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 초록을 마주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
Part 1 집 짓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1. 「6시 내고향」에서 찾은 행복의 방식
2. 땅을 볼 때는 말이야~
3.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든 집짓기
4. 집 지을 때 중요한 네 가지
5. 우리집이 지어졌어요!
Part 2 집에 사는 그릇
1. 도자기와 사랑에 빠졌어요!
2. 꿈이 자라는 공간
3.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사고
4. 뜨거운 안녕
5. 집에 사는 그릇
6. 나의 선생님
Part 3 자연 속에 살아요
1. 어서 와, 시골 생활은 처음이지?
2. 푸드덕 푸드덕
3. 어떻게 마당에 꽃 한 송이 안 심었어?
4. 즐거운 공존
5. 봄보다 먼저 온 잡초
6. 사계절 동네 산책
7. 나는 이제 가난하지 않다
Part 4 ‘배달의 민족’이 없는 시골에서 살아남기
1. 영범이 삼촌네 쌀
2. 요리 바보의 요리법
3. 손님은 왕이다
4. ‘배추김치호’ 만선을 위하여!
5. 마법의 공간
6. 다이어트는 시골에서
7. ‘배달의 민족’이 안되는 민족
Part 5 해볼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1. 눈물 뚝뚝 화덕 만들기
2. 마음을 도려내는 심정
3. 울타리가 없습니까?
4. 고양이 목조주택 만들기
5. 왜 안돼?
6. 맵다 매워, 고추 농사
7. 관리하는 여자
Part 6 룰루랄라~ 전원생활
1. 포클레인으로 고구마 캐기
2. 붕어빵은 없지만 붕어는 있습니다
3. 시골 동네의 문화 사랑방, 봄길책방
4. 집돌이와 집순이
5. 눈 사랑
6. 이걸 어찌 쓰셨나이까?
7. 매일 열어주세요, 김포 5일장
8. 촌사람들의 영어 공부
에필로그 - 시골생활은 다양한 모양의 작은 행복을 모아 가는 일
[본 문]
드디어 대한민국 하늘 아래 우리 땅이 생겼다. 흙바닥에 우리 둘 이름 나란히 써서 명패라도 붙이고 싶었다. 땅을 누가 훔쳐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만 나면 보러 갔다. 하도 갔더니 옆집 아주머니가 하셨던 말씀. “그만 봐~ 땅 닳어~”
돈 모은다고 천일염보다 더 짜게 보낸 신혼생활. 허리띠를 조르고 조르다 허리가 끊어질 뻔했던 지난 몇 년. 어려운 형편에도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은 남편과 나, ‘우리’라는 자동차를 열심히 달릴 수 있게 한 연료였다.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예쁘게 지어진 집’이라는 결과물만 좋았던 건 아니다. 그보다 기뻤던 건, 둘이 같이 노력해 온 시간을 보상받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 못난 요리를 빛내주었던 도자기. 이제는 그 도자기를 내 손으로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직접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 내가 만든 그릇이라 담을 때도 더 정성스레 담게 된다. 먹을 때도 더 꼭꼭 씹어 먹는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여름을 선풍기로 견뎠다. 땀이 뚝뚝 떨어져 눈으로 들어가도 손에 묻은 흙 때문에 닦을 수가 없었다. 겨울이 되면 컨테이너는 냉동고가 됐다. 차가운 물 때문에 손이 갈라져 피가 났다. 그래도 작업하는 게 좋았다. 물레에 앉는 순간 흙이 나였고, 나는 흙이 됐다. 도자기를 예쁘게 빚고 깎듯, 내 마음의 모난 자리도 정성껏 빚고 깎았다.
어느 가을 다 키워 놓은 배추를 옆집 닭이 쪼아 먹은 적이 있었다. 한 마리가 닭장을 탈출한 것 같았는데, 얌전히 한 포기만 먹지…. 요란스레 세 포기나 쪼아 놓았다. 마침 밭에서 똥 싸고 있는 녀석을 현행범으로 체포해서 옆집 아저씨께 인계해 드릴 수 있었다. 닭을 잡고서도 타박할 수 없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매일 아침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이 들었고, 알람 시계 역할을 톡톡히 해온 그 노고가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배추 서리하고 똥 싸 놓고 토낀 닭아.’
꽃 한 송이 없는 마당이라고 마냥 심심한 건 아니었다. 고양이도 놀러 오고 때때로 야생화도 피고, 그 꽃에 나비도 날아들었다. 벌도 내려앉아 대롱을 꽂고 열심히 꿀을 찾았다. 어느 날엔 낮은 포복으로 도마뱀도 지나가고, 개미군단도 늠름함을 뽐냈다. 나름 다채로운 이벤트로 소곤소곤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내가 오기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많은 존재들. 내가 그들을 무섭고 낯설다고 하지만, 사실 여기에 이방인으로 들어온 건 나였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들의 영역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어우러지게.
“자기야, 울타리가 있어야겠어.”
겁도 없이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 또 하나 늘었네’가 아니었다. ‘직접 해볼 수 있는 일’이 또 한 가지 생겨서 신난 우리였다. 전원주택은 우리에게 ‘놀이의 장’이었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다소 못나더라도 우리의 손길이 닿고 이야기가 담긴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다.
방앗간 사장님이 막 나온 고춧가루를 파란 봉다리에 넣어 건네주셨다. 따끈따끈 열기가 느껴졌다. 코를 간질이는 짙은 매콤함에 재채기가 나왔다. 조청 같은 달큰한 향기가 느껴졌다. 고추를 많이 땄다고 생각했는데 말리고, 가루로 만들고 나니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금같이 귀한 가루였다. 작은 모종이 커서 꽃을 피워 열매 맺고 손톱만 했던 고추가 다 자라 고춧가루가 되어 우리 품에 들어왔다. 숨차게 빨랐던 고추의 생애가 달큰하고 매콤하게 결말을 맺었다.
시골은 조용했다. 집에 있으면 진공 상태 같은 절대적인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뒤집은 모래시계처럼 소리가 비워질수록 마음이 채워졌다.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일상의 작은 행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물을 ‘보글보글’ 끓여 달걀을 삶고, 그릇을 ‘달그락’거리며 식사 준비를 했다. ‘아삭아삭’ 씹는 재료의 식감을 느끼면서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했다. 천천히 느리게 먹었다. 해가 일찍 잠드니 우리도 일찍 잠들었다. 침대에서 휴대폰은 하지 않았다. 몸의 리듬을 자연의 시간에 맞췄다. 삶이 단순하니 마음도 단순해졌다. 호수같이 조용한 일상. 행복해지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했다.
아무리 집돌이 집순이라도 집에만 있느라 놓치면 안 되는 때가 있었다. 나무들의 리즈 시절이었다. 꽃봉오리들이 팡파레처럼 터지고 그 순간의 환희가 박제되는 짧은 순간, 꽃피는 시기. 동네 한 바퀴 돌며 눈에 꽃을 모은다. 큰 목련 나무가 있는 댁의 강아지 집 지붕이 바다처럼 파랗고 예뻤다. ‘목련이 닳을까 걱정됐을까?’ 탐스럽게 핀 꽃이 예뻐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갔더니 강아지가 마을이 떠나갈 듯 짖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 집 아름드리 목련이 위풍당당 더 멋져 보이는 이유는 늠름한 목련 지킴이 덕분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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