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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67903754 |
|---|---|
| 쪽수 | 31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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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인간을 살해하고 인간은 같은 인간을 사냥하는 세계
살아 있는 것들, 살아 있지 않은 것들,
살아 있을 수 없는 것들, 이름 없는 것들이 엉켜 벌이는 사투
지금 ‘순리’는 어긋나고 ‘폭력’과 ‘억압’의 체계는 무너진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의 세계관을 여는 1부 「밤이 오면 우리는」은 우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의성 있는 주제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인류의 가장 중대한 실수였던 ‘핵실험’과 그 핵실험을 둘러싼 강국들의 견제와 이어진 전쟁……. 그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인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행성 전체가 멸망할 것이었다”. 이에 “편견이 없고 공정”하게 사고하는, 합리적인 매체인 ‘기계’에게 인류는 미래를 맡긴다. 그리고 로봇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정작 이 이야기에서 인간을 가장 잘 죽이는, 인류 최대의 적은 공교롭게도 ‘기계’가 아니다. “인간을 죽이는 일에” 특화된 건 같은 인간이다. 이들에 맞서 인류 문명을 지키겠다고 저항에 나선 이들 중에는 물론 인간도 있지만,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나’와 같은 ‘흡혈인’이 큰 축을 이룬다. 이에 더해 “난 사람이에요”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의 등장은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설의 질문을 끊임없이 곱씹게 한다. ‘인조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은 존재가 있었노라고.
이어지는 2부 「예언자」는 「밤이 오면 우리는」의 등장인물인 ‘마리카’라는 여성 인물에 집중한, 일종의 1부의 ‘프리퀄’ 격인 이야기이다. 정보라 작가는 이 작품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및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예언자」는 기계-로봇의 지배 이전, 중등 교사였던 마리카의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학교에 생긴 변화들을 실감 나는 묘사로 그려낸다. 식민 국가가 점령지민들로부터 자본, 나아가 ‘존엄’마저 빼앗는 상황은, 한국인이라면 떠올릴 수 있을 근현대사의 몇 가지 사건들을 연상케도 하며 독자를 이야기에 깊숙이 집중시킨다. 와중에 ‘적’의 국가와 대기업은 점령지의 사람들의 노동과 학습을 모두 기계로 대체하며 그에 필요한 기계의 임대료와 수리비를 청구하는 등 전쟁 상황과 기계-로봇의 지배가 교묘하게 섞이면서, 혼란을 야기한다. 말미에 이르러 ‘마리카’를 비롯해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꽤 충격적인 것이다.
3부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서 왔다」는 「밤이 오면 우리는」 이후 시점을 다룬다. 「밤이 오면 우리는」에서 지구는 인간이 적어졌지만 그래도 생물종의 보존이 이뤄지고 있는 곳으로 그려졌으나, 3부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계속되는 공습으로 당초 기계-로봇의 목표 중 하나였던 생물종의 보존은 옛이야기가 되었으며 더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다. 흡혈인도 눈에 띄게 줄어 은신하고 있던 ‘나’에게 자신이 ‘마리카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찾아오며 소설은 시작된다. ‘인간의 적으로서의 인간’을 배양하기 위해 기계가 인간 여성을 이용하고 그렇게 태어난 인간들은 마약으로 통제하고 있었던 현실이 ‘특수작업공장’이라는 배경 아래 처참하게 펼쳐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3부의 결말에 이르러 그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것들’, 즉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없었거나, 자신의 자리가 없던 것들이다. 『이름 없는 것들의 밤』에서는 ‘장애’를 지닌 흡혈인, 본인이 로봇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로봇, 점령국의 여성, 결혼이 강제되는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남성, 다양한 것들을 갈아 먹여 무엇도 아닌 냄새를 풍기는 ‘개’ 등의 비인간까지 본래라면 주목받지 못했을 소위 ‘바깥’의 존재들이 중심인물로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1부에서 3부에 이르기까지 정보라 작가는 시종일관 이들을 말미암게 한 “폭력적인 집단, 비인간적인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표하며,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연약하고 부드러워도 되는 세계”를 꿈꾼다. 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의 열쇠는 바로 이들이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리를 거스르고 폭력과 억압의 체계와 싸워 무너”뜨릴 “세상의 모든 비이성적인 존재들”, 지금껏 이름을 가진 적 없던 이들에게 말이다.
· 작가의 말
세상은 ‘신’과 ‘악마’, 무조건적인 선과 무조건적인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인간은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한,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단 한 번만 세상에 존재하며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단 한 번만 경험하는 모든 순간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다치고 병들고, 늙고, 죽는다. 모든 인간은 작고 연약하고 무지하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힘의 논리를 강요하며 인간존재를 자기들의 이득에 맞춰 바꾸려는 집단이나 체제가 있었다. 1부와 2, 3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이런 폭력적인 집단, 비인간적인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연약하고 부드러워도 되는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