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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지옥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역사와 개인 감각과 언어의 교차
- 이리나 그리고레
- 김영현
- 다다서재
- 2026년 08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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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1716474 |
|---|---|
| 쪽수 | 264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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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역사 > 세계역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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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시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와 도시의 삶,
그리고 일본에서 인류학자로 살아가기까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루마니아 가족 3대의 이야기이자
좀처럼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던 한 고독한 여성 인류학자의 기록
★ 윤경희·하미나·사이토 마리코 강력 추천
『상냥한 지옥』은 루마니아 출신 문화인류학자 이리나 그리고레가 사회주의 체제하의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 먼 타국인 일본으로 이주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체제와 문화와 세대와 언어의 전환을 모어가 아닌 일본어로 써낸 오토에스노그래피다.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경험한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좇아 문화인류학자가 된 과정, 조사지였던 일본에 정착하여 이주민이자 두 딸의 엄마이자 연구자로 살아가는 현재까지 자신이 겪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와 더불어 이념과 체제의 변화가 일으키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살아온 조부모와 부모, 자신까지 3대의 가족사를 담담히 서술한다.
기억 속의 단편, 일상의 사소한 마주침, 자기만의 감각 경험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글은 자연스럽게 삶, 예술, 문화, 인간, 사회 등 보편적 주제와 연결되며 개인적인 경험을 인류학적인 고찰로 확장한다. ‘타인’을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민족지(民族誌)가 아니라,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기술하는 자기민족지는 오직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다.
시적인 문체로 시간과 장소, 꿈과 현실,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저자의 글은 독자와 육체적·정신적·감정적 공명을 일으키며 읽는 이를 글 속으로 빨아들인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에 잡아먹히는 것과 같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독재 정권에서 자기 자신을 잃은 채 살아가다
자본주의라는 ‘상냥한 지옥’으로 떠밀린 사람들
루마니아의 목가적인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자본주의로 체제가 전환되는 것을 경험했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사회주의는 “종교와 예술과 존엄을 사회에서 없앴을 때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는 실험”과도 같았다. 사회주의 독재 정권에서 농부였던 할아버지는 하루아침에 공장 노동자가 되었고 한 손가락을 잃고서야 농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꿈 많은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인간성이 제거된 거대한 공장에서 일하며 술로 스스로를 달래고 폭력으로 고통을 분출했다. 자기 자신과 이 세계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한 저자는 두 살 때 일어난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병으로 큰 수술을 겪으며 비극적 역사를 몸에 새겨야 했다. 저자는 자기 가족 3대의 역사와 조모, 어머니, 자신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유대를 통해 “질척질척했던 전환의 시대”를 살아간 “역사에 남지 않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독재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로 전환되며 잠시 자유에 대한 기대로 들뜨지만 자본주의는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자유롭기에 위태롭고, 공평하기에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쓰레기장에서 먹을거리를 뒤지는 아이들, 돈을 기준으로 삶이 전혀 달라지는 어른들, 싼값에 사람을 부리기 위해 루마니아로 몰려드는 대기업들을 통해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목격하고, 자본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저자의 다섯 살 된 딸은 좋아하는 것을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가리켜 “상냥한 지옥”이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저자가 경험한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는 절묘한 표현이다.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이주민이자, 엄마이자, 학자로서 살아가다
극도의 예민함과 섬약함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저자는 책과 영화에 빠져 다른 세상을 꿈꿨다. 10대 시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경험이 저자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비록 루마니아어로 번역된 책이었지만 저자는 일본어야말로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세상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는 언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 번째 전환점, 문화인류학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영화감독의 꿈이 여자라는 이유로 부조리하게 좌절되면서 크게 상처 입은 저자는 문화인류학, 그중에서도 민족지 영화를 공부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내면의 오래된 의문을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
두 전환점에 이끌린 저자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사자춤을 연구한다. 그리고 일본에 정착하여 결혼하고 두 딸을 낳아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생활에 적응해가지만 이따금 음식을 비롯해 언어와 관습과 문화가 전혀 다른 먼 나라로 떠나온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곤 한다. 저자는 “멀리 떠나고 싶었으니까.”라고 적당히 둘러댔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면서 자신이 먼 곳으로 이주한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고.
사회의 폭력과 몸에 새겨진 역사, 기억과 꿈의 경계를 부유하며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보편적 주제를 사유하는 오토에스노그래피
『상냥한 지옥』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한 루마니아 가족 3대의 이야기이자, 좀처럼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한 고독한 여성 인류학자의 기록”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만, 그 글이 다루는 범위는 광대하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인류학, 종교, 영화, 시, 언어, 가족, 음식, 자연, 인종, 젠더, 이주 등 그야말로 이리나 그리고레라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아우른다.
저자는 사소한 한 장면, 예컨대 ‘할머니와 함께 밭일하는 할아버지에게 점심밥을 주러 간 일’, ‘어릴 때 반복해서 꾼 썩은 개구리가 등장하는 꿈’, ‘직접 채취해서 먹은 산나물의 쓴맛’ 같은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감각에서 글을 시작한다. 소소한 일화로 출발한 글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루마니아와 일본, 타인과 나, 루마니아어와 일본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어지다 어느새 체제 전환, 권력의 폭력성, 체르노빌 사고의 후유증, 이주민의 신체 경험 같은 역사적·사회적인 맥락과 닿는다. 이 책이 그저 에세이가 아니라 오직 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인류학적 가치가 가득한 오토에스노그래피로 확장되는 이유다.
저자는 21세기 인류학에 대해 “해석도 번역도 불가능한, 언어에 억지로 담을 수 없는 생물의 본질이 드러나는 양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과 생각을 잘 정돈된 글에 보기 좋게 담기보다는 시적이고 함축적인 문장들로 서술해 읽는 이의 지성은 물론 정서, 나아가 신체와도 공명을 일으킨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언어에 억지로 담을 수 없는” 한 인간의 본질을 온몸으로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문학 작품을 일본어로 옮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이 책에 잡아먹히는 것과 같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하미나 작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영혼의 조각을 찾은 느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