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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K-철학 - 나를 구원하지 않고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 유정길, 강철, 조성환, 양애진, 이나미
- 모시는사람들
- 2026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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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66292767 |
|---|---|
| 쪽수 | 20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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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를 넘어 K-철학으로
오늘날 세계는 K-팝을 소비하고, K-드라마에 열광하며, K-푸드를 즐긴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계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지만, 과연 한국의 사상도 함께 만나고 있는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K-철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이 책은 단순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를 해설하는 문화비평서가 아니라 한 편의 글로벌 콘텐츠를 통해 한국 사회와 한국 사상의 현재를 다시 묻고, ‘K-철학’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제안하는 문제의식이 담긴 시도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연구 대상보다 연구 방법에 있다. 지금까지 〈케데헌〉을 다룬 많은 연구가 전통문화나 서사구조, 문화콘텐츠 분석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작품을 가능하게 한 한국적 세계관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불교, 윤리학, 한국철학, 샤머니즘, 페미니즘, 정치사상이라는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다섯 연구자가 하나의 작품을 각자의 언어로 읽어내면서도, 결국 ‘K-철학’이라는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수렴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이 책은 한국철학을 박물관 또는 연구실에서 현재로 끌어낸다. 흔히 한국철학이라고 하면 원효, 퇴계, 율곡, 다산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 속에서 한국철학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들은 전통을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자원으로 이해한다. 전통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해석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철학이 된다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제기하는 ‘한국철학’과 ‘K-철학’의 구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의식이다. 한국철학은 한국의 사상 전통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K-철학은 그 전통을 오늘의 문제와 세계의 언어로 다시 창조하는 살아 있는 철학이다. K-철학은 과거의 철학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고,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의외로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세계관을 소비하고 있는가?”
〈케데헌〉은 악귀를 물리치는 액션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저자들은 그 안에서 자기 구원과 세상 구원, 상처와 치유, 다양성과 공존, 사람됨과 공동체라는 거대한 철학적 질문을 발견한다. 특히 ‘골든 혼문’에서 ‘무지개 혼문’으로의 전환을 완벽성에서 다양성으로, 배제에서 포용으로의 전환으로 읽어내는 해석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경쟁과 효율, 성공과 완벽을 향해 달려온 사회가 이제는 상처와 결핍마저 함께 품는 공동체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목할 부분은 ‘인간’과 ‘사람’을 구별하는 새로운 윤리학이다. 이 책은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보다 관계와 책임을 수행하는 존재인 ‘사람’을 강조한다. 인간인가 아닌가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살아가는가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인공지능과 로봇,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 앞으로 인간과 기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무엇이 인간인가?’보다 ‘누가 사람인가?’가 더욱 중요한 윤리적 과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케데헌〉을 통해 포스트퍼슨(post-person)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시도는 이 책이 단순한 콘텐츠 해설을 넘어 현대철학의 새로운 논의를 제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K-철학이라는 전문적인 관점으로 〈케데헌〉을 분석하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이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는, 철학을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내 삶의 일부로서 접근할 수 있도록 풀어내기 때문이다. 루미와 진우라는 캐릭터의 갈등, 팬과 아이돌의 관계, 악귀와 인간의 경계, 수치심과 치유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교의 업(業), 동학의 다시개벽, 샤머니즘의 해원, 윤리학의 사람 개념을 만나게 된다. 철학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철학을 다룬 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는 루미의 마지막 선언인 “새로운 혼문을 만들겠다”를 동학의 ‘다시개벽’과 연결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먼저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를 넘어,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존재로 인간을 이해한다. 이는 경쟁과 자기계발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완벽해져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메시지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철학이다.
또 하나 이 책의 강점은 한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한국 문화가 세계에서 인기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묻는다. 왜 일본은 〈겨울연가〉에 열광했고, 미국 청소년들은 〈케데헌〉에 공감했으며, 중국은 H.O.T.를 사랑했고, 아랍권은 〈대장금〉을 선택했는가? 저자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적 맥락이라고 말한다. 한류를 자랑하기보다 세계인의 결핍과 희망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K-콘텐츠가 지속될 수 있는 길이라는 분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이 출간되는 시점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강국이 되었지만, 동시에 저출생, 양극화, 혐오, 경쟁, 불안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이 책은 문화를 산업이 아니라 문명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K-팝이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음악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자기 긍정과 공동체, 치유와 희망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K-콘텐츠의 힘은 기술이 아니라 세계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끊임없이 환기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들의 사유를 따라가기만 할 필요가 없다. 저자들이 〈케데헌〉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듯이 독자들도 이 책의 논리, 나아가 〈케데헌〉을 나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내가 본 〈케데헌〉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뿐 아니라 앞으로 만나는 K-드라마와 K-영화, K-팝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텍스트로 읽히기 시작한다. 동시에 원효, 동학, 무교, 풍류, 해원 같은 한국 사상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문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한국 문화가 세계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더 나아가 한국철학이 어떻게 세계철학이 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첫 번째 본격적 시도이기도 하다. K-콘텐츠의 시대를 넘어 K-철학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한 사람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K-콘텐츠의 미래를 고민하는 문화기획자, 한국 사회의 방향을 고민하는 연구자, 그리고 “왜 지금 세계는 한국 문화에 주목하는가?”를 알고 싶은 일반 독자 모두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책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더 이상 K를 단순한 국가 브랜드로 보지 않을 것이다. K는 하나의 콘텐츠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와 대화하는 새로운 사유 방식이며 문명적 상상력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한국 사회와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