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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9901919 |
|---|---|
| 쪽수 | 244쪽 |
| 크기 | B6(127mm X 188mm, 사륙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국내소설
AI추천 이유
타인의 말들이 그를 대신 설명한다
소설 『연결, 유예, 악의』는 자신을 설명할 줄 모르는 한 인간, 임다리의 삶을 따라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돌다리, 사다리, 임꺽정, 임자, 임마 씨, 판다 같은 호칭으로 불려 왔다. 누군가가 붙인 이름들은 시간이 흐르며 그를 규정하는 방식이 된다. 다리는 그 이름들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인지 오래 생각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말하지 못했고, 그렇게 놓친 말들은 그의 안에 남는다.
어린 시절의 다리는 공터에서 한 아이와 연결될 뻔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진다.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었던 마음은 표현되지 못하고 유예된다. 그러나 유예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훗날 다른 이름과 사건의 얼굴로 돌아온다.
성인이 되어 채권추심의 세계로 들어간 다리는 채무자들을 압박하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를 ‘악귀’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연한 호칭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리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 인식은 점차 현실처럼 굳어진다. 그가 나타난 자리에서 누군가의 채무가 사라지고, 삶이 뒤틀리며,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들이 이어진다. 다리는 자신을 악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이미 그렇게 작동한다. ‘악귀’라는 이름은 그의 얼굴과 행동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고, 마침내 존재 자체를 대신한다.
타인의 말들은 어떻게 한 인간의 운명이 되는가
『연결, 유예, 악의』는 한 인간이 어떻게 ‘악’으로 연결되는지를 추적한다. 악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우연과 선택, 구조와 시선이 겹쳐 만들어지는 결과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여러 호칭과 관계의 균열, 채권추심이라는 구조적 폭력은 다리를 한 방향으로 밀어간다.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며, 한 번 형성된 연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16년의 형을 살고 돌아온 다리는 병원 주차장의 야간정산원으로 숨어 살듯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일곱 살 아이 배서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방치와 폭력의 기척을 감지하며 살아가는 아이는 다리를 ‘영웅’으로 바라본다. 다리에게 그것은 처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고 싶은 이름이다. 악귀도 판다도 임마 씨도 아닌 영웅. 누군가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으로 불리는 일이다.
그러나 영웅이라는 이름은 곧 요구가 된다. 배서는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다리는 아이의 상처와 거짓말, 자신의 회피와 과거 악귀의 방식 사이에서 흔들린다. 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부터 개입이 되는가. 선의는 언제 폭력과 구분되지 않게 되는가.
모든 이름이 무너진 자리, 한 인간의 공백이 드러난다
작품은 다리를 악인이나 피해자, 방관자나 구원자 가운데 하나로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악귀와 영웅 사이에, 연결과 단절 사이에, 선택과 유예 사이에 놓여 있다. 타인이 붙인 이름을 받아들이며 살아온 그는 끝내 자신을 설명하지 못한 채 기나긴 공백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연결, 유예, 악의』다
이 소설은 세 개의 힘으로 움직인다. 연결은 사람과 사건, 과거와 현재를 묶는다. 유예는 감정과 진실, 선택과 책임을 뒤로 미룬다. 그리고 악의는 그 모든 연결과 유예가 끝내 향하는 어두운 방향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품이 끝까지 묻는 것은 단순히 누가 악한가가 아니다. 악귀로 불린 인간은 끝까지 ‘나는 악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영웅으로 불린 인간은 그 이름만으로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가.
연결은 지속되고 유예는 끝나지 않는다. 『연결, 유예, 악의』는 그 끝에서 인간이 무엇이 되는지를 묻는다. 어쩌면 악의는 특별한 괴물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설명되지 못한 한 인간의 이름들 사이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소설
우리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기보다 빠르게 규정하는 데 익숙하다. 몇 마디의 소문과 한 번의 실수, 하나의 이력만으로 한 인간의 전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좀처럼 거두지 않는다. 『연결, 유예, 악의』는 그 성급한 확신이 어떻게 한 사람의 얼굴을 만들고, 마침내 삶의 방향까지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이해보다 규정이 앞서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인간을 끝까지 단정하지 않는 일, 그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판단을 유예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빨리 타인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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