신 ‘어떻게 통치하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통치자의 수가 1명이든 여러 명이든 아니면 다수이든, 위협과 폭력을 행사해서 피치자를 통치하는 것은 ‘권력 정치’이다. 민주주의 정체(政體)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될 때 이는 집권 다수 세력의 전횡을 억제하지 못하는 권력 정치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은 권력 정치로 전락한 현대 민주주의의 속성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시민 정치’를 새롭게 개념화하고, 그 역사적 실재로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탐색했다. 시민의 정치 결사체로 폴리스의 시민은 ‘스스로 통치’[자치]하는 자이고, 그는 민회에서 자율적으로 만든 규칙에 의해서만 통치될 수 있었다. 이처럼 ‘통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은 시민 정치의 핵심 원리이고 자율과 자치는 그 실행 원칙이다(1~2장). 한국 시민 정치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구한말 개혁주의 세력의 사상과 행동을 통해서 자율과 자치의 원칙이 어떻게 관철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은 까닭이다.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과 기원(1부)
서구 사회과학계의 시민 개념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한국 학계는 정작 한국사에서 서구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 시민의 존재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한국 시민 정치의 역사가 장구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 1부에서는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형성 과정을 ‘원형’과 ‘기원’으로 구별해서 서술한다.
한국 시민 정치의 원형은 개혁 엘리트와 불복·저항하는 백성의 두 흐름에서 형성되었다(3~4장).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은 보수적인 왕도정치 이상을 민본적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통해 위로부터의 변화를 시도했고, 서학과 동학 그리고 민란의 주체들은 유교 정치라는 지배자의 이념을 백성의 편에서 재해석(전유)할 만큼 똑똑했다. 스스로 통치하는 자로서 시민의 자각이 발견되지 않았고 또 근대 시민 정치와 직접적 계승 관계가 없는 까닭에 기원이 아닌 원형으로 규정했지만, 이후 한국 시민 정치의 전개에서 상상력의 원천으로 끊임없이 호출되었다.
서재필의 1차 귀국기 활동은 한국 시민 정치의 독자적 기원으로서,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개척한 공론장에서 자발적으로 공론을 형성하고 자치와 의회 개설 등의 정치개혁 운동에 나섰던 청년·학생과 신진 개화 관료들을 시민 정치의 주체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독립협회가 펼친 조숙한 시민 정치는 두 차례의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완결되었다(5~6장).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전개, ‘입헌·자강’과 ‘자치·자강’(2부)
갑오개혁과 독립협회 활동에 영향받은 재경·상경 유림 집단과 개혁 관료를 중심으로 보수적 유교 정치 이상과 결별하고 시민 정치 원리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 책 2부에서는 한국 시민 정치의 초기 전개 과정에서 이기(李沂, 호 海鶴), 홍필주(洪弼周) 등 초기 개신 유림의 주도적 역할을 복원하고, 이를 ‘입헌·자강’과 ‘자치·자강’의 두 단계로 구별해서 서술한다.
전제군주로 변모한 고종의 민회 해산 조치로 주춤했던 개혁 성향 유림 세력은 1904년 이후 시민 정치 재생기에 입헌정체 수립을 통한 자강운동(‘입헌·자강’)의 주축으로 부활하게 된다. 한때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선 충군·보황파 유림 관료 세력이 이즈음 국권 위기 국면에서 개혁 성향 유림과 협력하면서 애국·개혁 유림으로 거듭난 일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7장, 8장). 유교적 시민 정치 이론의 발전에는 국내 정치 세력과의 교섭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과 일본의 개혁 사상의 영향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량치차오(梁啓超)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9장).
위로부터의 입헌·자강 흐름과 별도로 지방에서 국채보상운동의 불꽃이 타올랐는데, 이는 시민 정치 원리를 더욱 충실히 반영한 자치·자강 흐름으로 이어졌다(10장). 대구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는 의병 유림 출신으로 자강운동의 중심 인물로 성장했고, 인근 고령군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이인재(李寅梓)는 한주학파 유림이었다. 김광제와 이인재를 비롯한 지방 유림은 국채보상운동 성과를 바탕으로 민의회(民議會)와 민의소(民議所) 등 자치를 논의·실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동시에 전통적 유교 정치를 시민 정치로 전유하는 거대한 사상적 전환 시도였다.
시민 정치 무대의 이동 – 국권상실 전후 국외 망명·이주민 자치(3부)
국권상실 전후 시민 정치의 무대는 하릴없이 국외로 옮겨갔다. 이때 정치적 망명객과 경제적 이주민이 결합한 지역·단체 자치와 민족 자치를 목표로 하는 공동체가 다수 생겨났는데, 각지의 자치 기관을 연합해서 시민 주체의 새 국가를 건설하는 독립운동 세력의 구상은 이를 토대로 수립되었다. 이 책 3부에서는 미주 지역, 서간도, 북간도, 연해주 등에서 발전한 망명·이주민 자치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시민 정치가 단절되지 않고 새로운 무대에서 사상과 실천 모두 새로운 단계로 발전한 역사를 서술한다.
대한인국민회는 안창호(安昌浩)가 주도한 미주 지역의 한인 자치 발전사를 완결한 기관이다. 안창호는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국외 각 지역의 민족 자치를 실행하고 각 기관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계획하고 실천했다(11장). 국망 전후 항일 유림은 한반도에 맞닿은 연해주, 서·북간도로 집단 망명해서 기존 이주민 세력과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했다. 류인석(柳麟錫)이 이끈 보수적인 화서학파 의병 유림은 망명·이주민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자치 규약이자 결사체인 관일약(貫一約)을 결성했는데, 전통적인 향약에서 벗어나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난 근대적 정치 단체를 지향했다. 본래 의병 세력이었다가 뒤늦게 자강운동에 참여한 이상룡(李相龍) 등 영남의 혁신 유림은 서간도로 집단 망명했는데, 이들의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와 공리회(共理會)를 통해서 유교적 시민 정치 원리에 충실한 자치를 실현했더(12장). 북간도에서는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세력과 전통주의적인 유림 세력이 민족 자치의 주도권을 두고 각기 중국의 지방 권력과 중앙 권력에 선을 대고 경쟁하다가 끝내 좌초하기도 했다(13장). 이러한 국외 망명·이주민의 자치는 영국 식민지 시기 청교도 이주민의 타운 자치가 미국 독립혁명에 인적·정신적 자원을 제공한 역사에 비견된다.
한국 시민 정치의 특수성, ‘군자-시민’의 탄생
한국 시민 정치의 구한말 기원 테제는 그것이 조선의 유교 정치 이상과 치열한 이론적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한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시민 정치 역사는 유교 정치에 대한 도전사이면서 동시에 전유의 역사이다. 이는 구한말에 탄생한 역사적 실체인 시민에게, 서구의 ‘부르주아-시민’과 구별되는, ‘군자-시민’이라는 구체적 규정을 부여한다.
본래 유교의 군자도 스스로 통치하는 자이다. 다만, 통치의 방향이 시민과 다르다. 서구 시민의 자기 통치가 정치 결사체라는 외면으로 뻗어나간 정치적 주체의 실천인 것과 달리, 군자의 자기 통치는 내면의 도덕적 완성을 향했다.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균형을 통해서 군자가 통치의 방향을 내부에서 외부로 확충해 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군주의 통치를 보조하는 자이지 통치자는 아니었다. 국권 위기에 닥쳐 뒤늦게 서구 국법과 정치를 탐구한 조선의 유림은 자기 통치 문제에 부딪혀 곤혹스러웠다. 무력한 군주를 대신할 국권 회복의 주체로 신민(臣民)을 깨우쳐 신민(新民) 곧 새로운 시민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도덕 주체로서 군자 이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국 시민 정치의 특수성으로서의 도덕주의 성향은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대화적 역사관으로 포착한 보수(의병)와 개혁(자강)의 협력
이 책은 민족주의나 민주주의 같은 단일 이념에 입각한 목적론적 서사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성성(多聲性)을 인정하는 대화적 역사관으로 재해석한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는 임박한 구체제의 붕괴 앞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 한 다수의 주체가 정해진 각본 없이 저마다 역할을 맡아 경연해 간 장편의 무대이다.
실제로 가장 완고했던 위정척사 또는 의병 유림이 개혁주의적인 자강운동 세력으로 변모하기도 했고, 한때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선 충군·보황파 유림이 국권 위기 국면에서 애국·개혁 유림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대립하던 보수와 개혁 세력이 서로 자극받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특정 국면에서는 화해하고 협력하며 더 높은 수준의 통일을 이뤄냈다. 다수 주체를 상정하는 긴 호흡의 통사 저술은 한국 시민 정치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협력과 통일의 사례들과 오랫동안 잊힌 다른 목소리를 새롭게 조명하는 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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