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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70370789 |
|---|---|
| 쪽수 | 144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양장 |
- 예술 > 사진
AI추천 이유

공중에 떠도는 존재를 향한 눈짓과 손짓
때로 총에 비유될 정도로 카메라는 공격성을 지닌 도구다. 눈에 띄지 않고 몰래 피사체에 다가가는 몸짓, 다른 이들보다 더 재빠르게 프레이밍하는 몸짓, 셔터 찬스가 제대로 명중했는지 확인하는 몸짓, 이러한 몸짓은 저격수와 유사하다. 그런 탓인지 때로 수줍던 이마저 카메라를 들면 저돌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일단 카메라를 잡으면 적진으로 뛰어들어 원하는 이미지를 훔쳐 오는 것이다. 그 쾌감이 비록 우리의 시선을 윤리적으로 무디게 만들지라도, 그 에너지가 없었다면 이미 사진은 푸석하게 말라비틀어졌을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가까이, 더 빠르게 (훔쳐)보려는 의지가 결국 사진이라는 거대한 눈덩이를 굴린 원동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훤의 카메라는 어느 순간, 어떤 장면에서도 몰래 재빠르게 안으로 치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의 사진 주변에는 ‘선뜻 치고 들어갈 수 없음’의 분위기가 맴돈다. 가까이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고, 피사체를 불러 세우기보다는 그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앞을 마주하기보다는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자꾸만 주변부를 더듬는다. 이는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바라본다는 의식에만 몰입하기에 앞서 이미 나 자신이 먼저 보일 거라고 알아채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타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은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결국 드러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주류와는 다른 얼굴, 중심과는 다른 말투를 지녔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안으로 더 안으로 치고 들어갈 수 없던 이훤의 눈과 입은 바라봄과 보여짐 사이에서,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밖으로 또 밖으로 밀려난다. 그 눈과 입은 나의 얼굴을 닮은 형상을 나의 말투와 닮은 단어를 쫓는다. 이방인의 얼굴과 말투처럼 주류에 속할 수 없고 중심에 머물 수 없는 그 형상과 단어들은 서로 뒤섞여 공중을 떠다닌다. 이훤은 자신을 포함해 땅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두가 함께 머물 곳을 찾아 헤맨다. 이 여정의 파편들이 때로는 사진으로, 때로는 시와 산문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책 『공중 뿌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계속 자꾸만 ‘무언가로부터 이탈하는 동안’ 바라보았거나 적었던 사진과 글에는 주변부에서 떠도는 존재들을 다정하게 호명하는 이훤의 눈짓과 손짓이 깃들어 있다. 이제 그의 눈은 자신과 닮은 그들이 떠다니는 몸짓 너머의 공중을 바라본다. 이제 그의 입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함이란 어쩌면 어디든 가 닿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닐까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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