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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시초(문행시선11)

  • 허광봉
  • 문학과행동
  • 2026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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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ISBN-13 : 9791199922013
쪽수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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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일본의 하이쿠, 중국의 절구, 한국의 시조는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의 결 속에서 자라났지만, 짧은 형식 안에 넓은 세계를 품으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몇 마디 말로 계절의 기척을 불러오고, 한순간의 풍경에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접어 넣는 일은 동아시아 시학의 전통이 오래도록 품어 온 조용한 꿈이었다. 허광봉의 짧은 시들을 읽고 있으면, 그 꿈을 그가 불씨처럼 간직해 오고 있었음을 짐작게 된다.

허광봉의 이번 시집 『이행시초』에 실린 시들은 전통 단시의 엄격한 정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의 오랜 시 형식이 현대의 감각과 만나 새로 호흡하며, 절제와 여백, 순간의 직관을 통해, 말해지지 않은 시의 의미가 흐르는 여운을 타고 점점 선명해지는 상을 형성하며 풍부해진다. 그래서 이 시편들이 더욱 반가운 까닭은, 그 짧음이 결코 빈약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허광봉의 단시는 말을 덜어냄으로써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한두 개의 이미지, 몇 개의 단어,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독자 안에서 오래 흔들리는 파장을 만들어 내는데, 그 파장은 설명의 양이 아니라 생략의 정확성에서 비롯된다. 짧아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짧기 때문에 더 신중해진 언어의 무게가 느껴진다.

목차

 

출판사 서평

찰나에 담긴 영원, 단시短詩를 따라 걷는 마음

 

김보일(시인)

 

 

 

 

언어의 무게

 

일본의 하이쿠, 중국의 절구, 한국의 시조는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의 결 속에서 자라났지만, 짧은 형식 안에 넓은 세계를 품으려 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몇 마디 말로 계절의 기척을 불러오고, 한순간의 풍경에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접어 넣는 일은 동아시아 시학의 전통이 오래도록 품어 온 조용한 꿈이었다. 허광봉의 짧은 시들을 읽고 있으면, 그 꿈을 그가 불씨처럼 간직해 오고 있었음을 짐작게 된다.

허광봉의 이번 시집 『이행시초』에 실린 시들은 전통 단시의 엄격한 정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의 오랜 시 형식이 현대의 감각과 만나 새로 호흡하며, 절제와 여백, 순간의 직관을 통해, 말해지지 않은 시의 의미가 흐르는 여운을 타고 점점 선명해지는 상을 형성하며 풍부해진다. 그래서 이 시편들이 더욱 반가운 까닭은, 그 짧음이 결코 빈약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허광봉의 단시는 말을 덜어냄으로써 도리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한두 개의 이미지, 몇 개의 단어,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독자 안에서 오래 흔들리는 파장을 만들어 내는데, 그 파장은 설명의 양이 아니라 생략의 정확성에서 비롯된다. 짧아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짧기 때문에 더 신중해진 언어의 무게가 느껴진다.

 

 

여백의 숨결

 

단시는 본래 과묵한 장르다. 말의 수를 줄이는 대신, 그 말들이 나간 자리에 독자의 기억과 감각이 머물 수 있도록 빈 자리를 남겨 둔다. 그래서 좋은 단시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의 시간이 더 길다. 시가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풍경이 자라나고, 감정이 천천히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허광봉의 시들 역시 이 여백의 미학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봄비 오더니/ 술잔에 복사꽃”(「채홍사」 전문)이라는 짧은 구절을 읽고 나면, 독자는 언어 바깥의 시간을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비 내리기 전의 적막, 술잔을 기울이던 저녁의 공기, 어느 순간 툭 떨어졌을 복사꽃 한 잎의 가벼운 충격까지, 시는 말하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을 장면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이렇게 허광봉의 단시는 완결된 설명보다 열려 있는 정서를 택하고, 그 열림 속에서 독자의 내면이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가을이 붉어/ 간월암 담장을 넘네”(「서녘 노을」 전문)라는 시 또한 그러하다. 노을이 담장을 넘는 물리적 움직임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가을이라는 계절이 우리 마음의 경계를 넘어오는 순간까지 함께 환기한다. “가을이 붉어진다는 말은 단순한 시각적 진술이 아니라, 한 계절이 무르익어 마침내 삶의 안쪽에까지 스며드는 감각적 사건으로 읽힌다. 전통 단시가 즐겨 보여 주던 계절의 포착과 직관의 미학이 이 짧은 장면 안에서 현대의 감수성과 만나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는 자연을 단지 배경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자연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와 존재의 기척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노을이 담장을 넘는 장면은 저녁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방식과 말없이 건너오는 변화의 형상을 함께 품는다. 허광봉의 단시는 자연 앞에서 사유를 길게 늘어놓기보다, 단 한 번 정확히 바라봄으로써 긴 성찰을 짧은 이미지 속에 접어 넣는다.

저자 소개
저자 : 허광봉

1962년 홍천에서 출생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모 기업 홍보실에서 일하다 나와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첫 시집 『무모한 남자』를 냈다.

12년이 흐르고 두 번째 시집 『이행시초(二行詩抄)』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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