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 · 4
프롤로그 · 8
PART 1 [기술과 윤리] 기계는 죄가 없다, 판단은 네가 해라!
01 보낼까? 죽일까? 19명을 전멸시킨 착한 투표의 비극 ··· 17
02 쓸까? 말까? 사람 죽이는 기술에 재주 부리지 말라는 묵자의 돌직구 ··· 24
03 따질까? 믿을까? ‘결과가 참혹해도 선의지이면 그만?’ 칸트의 정신 승리 ··· 35
04 숨을까? 맞설까? ‘사고는 AI가, 책임은 네가?’ 알고리즘 뒤에 숨은 인간들 ··· 45
05 홍 쌤의 팩폭: 정답 없는 세상에서는 끝까지 질문하는 놈이 이긴다 ··· 54
PART 2 [공정과 정의] 개천에서 용 나기는 정말 끝났을까?
01 줄까? 뺏을까? 모두를 화나게 만든 어느 착한 배려의 비극 ··· 61
02 노력일까? 찬스일까? 레드카펫 위에서 얻어낸 1등급의 비밀 ··· 69
03 찬성할까? 반대할까? 흙수저로 태어날 확률 99%의 도박 ··· 78
04 배려일까? 반칙일까? 강남 1등급과 지방 1등급의 진흙탕 싸움 ··· 86
05 홍 쌤의 팩폭: 정답 없는 공정 게임에서 끝까지 질문하는 힘 ··· 95
PART 3 [미디어와 사회] 알고리즘의 노예, 네 생각은 정말 네 생각일까?
01 볼까? 말까? 내 입맛만 챙기다 갇혀 버린 디지털 감옥 ··· 103
02 진실일까? 맹신일까? 빨간 버스의 거짓말과 확증 편향의 함정 ··· 108
03 뉴스일까? 독약일까? 가짜 뉴스 습격 사건에서 살아남는 리터러시 ··· 120
04 보호일까? 통제일까? 가짜 뉴스 처벌법 논쟁 ··· 131
05 홍 쌤의 팩폭: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대로 살면 뇌는 결국 퇴화한다 ··· 139
PART 4 [환경과 책임] 공유지의 비극, 기후 위기의 계산서는 누구 몫일까?
01 키울까? 죽일까? 나 하나쯤의 이기심이 만든 지구의 파산 ··· 147
02 살까? 말까? 에코백 뒤에 숨은 착한 소비의 새빨간 거짓말 ··· 155
03 낼까? 말까? 가난한 나라에 떠넘기는 ‘탄소 청구서’라는 이름의 갑질 ··· 162
04 꽂을까? 뺄까? 종이 빨대가 빼앗아 간 나의 시원하게 마실 권리 ··· 171
05 홍 쌤의 팩폭: 환경 걱정하면서 굿즈 쇼핑하는 당신에게 ··· 181
PART 5 [개인과 공동체] 혐오의 시대, 혐오 표현은 자유일까 범죄일까?
01 웃길까? 울릴까? 누군가의 비명이 당신의 드립이 될 때 ··· 191
02 지킬까? 넓힐까? 우리 아이만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착각 ··· 198
03 안을까? 밀칠까? 혐오라는 전염병에 맞서는 보편적 사랑의 힘 ··· 210
04 묶을까? 풀까?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막는 방패인가, 입을 막는 재갈인가? ··· 221
05 홍 쌤의 팩폭: 혐오에 침묵하는 당신은 중립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이다 ··· 230
에필로그 · 238
[본 문]
침묵은 때로 가해자의 편에 서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방관자라는 안전한 가면을 벗고, 연대라는 조금은 어렵고, 가치 있는 길로 들어서려 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복잡하고 질문은 어렵지만, 디베이트 클럽의 문을 다시 두드린 여러분이 있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_ p.9
홍 쌤: 맞아요. 묵자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짓밟는 것을 막는 데에 자신의 모든 공학적 지식을 쏟아부었어요. 남을 공격하는 기술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기술에서는 당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였죠.
준혁: 그럼 묵자는 기술 그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는 ‘기술 중립성’에 반대했겠네요? 기술을 만드는 순간부터 이미 그 안에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았을 테니까요.
_ p.28
홍 쌤: 쉽게 말해 선의지란, 어떤 이득이나 좋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하려는 의지를 말해요. 칸트는 결과가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유용한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요. 결과가 아무리 나빠도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그 선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본 거죠.
_ p.36
홍 쌤: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고 믿는 세상에서 칸트의 선의지는 어쩌면 가장 무능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여러분, 모든 행동의 가치를 결과와 효율로만 따진다면 우리 사회에 제2의 이수현 님이나 김행균 역장님이 설 자리는 없을 거예요.
_ p.42
홍 쌤: 그래요. 결국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묻는 건, ‘얼마나 편리해질 것인가’가 아니에요. 우리는 나의 선택에 어디까지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칸트의 선의지가 오늘날 더 빛나는 이유는 그것이 결과의 뒤에 숨지 않는 유일한 인간의 자존심이기 때문일 거예요.
_ p.51
로버트 노직: 유전자 때문이든 뭐든 그건 준혁이의 몸이고, 상자 또한 정당하게 얻은 것이니 누구도 간섭할 수 없네. 부자의 세금을 뺏어 가난한 이를 돕는 건 결국 강제 노동일 뿐이야!
서연: 그럼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은 평생 상자를 구걸해야 하나요? 출발선이 다른 걸 방치하는 게 정말 공정인가요?
홍 쌤: 노직 교수님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내 노력이라고 믿는 것들의 뿌리엔 지능, 재력, 성격 같은 운의 조각들이 수두룩하죠.
_ p.65
마이클 샌델:(준혁의 어깨를 토닥이며) 노력을 부정하는 게 아니네. 다만 그 노력을 할 수 있었던 환경을 묻는 거지. 부모님이 자네에게 아르바이트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온전히 공부할 수 있는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면, 그 지분은 온전히 자네 것일까?
준혁: 듣고 보니 제 지분은 한 20%밖에 안 되는 것 같네요.
마이클 샌델: 바로 그걸세! 집중력조차 유전자와 환경의 선물이라면, 결과물을 혼자 다 갖는 건 능력주의의 오만일 수 있네.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뛰다가 누군가가 맨발로 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타인의 고통이 보이는 법이지.
존 롤스:_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봐 샌델 교수, 아이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게나. 준혁아, 샌델 교수의 말은 네 상자를 뺏겠다는 게 아니라, 상자 없는 친구들을 위해 ‘보정적 정의’를 실천해 보자는 거란다.
_ p.74
홍 쌤: 맞아요. 롤스 교수님이 상자를 나눠 주는 규칙(제도)을 정했다면, 샌델 교수님은 상자를 딛고 올라선 사람의 마음가짐을 물었어요. 시스템이 공정해도 사람의 마음이 오만하면 결국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거죠. 자, 이제 성균관대학교 기출문제에 등장하는 또 다른 흥미로운 개념인 ‘구성의 모순’에 대해 알아볼까요?
서연: 구성의 모순이요? 그게 뭐예요?
홍 쌤: 구성의 모순이란 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했지만, 그 합리적인 행동이 모여 오히려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해요. 예를 들어, 야구장 담장 바깥에 서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야구를 더 잘 보려고 까치발을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죠. 그런데 그 옆 사람, 뒷사람도 다 같이 까치발을 들면 어떻게 될까요?
가람: 다 같이 고생만 하고 보이는 건 똑같겠네요. 종아리만 무지 아프고요!
서연: 아! 그래서 롤스 교수님이 무지의 베일을 씌운 거군요?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다 같이 잘 보이는 규칙을 만들자고요.
홍 쌤: 바로 그거예요. 나만 생각해서는 이 무한 경쟁의 굴레를 절대 깰 수 없어요. 그래서 잠시 나를 내려놓고 우리가 다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자는 거예요. 이게 바로 롤스 교수님이 말하는 시스템의 힘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입니다.
_ p.82-83
홍 쌤: 사람들은 ‘네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공정하게 시험 봤잖아!’라고 말해요. 하지만 팩트는 더욱 냉정합니다. 말라 버린 개천에서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용이될 확률은 극히 낮아요. 2022년 경희대학교 기출문제에서 봤던 수직 상승하는 소득 그래프 기억하죠? 그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 성공 확률을 이미 세팅해 놨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하나: 그럼 개인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인가요?
홍 쌤: 아니, 개인의 노력은 중요해요. 하지만 말라 버린 개천에서 미꾸라지에게 용이 되라고 하는 건 가혹해요. 시스템이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면, 그건 고문인 셈이지. 그래서 우리에게 무지의 베일이 필요한 거란다. 그래야 이 마른 개천에 다시 물을 댈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_ p.96-97
홍 쌤: 알고리즘이 떠 주는 정보가 진실인지 묻지 않고, 빨간 버스 구호만 믿고 투표장에 가는 행위도 아렌트가 보기엔 사유의 불능이에요. 내 선택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데, 그걸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요.
하나: 리터러시는 내 뇌가 아이히만처럼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게 만드는 힘이군요.
_ p.114
홍 쌤: 서연이가 핵심을 짚었네요! 하버마스의 이론을 리터러시에 접목하면 세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첫째, 검증된 사실인가? 둘째, 내 분노를 자극해 대화를 방해하는가? 셋째, 이 정보로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 리터러시란 결국, 멈춰 서서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힘이네요? 알고리즘이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게 아니라, 이게 진짜인지 직접 검증해 보는 거요.
홍 쌤: 디지털 시민의 위기는 우리가 생각을 멈출 때 찾아와요. 하지만 우리가 비판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하면, SNS는 다시 세상을 연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어요.
_ p.126
홍 쌤: 둘째, 뇌를 알고리즘에 맡기지 마세요. ‘왜 이게 나한테 떴을까? 반대 의견은 뭐지?’ 하고 의심하는 순간, 여러분은 데이터 사육장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이 됩니다.
서연: 클릭 한 번의 무게를 견뎌야겠네요. 허위 사실 유포 뒤엔 7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무거운 책임이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_ p.141
홍 쌤: 그래서 주민들은 서로를 감시하거나, 관리인을 둬서 꼼꼼히 확인했어요. 만약 규칙을 어기다 걸리면 가차 없이 벌금을 내게 하고요. 즉, 우리 마을을 위해 정한 약속을 지킨다는 ‘자치권’이 비극을 막는 힘이었어요.
가람: 하딘의 말처럼 다 같이 죽을 운명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으로 비극을 멈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보여 준 거네요.
홍 쌤: 정확해요. 기후 위기라는 공유지의 비극 앞에서 우리가 써야 할 답안지가 바로 이런 약속 아닐까요?
_ p.151
홍 쌤: 그래서 보울스 교수님은 ‘인센티브는 도덕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라고 경고했어요. 실제로 이스라엘 어린이집은 벌금 제도를 없앤 뒤에도 지각률이 줄지 않았어요. 한 번 파괴된 도덕적 규범은 돈으로도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서연: 샌델 교수님이 말한 ‘비시장적 가치의 훼손’이 바로 이거군요. 동료에 대한 배려와 환경 보호처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에 자꾸 가격표를 붙이니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거예요.
하나: 결국 착한 소비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요. 소비라는 욕망에 ‘착한’이라는 라벨을 붙여서 죄책감 없이 더 많이 사게 만드는 마케팅 아닐까요?
홍 쌤: 날카로운 지적이에요. 경제적 보상이 도덕적 규범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우리가 정말 환경을 위한다면 ‘무엇을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도덕적 책임을 유지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_ p.159
홍 쌤: 좋습니다. 준혁이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는 방패가 됐고, 서연이는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날카로운 칼이 됐네요. 사실 정답은 그 칼과 방패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만들어 가는 ‘균형점’에 있어요. 국가가 규제하려면 일관성 있는 비전을 보여야 하고, 개인이 자유를 누리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_ p.177
서연: 제품 자체가 가짜라기보다, 이걸 사면 환경을 지키는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서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게 문제야. 진정한 친환경은 새로운 굿즈를 사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컵을 계속 쓰는 거야.
홍 쌤: 서연이가 아주 중요한 지점을 짚었네요. 여러분, ‘리바운드 효과’라는 말들어 봤나요?
가람: 리바운드요? 농구에서 공을 다시 잡는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홍 쌤: 비슷해요. 환경을 보호하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나쁜 결과로 튕겨 돌아오는 역설을 말해요. 예를 들어, 연비 좋은 차를 산 뒤에 안심하고 차를 더 많이 타서, 결국 전체 연료 소모량은 늘어나는 현상 같은 거죠.
_ p.183-184
홍 쌤: 준혁이가 말한 표현의 자유는 소중해요. 하지만 자유엔 반드시 책임이라는 그림자가 따라요. 영상 속 아저씨는 볼링공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이웃이에요. 그분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웃음은 공동체의 품격을 갉아먹는 독약과 같단다.
하나: 맞아요. 만약 저 영상 속 주인공이 내 가족이라면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성균관대학교 기출문제에서 말한 ‘공적 감정’은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슬퍼하는 본능이잖아요. 누군가의 비극을 보고 웃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분을 존엄한 인간이 아니라 구경거리나 벌레처럼 취급하는 혐오를 시작한 걸지도 몰라요.
_ p.194
홍 쌤: 가람아, 가장 위험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란다. 네가 걷고 고민하며 키운 그 도덕적 근육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야. 다만 준혁이가 말한 효율적 이타주의는 ‘우리가 자원을 쓸 때 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지.
서연: 하지만 선생님, 국가 이익이 먼저라는 저 65.5%의 숫자를 보면… 세계시민주의는 그냥 교과서에만 있는 꿈처럼 느껴져요.
홍 쌤: 세계시민주의는 국적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야. 애국심 위에 지구촌이라는 더 큰 우리에 대한 책임을 한층 더 쌓아 올리는 거란다. 65.5%의 숫자는 우리가 불안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하지만 기후 위기나 난민 문제는 이제 성벽을 높게 쌓는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_ p.207
홍 쌤: 2,500년 전 묵자가 외쳤던 글자가 오늘 다시 숨을 쉬는 것 같구나. 얘들아, 혐오에 맞설 유일한 백신은 어쩌면 내 손에 든 효율이라는 잣대를 내려놓고, 타자의 젖은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 짧은 찰나에 있는지도 모른단다.
_ p.216
홍 쌤: 법은 공동체가 어디까지 서로를 견뎌 줄 것인지 약속하는 선이죠. 묵자의 ‘겸애’를 법의 강제력으로 실천할지, 밀의 말처럼 자유로운 토론의 시장에 맡길지는 결국 시민들의 몫이지.
준혁: 하지만 선생님, 법으로 도덕을 강제할 때 생길 부작용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홍 쌤: 맞아요. 법이 만능은 아니에요. 하지만 서연이 말처럼 그 시장에서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쫓겨나는 이들이 있다면, 그 시장은 이미 제 기능을 잃은 게 아닐까?
_ p.225
홍 쌤: 노숙인 영상에 ‘게으른 사람은 당해도 싸다’라는 댓글이 달렸다고 해 보자. 거기다 대고 ‘당신 나쁜 사람이야!’라고 하면 싸움만 나겠지? 대신 ‘저분도 우리와 똑같은 시민인데, 이런 영상을 올리는 건 인권 침해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준혁: 그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눈 하나 깜빡 안 할 것 같은데요.
홍 쌤: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이건 가해자를 교화하려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다수의 방관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에요. 단 한 명이라도 아니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구나’ 하며 용기를 얻거든요. 그게 바로 혐오의 연료를 차단하는 방법이에요.
_ p.233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 한마디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질문의 근육을 키워 냅니다.
토론은 교실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배운 사고의 근육을 가지고 여러분의 삶터에서, 학교에서, 단톡방에서 진짜 토론을 이어가세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여러분이 내는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하고 혐오보다 환대가 앞서는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