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서문
1부 우리는 왜 교회에서 상처받는가 ―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교회
1. 트라우마,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아픈 기억
2. 트라우마를 겪는 몸의 생존 반응
3. 믿음을 허무는 종교적 트라우마
2부 상처받은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
4. 고통의 서사를 듣다: 그들의 배경 이야기
5. 바울의 트라우마: 오해와 비난과 편견에 시달리다
6. 바울의 대응 (1):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물러서다
7. 바울의 대응 (2): 오히려 약함과 낮아짐을 자랑하다
8. 상처받은 사람의 숨겨진 감정 이해하기
3부 트라우마 없는 안전한 공간은 어떻게 만드는가 ― 상처받은 이들을 보호하는 교회
9. 물리적·정서적 안전장치 마련하기
10.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경계 정하기
11. 사생활이 보호된다는 믿음 주기
12. 서로 돕고 위로하는 기회 만들기
13. 피해자의 목소리 존중하기
14. 각자의 문화적 배경 인정하기
4부 상처와 갈등은 어떻게 치유되는가 ― 트라우마 회복을 돕는 교회
15. 상처 입은 교회가 치유하는 공동체로
[본 문]
트라우마는 기억에 깊이 각인된다. 사람들은 트라우마의 기억을 품은 채 교회에 앉아 있다. 설교에서 어떤 단어나 이름이 언급될 때 혹은 자신을 학대한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볼 때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즉시 트라우마를 겪는다. 교인들의 거의 40퍼센트가 트라우마 기억을 안고 있다. 이 현실을 인식한다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교회 문화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의도치 않게) 우리가 돌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트라우마를 입힐 수 있다. _ <1. 트라우마,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아픈 기억>
트라우마는 육체적 혹은 정서적으로 위협적이거나 압도적인 사건에서 시작되며, 그 사건은 우리의 안녕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심각한 트라우마의 장기적인 영향은 무엇일까? 대개는 트라우마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느낌,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느낌을 되찾기는 어렵다. 자신이나 남을 더 이상 믿지 못할 수도 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으며, 그런 일이 또 벌어질까 두려워하게 된다. 허리케인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곧 닥칠 것만 같은 불안감 속에서 살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트라우마는 몸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른바 트리거는 충격적인 사건을 몸이 자동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마치 그 일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일이 몸에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몸의 ‘기억 문제’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은 충격적인 일의 기억을 되풀이해서 떠올린다. 그때마다 그 일을 다시 경험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_ <2. 트라우마를 겪는 몸의 생존 반응>
나는 한 가지 문제, 즉 교인들과 목사의 갈등이 커지는 현실을 파헤쳐 보려 한다. 특히, 수많은 목사가 거의 매일 경험하는 악의적인 불평과 비난, 분노가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겠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학대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교회 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이들은 지도자들이 제대로 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 살고 있고, 그런 만큼 교회 안의 사정도 복잡하다. 다만, 교회 갈등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트라우마로부터 안전한 공간과 교회를 조성할 책임은 교회 지도자들(목사의 직함을 가진 이들만이 아니라 전체 지도자)이 당연히 가장 크다. 하지만 지도자들도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트라우마를 막을 수 있을지 트라우마를 입은 지도자들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트라우마 경험으로부터 교회가 안전해질 방법을 찾는 것이다. _ <2. 트라우마를 겪는 몸의 생존 반응>
바울은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성경 인물이다. 피터 유이치 클라크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반응을 묘사하면서 고린도후서가 “질병을 겪으며 자신의 약함을 깨닫게 되는 인간적 여정에 관한 그의 증언을 제시하고, 그가 어떻게 하나님 은혜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치유와 온전함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라고 말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바울의 신학과 고린도 교회에 대한 그의 반응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의 고통을 간과하고 축소했다. 하지만 바울의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동질감을 느낄 수 있고 그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의 마음은 고통으로 아파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물론 학대자들 중 일부는 자칭 사도라 주장하는 거짓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바울을 미워한 일반 교인들도 있었다. _ <3. 믿음을 허무는 종교적 트라우마>
교인들의 불화는 불만에서, 때로는 자존심을 다쳤거나 무시당했다는 느낌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너무 큰 권위를 주장하면서 사람들이 원치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가 불평한다. 불만이 쌓인다. 정중하게 말하고 우회적으로 행동할지라도 속으로는 앙심을 품고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권위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비난들이 쏟아지고, ‘독재자’나 ‘폭군’이 슬로건이 된다. 한 번 사용된 이 부당한 단어들은 지도자에게 달라붙는다. … 하지만 테일러의 말처럼 그들이 바울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입혔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타인이 내 상처와 트라우마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우리는 잘 안다. 우리 모두 무시당한 적이 있다. 바울은 자신에 관한 고린도 교인들의 말을 듣다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자신이 들은 모든 비판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반박하기 시작한다. _ <4. 고통의 서사를 듣다: 그들의 배경 이야기>
바울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시원하지 않게’ 말한다고 하고 그의 서신에는 ‘무게와 힘’이 있다고 말한다(고후 10:10). 양면적이라거나 간사하다는 비난을 받으니 바울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비난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다. 소심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는 비난은 고대 헬라 세상의 남성미와 관련된다. 이 남성미는 전쟁 승리, 강단에서의 웅변술, 도시를 힘 있게 이끌 수 있는 능력, 운동 경기 승리, 완벽한 몸과 관련 있었다. 바울의 행동은 헬라 세계의 지도력 지침서에 맞지 않았다. 그 대신 바울은 다른 모델을 따르고자 했다. 그의 모델은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겸손한 주 예수 그리스도다(고전 1:18-31; 11:1; 빌 2:6-11). 남성미가 부족하다는 비난은 고등학교 라커룸에서 운동선수가 계집애 같다고 놀림받는 것과 비슷하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사람들을 이끌 배짱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지 못하고, 남들이 반박할 때 자신의 입장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소심한 지도자라는 말이 사도 바울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로써 바울은 트라우마에 한 걸음 가까워지게 된다. _ <5. 바울의 트라우마: 오해와 비난과 편견에 시달리다>
바울은 “사람의 지혜”로 말하지 않았다(고전 2:4).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아볼로와도 비교하며 무시했던 것이 분명하다(고전 1:12; 3:5-15). 대중 연설가들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말은 최소한 일부 고린도 교인들에게는 설득력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이제 바울은 가볍게 순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투쟁에 나선다. 사람들을 대면한 자리에서, 수사적 담대함이 부족하다는 비난에 대해 자신은 세상과 육신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고후 10:2-6). 고린도에 갔을 때 필요하면 담대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언변은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태도는 무겁고 엄중한 서신의 분위기와 일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후 10:11). 연설가로 훈련받지 않아 말이 시원치 않다는 비난 앞에서는 방향을 바꾼다. 즉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식과 성령에게서 오는 능력을 주장하고, 이 두 가지가 연설 기술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후 11:5-6; 고전 2:1-5). 바울은 성령의 능력 주심을 주장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말의 뛰어남을 원한다. 바울은 자신의 기술이 당대 크리소스토모스 같은 연설자들에 비해 부족함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언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자기가 세운 교회들이 보여 주는 증거,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자신을 변호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는 그들의 비난을 무력화했다. _ <7. 바울의 대응 (2): 오히려 약함과 낮아짐을 자랑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와 기독교 기관이 트라우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너무 무감각하다. 그래서 자신의 문화는 건강하고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어 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트라우마 경험자에게 안전한 문화의 여섯 기둥은 이런 상실에서 우리를 치유하고 보호하여 트라우마 없는 공간을 만들려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조직, 시스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와 상호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이 과거에 트라우마를 겪었을 가능성도 가정해야 한다. 따라서 트라우마 경험자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다시 트라우마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트라우마에 대해 안전한 공간은 필요하며, 그 공간은 건강한 경계를 세울 때 확보된다. _ <10.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경계 정하기>
문화적 겸손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나는 상담자로서 그 중요성을 많이 경험했다. 내담자들이 내가 이전 상담에서 한 말이나 행동을 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내 말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이야기한다. 문화적 겸손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용기 있게 의견을 표명한 행동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다. 말이나 행동에 고의가 없었다 해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해야 한다. _ <14. 각자의 문화적 배경 인정하기>
바울의 복음적 순응은 일종의 역설이었다.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닮은 삶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전복적 방식으로 비판자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구원은 물론 생존을 위해서도 그는 그리스도를 의지했다. 성령이 주시는 안전함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비난에 맞서 도망치고 반격하고 저항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나아가는 수단으로, 극심한 고난을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는 기회로 전환시켰다. 그의 트라우마는 십자가의 삶을 증명해 보이는 수단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고난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변화시킨 비결을 보여 주었다. 그 비결이란 힘들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예수님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날 트라우마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복음적 순응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복음적 순응은 정신 치료 기법이나 긍정적 사고 기술이 아니며,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부활과 영화로 이어지는 십자가 죽음의 저항과 혁명의 모방이다. _ <15. 상처 입은 교회가 치유하는 공동체로>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상담학의 통찰을 더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 회복시키는 공동체여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목회자든 교인이든 교회 안에서 여러 이유로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비난, 권위의 남용, 편견과 배제는 때로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삶 전체를 뒤흔든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한 믿음을 허물기까지 한다.
신약학자 스캇 맥나이트와 트라우마 상담 치료사 에이드리엔 깁슨이 함께 저술한 이 책은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종교적 트라우마를 설명하고 트라우마 없는 안전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성경적·상담학적 지침을 안내한다.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왜 과거의 고통이 현재에도 반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트라우마를 겪는 몸과 마음이 보이는 생존 반응이 무엇인지, 현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여러 사례를 인용해 설명한다.
특히 이 책은 사도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와 비난, 편견과 배척으로 깊은 심적 고통을 겪었고, 스캇 맥나이트는 바울의 반응을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읽어 낸다.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물러서며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고자 했던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교회가 갈등과 상처를 다루는 방식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긍휼한 시선과 공감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상처를 알아봐 주는 안전한 공동체,
약함과 낮아짐을 자랑하는 십자가의 삶으로
트라우마를 헤쳐 나가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방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교회 안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정서적 안전장치 마련,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경계를 세우기, 사생활을 보호하는 문화 조성,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방식, 서로 돕고 위로하는 공동체적 실천 등 트라우마에 민감한 교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왜 교회에서 상처받는가》는 교회 안에서 상처받은 적 있는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 성도를 위한 책이다. 바울의 삶과 성경적 통찰, 현대 트라우마 연구를 연결하여 교회가 어떻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품고 회복시키는 공동체가 되도록 안내한다. 목회자와 교인, 교인과 교인 사이에 상처 주지 않는 교회,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환영하는 교회, 트라우마를 바르게 이해하는 공동체, 트라우마 치유가 일어나는 교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교인들의 평가, 비난, 자기주장 등으로 마음이 힘든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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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적 트라우마와 건강한 교회 문화에 관심 있는 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