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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065693 |
|---|---|
| 쪽수 | 12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AI추천 이유
시? 천천히 천천히 하자, 돌아올 거다, 다시 나에게로, 나의 시가
그 꿈속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가 보였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시인은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를 보았다. 독일로 와서 그는 바다로 갈 기회가 없었다. 바다는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들어갈 수 없었다.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손도 눈도 혀도 없어서 그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시인은 “아는 사람 집”에 다 두고 왔기에. “바다는 검고 깊어서 그 안에는 수많은 시어가 출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단 하나의 시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아니면 시가 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니면 여러 시적 자아들이 그도 아니면 수많은 이미지가 시 자체의 무의식이 모여 그 바다는 출렁이고 있었다.”(「외국에서의 꿈, 혹은 산책」)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바다가」,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잠에서 깨어 종이에다 꿈을 옮겨 적고 난 뒤 드디어 시인은 알게 되었다. 이제 아주 괴로운 날들이 오리라는 것을. 독일이라는 곳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얻었는데 정작 자신의 시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육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정작 시를 쓸 수 있는 모든 기관과 마음은 아직 그곳에 두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 뒤에 알게 된 것. “모든 것을 다 두고 온 “아는 사람 집”을 내 속에서 짓지 않는 한 나는 나는 쓸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그런데 도대체, 이 독일 도시에는 없는 나의 “아는 사람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님 이 독일 도시에 이미 “아는 사람 집”이 있는데도 그는 보지 못하고 있을까? 도무지, 시의 일생을 끌고 나갈 그 “아는 사람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옥수수 밭을 오래 바라보며 진짜 고독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뼛속까지 짐작했다. 그 고독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는 사람 집”은 아직 시인의 속에서 보이지 않고 그는 이 대학 도시에서 계속 산책중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문학의 윤리성을 강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다만 문학이 한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의 전통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같은 것만이 떠오를 뿐이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뚜렷하게 소수자로 구분이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자의 경계가 그렇게 분명하고 뚜렷하지 않은 시간 속에 우리는 산다는 것.” 발터 벤야민의 꿈속에서 괴테는 쓰기를 멈추고 고대의 꽃병 하나를 벤야민에게 선물했다. 식사를 마치고 벤야민이 괴테의 팔을 살짝 건드렸을 때 벤야민은 울기 시작했다. 꽃병이 아마도 괴테와 벤야민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유럽문명을 관통하는 전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벤야민은 어쩌면 나치 독일 사회 속에서 전대미문의 핍박을 당할 유대인의 운명을 예감한 것은 아닐까.(「발터 벤야민이 꾼 꿈 이야기」)
2013년 콘치타 부르스트가 오스트리아를 대표해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것이 발표되자 오스트리아는 술렁거렸다. 드래그 퀸의 모습이 방송에 중계될 경우 청소년의 성적 지향에 영향을 끼치고 성 문란을 조성할 것이라는 이유로. 콘치타 부르스트는 묻는다, 만일 당신이 나처럼 태어났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시인은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다수에 속해 있으므로 내 정체성은 자연이고 소수자의 정체성은 죄악이라는 태도는 언젠가는 조직적인 폭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치처럼, 수많은 소수를 죽음으로 몰았던 어떤 역사처럼.”(「수염을 단 여성」)
시리아의 두번째로 큰 도시인 알레포. 인간의 역사에서는 그곳이 잠깐 전쟁 휴지기였던 시기 시인은 그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시인은 도시의 낭만에 자신을 잠수시킬 수 있었고 저녁이 오자 그 도시의 노을에 기대어 멀리 있는 이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도시 근교를 어슬렁거리는 양들은 울면서 도시의 노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내가 그 도시에 머물 때 나는 십여 년 뒤에 이 도시가 다시 전쟁에 휩쓸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알레포 알레포」)
한 인간이 93세가 되면 무슨 말을 후학들에게 할 수 있을까.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고 말한다. 잿더미만 남은 이차대전 직후보다 지금이 더 풍요로운데 왜, 그때는 모두가 동의하던, 그리고 정열로 밀고 나가던 그 프로그램들이 지금, 우리는 왜 위기에 처해 있는가. 그래서 그는 말한다. 분노하라고, 젊은 당신들이여, 분노하라고, 분노에서 저항은 나온다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낙담이야말로 이 세상을 이렇게 지속하게 만드는 거라고.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저항을 하는 것. 저항의 의미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기에.(「왜 ‘분노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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