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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30396767 |
|---|---|
| 쪽수 | 740쪽 |
| 크기 | 규격 외(176mm X 248mm, 크라운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정치/사회 > 행정학
AI추천 이유

글을 시작하며
전작 《대한민국 공공재정론》(2022)은 철저히 재정을 다루는 실무가로서 정책 현장의 한가운데서 겪어야 했던 고민과 그로부터 터득한 지식과 노하우를 정리한 책이다. 공공재정을 자원을 배분하는 수단 중 하나로 보는 시각에서 올바른 예산 편성과 재정관리의 방안들을 다루었다. 당시 책을 쓴 동기는 이러했다. 저자는 운이 좋게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고 국회라는 직장에 들어가 국민 세금으로 녹을 받았다. 더구나 입법과 예산 심의의 한복판에서 국가 정책의 결정 과정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여러 분야의 정책과 사업에 대해 검토하고 분석할 기회를 누렸다. 이 특별한 혜택을 갚는 방법 중 하나가 책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쉽지 않았으며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 주춧돌을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튼튼한 집을 높게 지을 수 없다. 지식과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 국가 정책은 어느새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 혜택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후 4년 만에 쓴 《나쁜 시장 좋은 정부》는 전작의 아쉬움에서 비롯되었다. 《대한민국 공공재정론》이 정책과 사업을 실무가의 입장에서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좀 더 이론적 시각에서 나무보다는 숲을 보고자 했으며, 피상적인 현상만 탐구하기보다는 문제의 근본으로 들어가서 근원적인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만큼 더 어려웠고 실제로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다. 수많은 문제와 백가쟁명으로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 사이에서 본질을 꿰뚫지 못하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생태계는 하위 요소들이 매우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문제의 본질적인 해법을 찾지 않으면 생태계가 점점 엔트로피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배경에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상황도 한몫했다. 잘 알겠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인구 위기와 기후 생태 위기는 물론, 일자리와 양극화 위기까지 복합 위기 속에서 끓는 물속 개구리처럼 점점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필자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일원이다. 국가의 앞날에 대해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고뇌라는 것은 이른 나이부터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나의 두 자녀와 너무도 어려운 취업 환경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청년들을 보면서 더 강화된다. 이들에게 더 나은 공동번영의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것은 부모세대의 당연한 책무라고 믿는다. 우리의 선배 세대가 훌륭한 대한민국을 물려줬듯이 나도 자녀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17세기 애덤 스미스가 고민한 국부의 원천에 관한 것이다. 자유시장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벌어들인 소득을 지키고 또 불리기 위해 열심히 저축한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소득을 창출하고 체계적으로 투자하여 부를 쌓아야 공동번영을 위한 성공한 국가의 조건이 완성된다. 그 핵심 비결은 자원배분에 있다. 자원배분은 현세대의 소비를 위해 얼마를 생산할 것인지, 그리고 미래세대의 소비를 위해 얼마를 생산성 향상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공적 수요와 사적 수요, 생산(투자)과 소비, 근로와 여가 사이에 최적의 황금 조합을 찾는 과정이다.
나는 공동번영의 자원배분이 나쁜 시장과 좋은 정부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장은 본래부터 이기적 배분자라는 점에서 착하고 좋은 시장을 기대하거나 시장을 비난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오히려 나쁜 시장 덕분에 인류가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시장은 누군가 외부의 설계자가 의도를 갖고 선하게 작동하도록 만든 장치가 아니다. 자연발생적 질서 속에서 특유의 운동법칙을 갖고 태어났으며 지금껏 복잡한 생태계로 진화했을 뿐이다. 그러니 인격적 실체도 없는 시장에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은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다 시장을 죽이는 우를 범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고삐 풀린 시장을 그대로 방치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이 장치의 위험을 잘 알고 잘 관리하면 인류에게는 축복이 되겠지만, 그대로 놔두면 악마의 맷돌이 되어 창조보다 파괴를 일삼을 수 있다. 시장을 적절히 잘 관리하면 엄청난 부를 누릴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쁜 시장에 고삐를 맬 수 있는 좋은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시장이라면 아마 정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지거나 최소한 정부가 할 일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는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착한 쪽의 주인공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 반대편의 악역을 맡은 나쁜 주연이 있기 때문인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나쁜 시장과 좋은 정부는 어쩌면 운명공동체일 것이다. 이 둘의 결합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인류를 공동번영으로 이끌 것이다. 최악은 나쁜 시장과 나쁜 정부의 결합이다. 이때는 공동번영이 아니라 공동소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 뻔하다. 가치의 창조보다는 가치의 착취가 횡행하는 경제가 어떻게 번영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정부만큼은 절대로 나쁜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착하고 유능한 정부만이 나쁜 시장과 함께 우리를 공동번영으로 이끌 수 있다. 이것이 《나쁜 시장 좋은 정부》가 나온 배경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중요한 자원배분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진작 시도했을 법한데, 아직까지 부국의 조건, 정부의 공적 배분이 해야 할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를 찾지 못했다. 대부분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부분적인 연구이거나 간접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또 하나 발견한 사실은 많은 책이 자유시장과 자본주의의 성과를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진보를 설명하면서 자원배분의 또 다른 축인 정부를 쏙 빼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며, 제대로 된 자원배분의 해법을 찾는 데도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저자가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자원배분의 두 주체인 시장과 정부의 본질을 객관적이면서도 충분히 탐색하는 작업이었다. 화폐경제와 혼합경제 시대에 시장에서의 사적 배분과 정부에 의한 공적 배분이 어떻게 작동하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움직이는지를 아는 것은 자원배분의 해법을 찾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둘의 차이를 알아야 비로소 자원배분의 해법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 지식체계 속에 깊숙이 감춰져 있고, 워낙 방대하고 복잡하며 여러 학문에 걸쳐 있기도 해서 처음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필요한 것은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용기를 내는 것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던가?
오롯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지속성장과 공동번영의 부국이 되는 조건들을 하나씩 정리해 갔다. 착하고 유능한 정부가 되기 위한 조건들과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찾는 작업은 매우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된 작업이었다. 유일한 걱정과 두려움은 나 자신의 두뇌의 한계를 초월한 더 넓은 지적 세계에서 볼 때 드러나게 될 나의 오류에 대한 것이다. 내게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수들(unknown unknowns)을 하나씩 하나씩 줄여 나가는 작업은 정말 고되다. 누군가 감수를 해 줄 이 분야의 전지전능자가 있다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다면 관련 문서와 정보를 더 많이 찾아보고 셀프 검증을 진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백하자면, 나는 나 자신을 지식 가공업자 또는 융합 기술자로 칭하고 싶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탄생한다. 잡다한 지식을 잘 모으고 정리하여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좋은 책은 잘 꿰진 보석 목걸이와 같다. 찾기도 어렵지만, 힘겹게 찾은 보석 같은 아이디어들이라도 잘 다듬어야 하고 전체 목걸이에 어울리게 선별하여 순서를 잘 맞추고 꿰는 작업이 필요하다. 때로는 구슬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주기보다는 멋진 목걸이를 만드는 비결이 더 궁금하기도 했다. 흩어진 조각 지식을 많이 모을수록 맞춰야 할 퍼즐이 많아지고, 각 부문 퍼즐들을 다시 전체 퍼즐에 맞추지 못하면 이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결국 30개의 보석을 발견했으며, 이들을 연결하니 드디어 하나의 목걸이가 완성됐다. 지속성장과 공동번영을 위한 자원배분의 해법이 드디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후 그의 지시로 작성된 최초의 한글 문헌 《용비어천가》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니 내(川)를 이뤄 바다에 가나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는 세종이 꿈꿨던 국가의 기틀과 한글 창제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글은 그야말로 백성의 언문으로서 나라의 근간이 되었다. 쓰러지지 않는 튼튼한 뿌리와 영원히 샘솟는 깊은 물의 설계자, 국민을 사랑하는 세종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다. 국가가 부강하려면 흔들리지 않고 마르지 않는 국가 경영의 뼈대와 철학을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가족 경영을 위해 가훈이 있듯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가 경영을 잘하려면 그에 걸맞은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자유시장, 민주주의, 법치주의, 정부 역량, 신뢰 사회 등 부강한 국가의 조건들이 튼튼히 뿌리를 내려야 흔들리지 않고 지속성장과 공동번영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이 책은 부강한 국가의 여러 근간 중 정부 역량, 그중에서도 공적 배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국가공동체를 번영으로 이끌 공적 배분의 해법을 찾지 못하면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경영이 흔들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작업이 끝을 볼 수 있었던 데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단연코 사랑하는 가족들의 희생과 응원이 없었더라면 마라톤과 같은 기나긴 여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점점 희어져 가는 머리카락과 늘어 가는 주름, 침침해지는 눈을 견디며 지켜봤어야 했을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전한다. 그리고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분의 축복이 함께하길 빈다. 공유지를 제공해 준 국가와 세종시에도 감사한다. 이 책에 제시한 아이디어는 국가가 조성한 금강의 자전거 길과 세종시가 가꿔 놓은 훌륭한 산책로 덕분에 나왔다.
그리고 특별히 국회도서관과 국립세종도서관에 감사를 표한다. 국회도서관은 내가 읽어야 할 책들에 관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해 줬다. 엉뚱한 책을 읽으며 허비했더라면 아직도 책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립세종도서관의 훌륭한 대여 시스템도 소중한 조력자가 되었다. 필요한 책은 항상 구비되어 있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언제든지 무상으로 빌려 준다. 생각해 보면, 공공도서관은 시장과 정부의 결합으로 탄생한 현대 지식사회의 요체와 같다. 수많은 책은 시장적 자원배분으로 생산된 것이며, 이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은 착하고 유능한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나쁜 시장과 좋은 정부의 합작품에 감사한다.
2026년 7월
국립세종도서관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임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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