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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69095105 |
|---|---|
| 쪽수 | 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교양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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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가 감행한 익명 시도는 그의 살아생전 지켜졌다. 이 책 또한 그를 F라고 지칭하며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사상적 배경 및 정치성에 근거하였는지, 발화의 가치를 판단할 조건을 감추었다. 이로써 잠재 독자는 자연스레 F가 제안한 “이름 없는 한 해”라는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 게임은 한 해 동안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실재 위에 덧씌운 조건을 벗기고 본질만을 환한 빛 앞에 세운다. 독자는 F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그의 말에서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겠다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이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말하게 될 것이다. 하나, F가 제안과 동시에 덧붙였듯이 “아마 비평가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저자는 책을 출판하기 위해 이듬해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 출판에서 ‘익명’이라는 결단은 그의 말만큼이나 불가능을 전제하고 있다. ‘가면’으로부터 어떤 예상치 못한 효과가 용출하여 저자-독자의 접촉면을 확장시킬 것인가. 이 물음은 F의 시대나 오늘날에나 여전히 불확정성을 담보한 채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옮긴이 배세진의 말처럼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졌을 뿐 아니라 그 수도 증가한 오늘, 게다가 지식인들의 불필요한 자의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것이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대중의 앎의 의지를 강하게 위협하고 있는 오늘”, 가면의 잠재력은 오히려 더 긴요해 보인다.
그러나 F의 비판을 냉소로 오해해선 안 된다. F는 들라캉파뉴가 우리 시대에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가진 정신, 혹은 위대한 작가가 결여되었다고 생각하느냐 묻자, 이에 단호히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는 종종 사유의 수단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미디어가 머릿속을 지배했다고 투덜거리며 염세주의를 왼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 재미있는 것, 끔찍한 것, 본질적인 것, 사소한 것 들이 사실상 넘쳐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F는 우리의 정신이 이미 사유의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정신의 반작용을 촉진할 날카로운 호기심을 무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F는 실재의 날카로운 감각을 벼르기 위해 호기심의 시대를 꿈꿔야 한다고 말하며, 지식인을 자청하는 이들이 내리는 평결, 판결, 선고, 배제 같은 것이 아니라, 또한 ‘참’으로 주어진 지배적인 철학도 아니라, 사유의 틀을 변형하고 일반화된 가치를 수정하며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해보려는 작업으로서 진실과 관계 맺기를 촉구한다. 이는 달리 말해 “새로운 어조, 새로운 보기의 방식, 새로운 행위의 방식”을 삶 속에서 발견하는 일이며, 즉 F가 정의하는 철학이자, 철학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