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 _11
서론 _15
제 1 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_23
1장 본문 설교(Text-Driven Preaching), 본문이 운전한다 _26
【 참고 자료 1 】 본문 설교의 기초 준비 : 원어 습득과 활용법 _34
【 참고 자료 2 】 본문 설교의 두 번째 기초 : 주해(Exegesis) 실습 _47
2장 강해 설교(Biblical Preaching)의 모델 1, 해돈 로빈슨과 빅 아이디어 _58
【 참고 자료 3 】 해돈 로빈슨의 강해 설교 7단계: 빅 아이디어를 찾아 설교로 완성하는 구체적인 로드맵 _66
【 참고 자료 4 】 빅 아이디어 추출 훈련 : 장르별 연습과 피드백 체크리스트 _71
3장 강해 설교의 모델 2, 현대 거장들의 비교 지도 _80
4장 구속사적·그리스도 중심 설교, 정경의 길로 그리스도께 _90
【 참고 자료 5 】 구속사적 해석 연습 : 그레이다누스의 7경로 실습 워크시트 _98
5장 교리 설교, 척추가 있는 설교 _107
【 참고 자료 6 】 교리설교를 위한 교리 체계 학습: 신앙고백서·요리문답 학습 계획과 TULIP의 설교적 활용 _121
6장 예표론적 설교(Typological Preaching), 예표인가, 상상인가 _129
【참고 자료 7】 예표론 분별 훈련: 안전한 예표 vs 알레고리 판별 체크리스트 _138
7장 개혁주의 설교(Reformed Preaching), 오직 성경과 은혜의 수단 _145
8장 성경을 먹으라, 설교자에게 먼저 적용되는 말씀 _155
【 참고 자료 8 】 성경 이해를 위한 과정 _164
1부를 마치며 _175
제 2 부 청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_177
9장 청중 오해가 만드는 설교의 실패, 12가지 _181
10장 한국 교회 청중 이해의 실험들, 평가와 통찰 _192
11장 심리학적 청중 이해, 가능성과 한계 _205
12장 성경은 청중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청중 평가의 성경적 근거 _218
13장 청중 이해의 예, 팀 켈러의 리디머 교회 목회 _228
14장 특별한 상황에 놓인 청중을 위한 설교 _241
15장 교회론이 설교론을 결정한다, 청중은 누구인가? _249
16장 청중 이해와 개혁주의 교회론,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설교 _260
17장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청중 _268
18장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받아야 하는 청중 _279
19장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청중, 통합적 이해를 향하여 _291
2부를 마치며 _301
제 3 부 설교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_303
A영역: 설교 작성·전달 역량
20장 설교 원고 작성법 _307
21장 원고를 보는 방법 _315
22장 설교 보조 자료의 수집과 사용 _323
23장 설교의 백미, 적용(Application) _330
24장 설교 전달 훈련 _340
25장 설교 피드백 시스템 _351
26장 설교 본문 _361
B영역: 청중과의 커뮤니케이션
27장 청중 이해의 최고의 길, 심방 _373
28장 청중에게 직접 물어보기 _381
29장 양육 체계 숙지 _396
C영역: 자기 관리와 영적·학문적 지속 성장
30장 자기 점검 도구 _406
31장 설교자의 영성 훈련 _414
32장 건강 관리 _417
33장 멘탈 관리 _420
34장 평생 학습과 독서 _425
35장 설교 역량 훈련 _430
36장 디지털 도구 활용 _435
37장 취미의 명암 _445
38장 나를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 _455
참고 도서 _458
미주 _469
[본 문]
우리가 흔히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주제)을 정해놓고 그것을 뒷받침할 구절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 구절’(proof texting)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본문 설교는 설교자의 주제를 본문 위에 덧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바가 설교의 주제가 되고, 본문의 정서가 설교의 분위기가 되며, 본문의 목적이 설교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이 그려내는 ‘텍스트 앞의 세계’를 그대로 강단 위에 재현해야 합니다. (27)
주해에서 설교로 갈 때 다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 주해는 설교가 아닙니다. 주해의 결과를 그대로 강단에 쏟아내면 그것은 학술 발표이지 설교가 아닙니다. 주해는 설교의 재료이며, 이 재료를 청중의 삶에 맞게 요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둘째, 주해의 과정을 설교에 보이지 마십시오. 설교 중에 “제가 이번 주에 주해를 하면서 발견한 것인데…”라든가 “원어를 보니까…”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설교를 약화시킵니다. 셋째, 빅 아이디어에 충실하십시오. 주해 과정에서 많은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발견을 설교에 담으려 하면 설교가 산만해집니다. 넷째, 주해를 기도 안에서 하십시오. 주해는 지적 작업인 동시에 영적 작업입니다. 본문의 의미를 분석하는 동안 성령의 조명을 구하십시오. (56)
구속사적 해석(redemptive-historical interpretation)이란, 성경 각 본문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 안에서 읽고, 그 본문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어떻게 가리키는지를 발견하는 해석 방법입니다. 이것은 알레고리(본문에 없는 의미를 억지로 끌어들이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구속사적 해석은 본문 자체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면서, 그 의미가 구속사의 큰 흐름 안에서 어떻게그리스도를 향하는지를 추적합니다. (99)
정경이 허락하는 만큼만 말하고, 그 너머는 침묵하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확실한 예표(신약 인용)는 담대하게 선포하십시오. 구조적 유사성이 있는 유비적 예표는 “성경의 흐름 속에서 이렇게 볼 수 있다”며 겸손하게 제시하십시오. 그리고 연결이 희미하거나 억지스러운 것은 과감히 멈추십시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예표론 설교자의 가장 큰 덕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며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침묵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37)
설교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한 교회에서 목사와 재정 담당 장로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장로는 건축 예산을 삭감하자고 했고, 목사는 반대했습니다. 둘 사이에 언쟁이 있었습니다. 다음 주일, 목사는 학개 1:4를 본문으로 설교했습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가하냐.” 설교 내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보다 자기 주머니를 더 사랑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회중은 다 알았습니다. 저 설교는 장로님을 향한 것이라고. 장로님은 모욕감을 느꼈고, 교회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목사는 마태복음 18:15를 어겼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일대일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강단에서 공개 처형한 것입니다. (187-188)
건강한 심리학 사용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성경이 기초입니다. 인간 이해의 최종 권위는 성경입니다. 둘째, 심리학은 참고입니다. 유익한 통찰은 받아들이되, 성경과 충돌하면 성경을 선택합니다. 셋째, 성령께 의존합니다. 변화의 주체는 성령이시지, 심리학 이론이 아닙니다. 실천적으로는, 심리학 책 1권 읽을 때 성경 주석 3권을 읽고, 설교에서 심리학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성경적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MBTI가 나를 정의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를 정의한다”라고 가르치십시오. 내 설교에서 심리학 대 성경의 비율을 점검하고, 성도들이 “나는 INFP”보다 “나는 그리스도인”을 더 자주 말하는지, 거듭남과 성령의 역사를 충분히 강조하고 있는지를 살피십시오. (216-217)
청중 영합은 인기를 얻기 위해 진리를 타협하는 것입니다. 듣기 싫은 소리는 빼고,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는 것입니다. 회개, 십자가, 고난은 감추고 축복, 성공, 위로만 말합니다. 청중 이해는 진리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지키되, 불필요한 문화적 장벽은 없애는 것입니다. 전자는 청중을 이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청중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중의 비위를 맞추는 자가 아니라, 청중의 영혼을 깨우는 자입니다. (225)
추상적인 교회론에 갇혀 구체적 회중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신학적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눈앞의 김 집사, 이 권사, 박 장로를 보지 못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신학이 실천과 분리되면 공허합니다. 교회론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지혜여야 합니다. 또한 교리 논쟁에만 집착하여 목회를 놓치게 되는 위험도 피해야 합니다. 칼뱅주의 5대 교리를 변호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정작 성도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전적 부패냐 부분 부패냐”를 논쟁하느라, 앞에서 울고 있는 성도를 보지 못합니다. 교리는 성도를 섬기는 도구이지, 성도를 판단하는 칼이 아닙니다. (258-259)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궁극적 목표는 원고의 내재화(internalization)입니다. 내재화란 원고를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기는 기계적으로 단어를 외우는 것이고, 내재화는 논리 흐름과 핵심 메시지가 설교자의 마음과 입에 배어 있는 상태입니다. 암기한 설교는 부자연스럽고, 내재화된 설교는 자유롭습니다. 내재화가 충분하면, 종이든 카드든 태블릿이든 매체는 ‘지도’에 불과합니다. 내가 이미 걸어본 길의 지도는, 확인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 가는 길의 지도는, 계속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설교의 내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원고의 내용이 ‘처음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걸어본 길’이 되면, 매체를 보는 횟수는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321)
좋은 설교자는 서재에서만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설교자는 서재와 거실을 오갑니다. 서재에서 본문을 주해하고, 거실에서 양 떼의 삶을 듣고, 다시 서재로 돌아와 그 삶에 본문을 연결합니다. 이 순환이 설교를 살아있게 만듭니다. 매주 최소 2-3 가정을 방문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연간으로 계산하면100 가정 이상을 방문하게 됩니다. 3-4년이면 교회의 모든 가정을 한 번씩 방문할 수 있습니다. 이 축적이 설교자와 청중 사이의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가 설교의 능력이 됩니다.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