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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8404763 |
|---|---|
| 쪽수 | 420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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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세이/시 > 대하/역사/무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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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이 소설을 쓰기 전부터 풍수는 내 삶의 오래된 화두였다. 사람들은 풍수를 산세를 읽고 혈자리를 찾는 일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풍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풍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그 자체였다. 우리를 품고 있는 땅이었고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바람이었고 우리 삶 속으로 흘러가는 물이었다. 인간은 결국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간다.
정점에 이른 인간을 다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때때로 내가 그들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또한 분명하였다. 인간은 본래부터 모순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쓰이는 자나 쓰는 자나 결국 그 모순의 과정을 통하여 풍광에 이른다.
이번 역시 정조를 쓰면서 그의 좋은 면만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조는 이기의 끝을 보여준 인간이었다. 복수에 사무친 존재였고 이기와 이상이 한 몸 안에서 동시에 들끓는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제 할아비를 흉지에 밀어 넣고 제 아비는 천하의 길지에 밀어 넣었겠는가. 그렇게 보면 그는 지극히 소인배적 원심의 사나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순을 혐오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위선과 비열함, 자기기만 속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장엄함을 발견하게 된다. 위험하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그 무엇 말이다.
정조는 뒤주라는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하여 규장각이라는 찬란한 지성의 전당을 세웠고 천만년 백성의 삶터가 될 화성을 일구어낸 사람이었다. 나는 바로 그 원심을 그리고 싶었다. 그를 단순한 성군이나 복수자로 가두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의 근본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리는 과정에서 약간은 근사하게 포장되기도 하리라. 문학은 때로 인간의 상처를 풍광으로 바꾸고 모순을 장엄함으로 바꾸며 비극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문학은 단순한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위험한 매혹까지도 끝내 들여다보려는 행위. 그러므로 독인 줄 알면서도
결국 마시게 되는 것이다.
정조만큼 풍수에 깊이 천착한 왕도 드물 것이다. 역대의 왕들 또한 풍수를 중히 여겼으나 수원 화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조의 풍수는 단순한 신앙이나 취미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것은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고 시대를 바꾸기 위한 도구였다.
그 거대한 꿈의 중심에는 한 가족의 비극이 놓여 있었다.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인간의 삶이란 과연 이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묻게 된다.
…중략…
이번에 정조를 쓰면서 다시 인간을 보았다. 권력과 명분, 사랑과 증오,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한 인간을 보았다. 그 속에서 오래전의 나 또한 함께 보았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의 이치는 소설의 쉼표처럼 늘 반듯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끝내 자기 삶의 길을 묻고 또 물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질문의 기록이다.
정조라는 그릇을 통해 풍수의 넋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고 그것을 새롭게 저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