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 에버하르트 아놀드 >
우리는 왜 기도하는가
참된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기도가 막힐 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의 위력
< 리처드 포스터 >
―“아놀드의 기도를 오늘과 잇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세 가지 움직임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는 여정”
시대를 초월한 기도자의 통찰
“폭풍 속에서 길어 올린 기도의 언어”
기도,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왜 기도하는가”를 읽고
우리가 잃어버린 기도의 출발선
“참된 기도란 무엇인가”를 읽고
내가 응답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를 읽고
변화되지 않은 자아, 기도의 가장 끈질긴 훼방꾼
“기도가 막힐 때”를 읽고
상처 입은 진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실천적 기도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의 위력”을 읽고
주
[본 문]
<21-23쪽 중에서>
만일 누가 기도를 단지 자기 양심의 깊은 곳의 성찰, 또는 더 나은 것을 찾으려는 영혼의 깊은 독백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는 아직 참된 기도와는 거리가 멀며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아직 문밖에 있거나 기껏해야 문지방에 서 있을 뿐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는 아직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성소를 지나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자아와 자아에 속한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영혼의 깊은 감정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는 아직 지성소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와 완전히 구별되시며 천사들의 우두머리보다도 높으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부르기를 바라신다. 여기에 기도의 출발점이 있다. 우리 내면의 상태가 아무리 성화되고 깊어졌다 해도 하나님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분이심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선하심과 사랑 앞에 서면 그분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그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뜨거운 불꽃 주위를 맴돌다 마침내 타 버리는 나방에 비유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는 ‘나’라는 존재가 소멸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나, 곧 나의 영이 크신 하나님의 영을 만날 때 우리 영혼은 깨어나 비로소 참된 생명을 누리게 된다.
<26-27쪽 중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이 마르지 않기를 기도하셨듯이(눅 22:32) 나중에 사도들의 말을 통해 믿게 될 우리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셨다(요 17:20). 하나님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령은 그들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게 하시며, 그들에게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그들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와 다르지 않게 하신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신 뒤 우리가 그분을 부를 때 우리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틀림없이 그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잊었을 때도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30-31쪽 중에서>
하나님과 너무도 멀어져 진리에서 동떨어진 우리 인간들은 기억해야 한다. 빛과 따스함과 능력으로 충만한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 더러움이란 조금도 없는 곳에 계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빛처럼 흘러나오지만, 우리는 인간 존재의 어스름 속에 잠겨 분명한 생각이나 말을 찾아보려 애써도 부질없을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신음과 한숨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한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성령을 보내 달라고 진심으로 간구하면 성령이 오셔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행 4:31; 8:15-17). 성령의 신적 능력은 언제나 현존하며, 번개처럼 내리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역사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은 기도 가운데 겸손히 집중하며 준비된 우리의 마음이다.
<37-38쪽 중에서>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시며, 그분의 백성이 그분 뜻대로 기도할 때마다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 계신다. 깊은 곤경에 빠져 더 이상 자신의 노력이나 사람의 도움을 의지하지 않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만을 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개입과 그분의 불, 그분의 비, 빛나고 흘러넘치는 그분의 사랑의 능력만을 구할 때 그분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신다. 우리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고, 위선 없이 흔들림 없는 온전한 정직함으로 드려질 때 그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조화를 이룬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38-39쪽 중에서>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때는 하나님과 매우 가까웠지만,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어요.” 그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이 그 상황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시려는 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명령하려 하거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셔야 하는지를 정하려 한다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한다. 그런 기도는 하와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던 바로 그 어둠의 영에서 나온 것이다.
참된 기도는 우리 스스로 기도의 올바른 방향을 잡을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또한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30)라고 고백할 만큼의 온전한 순복과 온전한 신뢰를 요구한다.
<41-42쪽 중에서>
하나님은 항상 준비되어 계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뜻에서 우러나는 강렬한 열망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말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모든 삶 속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믿을 때 마침내 하나님은 늘 원하셨던 대로 개입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셔서 우리 믿음의 분량대로 모든 것이 우리가 구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의 기도가 넘지 못할 너무 높은 담이나 산이나 장애물은 없다. 우리가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고 기도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중에도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온전히 확신할 수 있게 된다(요 11:41).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능력과 권세는 예수님과 얼마나 온전히 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삶과 갈망과 기도가 예수님과 일치되어야 한다.
<42-43쪽 중에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극심한 가난과 쓰라린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감당하고 그분의 고뇌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죽음의 잔을 마시지 않고서는 그분의 부활의 능력과 장차 올 세상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마 20:22).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우리도 피와 고뇌의 잔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신뢰하며 기도해야 한다.
<46쪽 중에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철저히 무력해지고 더는 기댈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신다. 우리가 정말로 간절한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우리도 원하는지 보시려는 것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압박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더욱더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눅 21:36). 그러면 우리 기도는 응답받을 것이다.
<49-50쪽 중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갈망한다. 즉, 하나님과 연합하고 성령이 다른 모든 영을 온전히 다스리시기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려 할 때 우리의 본성이 항상 끼어든다. 우리의 인격이 그 길을 가로막는다. 우리 각 사람 안에는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중심을 두지 않거나 예수님의 영과 맞지 않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 성격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기도에는 저마다의 잘못과 욕망이 섞여 들기 마련이며, 그것이 기도의 짐이 된다.
우리의 허물뿐만 아니라 걱정의 어두운 구름이 우리를 둘러쌀 때도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의 신선한 바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정결하고 맑은 임재에 둘러싸여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의 걱정을 몰아내 주시고 하나님이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달라고 간구할 수 있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유혹에 맞설 수 있다(마 26:41).
<51-53쪽 중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복하고 모든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들을 구하는 기도는 아무 효력이 없다(약 4:2-3).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짓누르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장 크게 갈라놓는 죄는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이 낳는 차가운 오만이다. 기도의 열쇠는 모든 특권과 권리, 자기를 내세우는 마음의 모든 요구, 모든 자기 정당화, 자신의 덕으로 이룬 모든 좋은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랑과 선함의 반대이며, 죄의 가장 깊은 뿌리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교제와 이웃 사랑의 뿌리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과분한 은혜와 좋은 선물들을 받았음을 깊이 깨닫는 데 있다. 우리가 자아로 가득한 나머지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결코 하나님께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남보다 더 악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신다(눅 18:9-14).
<65-66쪽 중에서>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악과 고통의 무게를 견디려면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악을 행한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셨을 때 이러한 태도를 전제 조건으로 두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중보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이 용서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우리도 원수들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데반이나 다른 많은 순교자처럼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모든 나라의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하며, 그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데 하나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하되, 온 세상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67-68쪽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해 주시고, 우리가 스스로는 만들어 낼 줄 모르는 것을 존재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우리로서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변화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절대 일으킬 수 없는 역사를 펼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지금의 질서가 산산이 무너질 수 있다고 믿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부르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심판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는가? 우리가 성령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번개로 우리를 치셔서 마침내 오순절을 경험하게 하실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고 진정 믿는가? 우리의 간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의 현실을 뚫고 들어오리라고 믿는가? 우리가 기도한 결과 온 세상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집힐 것이라고 믿는가?
<70-71쪽 중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영들보다 더 강하시다. 우리의 믿음과 삶과 행함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응답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단 한 가지 목표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은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우리가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가장 담대한 기도조차 능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알도록, 우리가 아직 기도하는 중에, 아니 기도를 입 밖에 내기도 전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문을 두드리며 하나님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사람은 구하는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받을 것이다.
<101-102쪽 중에서>
아놀드는 우선 하나님이 편재하심을 일깨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신다.” “그분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신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이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주기도문의 첫 구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암송할 때 실제로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히브리 우주관에서는 하늘이 여러 개이며, 첫 번째 하늘은 우리를 둘러싼 대기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코앞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셨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117쪽 중에서>
실로, 모든 참된 기도는 아픔과 고통, 슬픔과 고뇌로 가득한 진짜 세상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는다.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두 계명은 하나다. 우리의 기도는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수고를 포함한다. 이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세상의 상처 입고 깨어진 이들 가운데로 들어가 실제로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기도다. 그러나 이는 우리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과 동역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가 쏟은 수고를 훨씬 능가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