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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24668054 |
|---|---|
| 쪽수 | 13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소설/에세이/시 > 대하/역사/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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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지워진 것을, 나 혼자 기억할 때의 마음
어쩌면 이 세계와 영주는 서로소 같은 관계가 아닐까. 서로 절대로 겹칠 수 없는, 그리하여 한쪽의 허구성이 다른 한쪽의 실재 조건이 되는.
―「하늘에서도 땅과 같이」 중에서
누구든지 내게 13번째 어깨동무를 하면 그 사람은 이제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고 기회를 봐서 절교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어깨동무라는 행위가 사라졌다
―「과학 밖 픽션」 중에서
김희선의 소설과 김승일의 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나에게만 남은 것을 붙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나만 기억하는, 그 이상한 자리에 선다.
김희선의 소설 「하늘에서도 땅과 같이」의 주인공은 영화감독 케이다. 그는 자꾸 '영주'라는 이름을 떠올리는데, 세상 어디에도 영주의 흔적이 없다. 그는 허구를 지우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한다는 약을 복용하며, 자신이 만든 영화가 실제로 벌어진 일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 가는 것을 지켜본다. 영주가 진짜라면 세계가 가짜이고, 세계가 진짜라면 영주는 없는 것이다. 케이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막을 건너 먼 곳의 시계에 다다르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다. 그는 돌아와 다시 약을 삼킨다.
김승일의 시편에는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내 안에만 남은 것들이 나온다. 「과학 밖 픽션」의 화자에게는 어깨동무라는 행위가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자기 머릿속에만 남아 있고, 「슬픔을 느낄 줄 아는 나라는 사람」에서는 나비효과로 태어나지 못하게 된 미래의 친구를 그리워한다. 「들어주기」의 목소리들은 "우리는 공중입니다. (…) 사실 천사입니다. 제발 한 번만 믿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데 자기만 아는 것을, 끝내 놓지 않는 목소리다.
소설은 케이가 왜 없는 이름을 붙들 수밖에 없는지를 인물과 사건으로 쌓아 올리고, 시는 세상에 없는 것을 나만 기억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목소리로 들려준다. 세상이 부정하는 것을 끝내 나만은 붙드는 태도가, 소설과 시 양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한 권 안에 나란히 놓인 소설과 시는 그렇게 서로를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