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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4737612 |
|---|---|
| 쪽수 | 27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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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반지』는 대한민국 ROTC 14기 문인회가 임관 50주년을 맞아 엮은 시·수필 문집이다. 1976년 임관한 동기 2,504명 가운데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해 온 서른하나의 필자가 참여했으며, 그 결과물은 단순한 동인지의 범주를 훌쩍 넘어선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소재의 무게 때문이 아니다. 6·25의 상흔이 남은 전방 능선, 공수특전사의 혹독한 훈련, 판문점 위기의 팽팽한 긴장감-그것들은 배경일 뿐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 배경을 살아낸 사람들이 지금 이 나이에 와서야 꺼낼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죽은 병사의 눈을 감겨주던 손의 떨림, 낙하산이 펼쳐지던 순간 허공에 외친 연인의 이름, 복날마다 아버지와 소주를 나누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의 먹먹함. 그런 것들이다.
시 부문에서는 바람·파도·낙엽 같은 자연의 언어를 통해 생사와 이별, 그리움을 다루는 절제된 서정이 인상적이다. 수필 부문은 더욱 넓다. 가야금 연주회의 끊어진 줄 하나에서 어린 시절 무당 여인의 비극을 떠올리는 섬세함이 있는가 하면, 인도네시아 열대 밀림에서 미나리를 발견하고 농사를 일군 선교사의 이야기도 있고, 몽골 초원에서 밤하늘 별무리 속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찾는 노년의 그리움도 있다. 삶의 결이 모두 다른 서른하나의 목소리가 한 권에 모였음에도 이 책은 하나의 통일된 정서를 가진다. '잘 살아냈다, 그리고 감사했다'는 고백이다.
문학적으로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1994년 『한국수필』 등단작인 김한호의 「어두운 세월 저편의 소리」는 가야금 선율과 기억의 중첩을 탁월하게 다루고 있으며, 박덕은의 「집을 부검하다」는 공간을 해부하는 독특한 은유 구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문인기의 연작 수필들은 이국 선교지에서 바라본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증언한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오르고, 스페인 순례길을 걷고, 빗속 캐나다 산길을 넘는 이 사람들에게 노년이란 쇠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마침내 언어가 되는 계절이다.
『초록반지』는 26만 ROTCian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 시대를 통과한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남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