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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86643259 |
|---|---|
| 쪽수 | 2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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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세이/시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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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역사에서 여성이 압도적인 역량을 발휘해 온 단 하나의 예술 분야를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시(詩)다. 태고 때부터 중국, 일본, 인도, 중동, 유럽 등 고도화된 문명에서는 언제나 걸출한 여성 시인들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여성이 시인으로서 인정받는 길이 평탄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타 예술 분야의 문호가 여성에게 사실상 거의 닫혀 있던 시대에도 시는 종이와 필기구, 그리고 후대에 자신의 작품이 필사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만 있으면 충분했다.
‘세계 여성 시인선 100’이라는 부제가 붙은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기원전 2300년경 인류 역사상 이름이 기록된 최초의 작가인 엔헤두안나에서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지난 4천 년간 시(詩)라는 가장 내밀한 무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온 여성 100인의 슬픔과 열정과 고독의 연대기다. 이들에게 시는 단지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억압과 상실과 분노를 다른 방법으로는 분출할 수 없을 때 선택한 유일한 형식이었다. 서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시인들은 시대도, 언어도, 고통의 이름도 달랐지만 이 책에서 이상하리만치 메아리가 겹친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여성 시인들의 시만을 그러모았기 때문이 아니다. 각 시 옆에 배치된 짧지만 날카로운 해설은 시인의 삶과 시대를 정면으로 직시하도록 설계되었다. 펜과 종이만으로 사랑의 열망을, 사별의 정적을, 혁명의 분노를, 분만대 위의 절대적 고독을 다스리고 자기 구원에 도달했던 시인들의 목소리는 에칭 스타일로 정교하게 복원한 초상과 맞물려 독자에게 텍스트 그 이상의 직관적인 전율을 선사한다. 또한 낡고 예스러운 어미를 과감히 걷어낸 현대적인 번역과 원문의 호흡을 살린 시행 구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어로 시인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되살린다.
세계 문학사가 중심부에 놓지 않았던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가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한 권에 처음으로 나란히 담겨 독자를 맞이한다. 슬픔에게 언어를 준다는 것은 형태 없는 고통이 비로소 ‘글’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며, 슬픔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에 담긴 시 100편이 그 증거다. 덧붙여 엔헤두안나, 술피키아, 알칸사, 미흐리 하툰, 이사벨라 휘트니, 나조 토키, 필리스 휘틀리, 파르빈 에테사미, 사이마 하르마야, 조이 데이비드먼 등 국내 처음 소개되는 시인의 작품들은 다양한 언어와 시대에 걸쳐 존재하는 여성시의 문학적 지평을 접하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작가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