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서문 _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믿기지 않는 이야기
1부 권선징악
태조 4년(1395년) – ‘가짜 뉴스’를 퍼뜨려 목숨을 잃다
태종 3년(1403년) - 신체 일부가 사라진 사체
태종 18년(1418년) - 임금이 애지중지하던 왕자의 죽음과 한 무녀
세종 18년(1436년) - 조선시대에도 사이비 종교가 있었다?
세조 8년(1462년) - 조선판 부부클리닉, 남편은 죄가 없고 아내는 참아야 하느니라
성종 19년(1488년) - 그 여자의 질투는 유죄
명종 1년(1546년) - 병을 낫게 하려고 ‘사람’을 사고팔다
2부 기이한 소문
태조 1년(1392년) - 하늘이 선택한 왕, 이성계
성종 20년(1489년) - 살쾡이가 준 비술서로 용을 혼내다
세종 30년(1448년) - 굶주림을 참지 못해 인육을 먹다
성종 5년(1474년) - 과학을 이용한 조선 최고의 마술쇼
선조 31년(1598년) - 임진왜란의 숨은 공신, 해귀의 등장
광해 1년(1609년) - <별에서 온 그대> 속 UFO는 조선에서 실제로 목격되었다
정조 9년(1785년) - 인간이 된 사슴과 곰의 놀라운 예언
3부 요괴와 귀신
정종 2년(1400년) - 어린 백성부터 왕까지 섬기는 감악산 신
정종 2년(1400년) - 왕과 신하의 100분 귀신 토론
중종 33년(1538년) - 죽은 뒤 뱀이 되어 남편을 쫓아다니다
중종 38년(1543년) - 몸은 하나, 머리는 둘 달린 괴물
선조 25년(1592년) - 일본군을 물리친 귀신 군대
현종 5년(1664년) - 창경궁에 나타난 도깨비
영조 43년(1767년) - 사내아이를 낳은 7살 소녀
4부 기적을 행한 사람
태종 5년(1405년) - 퇴계 이황이 전한 아내 사랑
세종 10년(1428년) - 전설 속 검은 여우의 털을 황제에게 바쳐라
세종 22년(1440년) - 사람을 현혹하는 불교를 탄압하십시오
단종 2년(1454년) -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애완 호랑이
명종 1년(1546년) - 다섯쌍둥이는 하늘의 뜻
영조 40년(1764년) - 매년 음력 5월 10일은 ‘비 내리는 날’
정조 14년(1790년) - 조선의 특별한 노인 우대 정책
5부 기이한 동식물
태조 3년(1394년) - 하늘이 점지한 자만 먹을 수 있는 버섯
세종 즉위년(1418년) - 세종이 즉위한 날, 봉황이 나타나다
세종 12년(1430년) - 진짜 ‘용’이 있는지 신하들과 토론하다
세종 19년(1437년) - 만병통치약 만인혈석을 품은 괴물 뱀
세종 21년(1439년) - 곰에게 사로잡혀 반인반웅을 낳은 여인
연산 11년(1505년) - 피로 물든 왕 연산군의 포도 예찬 시(詩)
중종 10년(1515년) - 다리가 5개인 송아지, 수탉으로 변해버린 암탉
6부 천재와 인재
태종 2년(1402년) - 비를 내리는 도술로 역모를 꾸미다
태종 18년(1418년) - 호두(虎頭)를 물에 담가 기우제를 지내다
예종 1년(1469년) -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 백성을 잡다?
성종 8년(1477년) - 조선을 덮친 벌레 떼
인조 16년(1638년) - 소의 죽음을 막아라
숙종 37년(1711년) -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여인
정조 23년(1799년) - 13만 명을 죽인 조선판 코로나19
참고 자료
[본 문]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풍해도(豊海道) 봉주(鳳州)에서 사람과 소가 벼락 맞았다.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 맞아 죽었는데, 죽은 자의 두 손가락과 음경(陰莖)을 잘라 간 사람이 있었다. 관찰사(觀察使)가 율(律)에 의하여 논죄(論罪)하였다.
― 027쪽 <신체 일부가 사라진 사체> 중에서
성종 19년에 여인의 시신이 강을 따라 떠내려왔는데, 온몸이 두들겨 맞아 상처투성이인 데다가 칼로 인해 생식기가 갈라져 있었다. 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읽기만 해도,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굉장히 끔찍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오늘날에도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클 것이다. 그런데 강을 따라 떠내려온 여인이 살해당한 이유가 투기라면 어떨까?
― 070쪽 <그 여자의 질투는 유죄> 중에서
하동에 사는 도인으로 알려진 문양해는 국문을 받는 과정에서 신선이 사는 선원촌의 이현성 집에서 녹정과 웅정을 만났다고 진술했다. 사슴에서 인간이 된 녹정은 나이가 500살로 얼굴이 길고 머리털이 흰 외모로 ‘청경 노수’ 또는 ‘백운 거사’라 불리고, 곰에서 인간이 된 웅정은 나이가 400살로 얼굴이 흐리고 머리털이 검었는데 ‘청오 거사’라 부른다고 했다.
― 152쪽 <인간이 된 사슴과 곰의 놀라운 예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샴쌍둥이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것은 언제일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샴쌍둥이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 보장왕 7년(647년)으로, 고구려 왕도의 여인이 몸 1개에 머리가 2개 달린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다음은 통일신라 헌덕왕 17년(825년) 때로, 무진주 마미지현에서 사는 여인이 머리와 몸이 2개이고 팔이 4개인 아이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 198~199쪽 <몸은 하나, 머리는 둘 달린 괴물> 중에서
영조 43년 경상 감사 김응순이 산음현(경북 산청군)에서 7살 먹은 여자아이가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올렸다. 일반적으로 7살 여자아이가 출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경상 감사 김응순의 보고에 백성은 물론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70년 넘게 살아온 영조도 7살의 여아가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영조 자신도 많은 책을 읽었지만, 조선 건국 이후 약 400년 동안 7살의 여아가 출산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 230쪽 <사내아이를 낳은 7살 소녀> 중에서
10명의 시왕은 각기 조사하는 범죄유형이 다르지만 일부 왕들은 망자가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조사하고 벌을 내린다. 또는 태산대왕이나 전륜대왕처럼 윤회를 담당하며 태어날 곳을 정하는 일이 겹치는 왕도 있다. 이렇듯 저승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마다 지은 죄에 따라 최소 1번에서 최대 10번의 심판을 받는다.
― 266쪽 <사람을 현혹하는 불교를 탄압하십시오> 중에서
이뿐만이 아니다. 태종은 가뭄이 발생할 때마다 정몽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조선을 건국했던 일, 형제를 죽였던 왕자의 난, 개경에서 한성으로 수도를 옮기는 큰 역사로 인해 삶이 어려워진 백성의 원망이 가뭄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며 늘 하늘과 백성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백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관찰사에게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해결해 줄 것을 명령하는 등 국정 운영의 전반을 재검토하여 발견된 문제는 반드시 시정하게 하였다.
― 299쪽 <매년 음력 5월 10일은 ‘비 내리는 날’> 중에서
세종은 경연 중 용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했다. 신하들은 송나라 휘종이 용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인용해 이 세상에 용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세종은 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조목조목 과학적 근거를 대며 부정했다. 그러나 결국 세종도 용의 존재 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 337쪽 <진짜 ‘용’이 있는지 신하들과 토론하다> 중에서
한참을 공부하던 도중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문가학에게 술을 먹자며 이야기를 걸어왔다. 문가학은 술잔을 나누다 여인이 술에 취해 쓰러지자, 그녀를 동아줄로 기둥에 꽁꽁 묶어두었다. 술에서 깨어난 여인은 동아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본래 모습인 백여우로 변신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참 동안 안간힘을 쓰던 백여우는 혼자 힘으로는 달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문가학에게 둔갑술이 적혀있는 책을 줄 테니 제발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 392~393쪽 <비를 내리는 도술로 역모를 꾸미다> 중에서
숙종 37년(1711년), 삼척에 사는 노비 출신의 여인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왔다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인간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였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한 여성이 호랑이를 죽였다는 이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까?
― 440쪽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여인> 중에서
스산한 빛이 궁궐 위를 지나가고
죽은 자의 이름이 다시 불리던 시대
왕조 500년의 어둠은 아직 완전히 봉인되지 않았다
<곡성>의 알 수 없는 저주, <파묘> 속 봉인된 무덤, <킹덤>에 등장하는 굶주린 존재들. 한국형 호러는 단순히 귀신이 튀어나오는 방식으로 공포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불안, 오래된 금기, 집단적인 공포와 인간의 광기를 천천히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감각의 시작점에는 오래된 역사 기록이 있다. 《조선괴담실록》은 바로 그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왕조실록》을 왕과 신하의 정치 기록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금 읽어도 믿기 어려운 기괴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굶주림 끝에 서로를 잡아먹은 사람들, 벼락 맞아 죽은 시신의 훼손 사건, 궁궐을 떠돌았다는 도깨비, 귀신과 요괴에 대한 기록, 하늘 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빛과 비행 물체까지. 저자는 방대한 역사 기록 속에서 이 기묘한 사건들을 끌어올려, 오늘날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복원한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형 호러 콘텐츠와 실제 역사 기록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김은희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기근과 인육 기록에서 영감을 받아 〈킹덤〉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실록에는 “굶주림을 참지 못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의 간과 쓸개를 사용했다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괴담이 아니다. 전염병과 기근, 권력의 탐욕 속에서 무너져가던 시대의 공포가 기록된 역사다.
《조선괴담실록》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대부분의 공포 이야기는 허구라는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 속 이야기들은 “실제로 기록된 사건”이라는 사실 때문에 독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저자는 단순히 자극적인 이야기를 나열하지 않는다. 왜 이런 괴담이 등장했는지, 그 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그 공포가 오늘날과 어떻게 닮아 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조선이라는 시대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낮의 조선은 예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였지만, 밤의 조선은 원혼과 금기, 기이한 소문과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로 가득한 세계였다. 왕조 500년 동안 기록된 불안과 공포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한국형 공포 역시, 결국 그 오래된 어둠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