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 : 생태주의 사고와 생태적 실천 _4
프롤로그 : 공예와 디자인의 시대적 소임을 찾아서 _9
Part I : 생태적 대안 문명의 필요
| 제1장 | 문명의 위기와 인간중심주의
1. 지구 시스템의 한계 _22
근대 문명과 생태적 불균형 _22 / 임계점의 문턱 _26 / 생태계 교란 종, 인류 _31
2.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간중심주의 _37
과학혁명과 도구적 자연관 _38 / 인간중심주의와 물질적 진보관 _40
| 제2장 | 지속 불가능한 오늘의 소비주의
1. 산업혁명과 생산양식의 비대화 _48
2. 대량 소비 촉진 전략 _52
광고와 물질적 행복의 신화 _52 / 상품 외관의 진부화 _56 / 기능과 성능의 진부화 _60
3. 소비 중독과 폐기물 범람 _67
쓰레기 사회의 도래 _67 / 편리함과 새것 중독 _71 / 본질을 상실한 소비문화 _78
Part II : 생태적 대안으로서의 공예디자인
| 제3장 | 생태주의 개념과 원리
1. 전일론적 세계관의 출현 _94
시스템적 사고 _94 / 인간중심주의 해체와 비인간의 위엄 _98
2. 생태이론의 개념과 전개 _104
근현대 주요 생태이론 _104 / 생태주의 이론의 원리 _109 ① 개체성과 다양성 공존의 원리 _112 / ② 상호의존적 창발의 원리 _114 /
③ 생태적 순환의 원리 _117
| 제4장 | 공예의 생태학적 가치와 소임
1. 공예의 본질과 동시대적 역할 _126
공예의 형질 해체 _126 / 공예의 근본 속성 _132 / 공예의 시대적 역할과 방향성 _137
2. 공예디자인의 5가지 생태적 가치 _143
전일론적 가치 _143 / 본질의 가치 _149 / 다양성의 가치 _156 / 연결의 가치 _166 / 지속의 가치 _174
3. 생태적 대안문명의 방향성 _184
새로운 제작문화의 요구 _184 / 단절 vs. 접촉의 공명 _188 / 생태적 대안, 호모 유니타스 _197
Part III : 생태적 공예디자인, 슬로우 크래프트
| 제5장 | 슬로우 크래프트란 무엇인가?
1. 슬로우 크래프트 정의 _212
2. 슬로우 크래프트의 지속 가능한 목표 _216
3. 슬로우 크래프트의 7가지 원칙 _226
① 순환의 원칙 _228 / ② 접촉과 연결의 원칙 _236 / ③ 본질과 쓰임의 원칙 _245 / ④ 여백과 미완의 원칙 _252 / ⑤ 지속의 원칙 _259 / ⑥ 손 제작의 원칙 _266 / ⑦ 과정 중심의 원칙 _280
| 제6장 | 슬로우 크래프트 사례 연구
1. 닥나무 코스터와 조명 _294
2. 절기를 알려주는 나무 손가방 _309
3. 맨발의 감각을 깨우는 삼각 블록 퍼즐 _326
4. 다시 염색해 쓰는 감나무 앞치마 _339
에필로그 : 생태미학, 일상의 예술로 _349
미주 _355
[본 문]
근대 문명과 생태적 불균형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여 새로운 지질시대로 진입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 용어는 2000년 파울 크뤼천(Paul Crutzen, 1933~2021)과 유진 스토머(Eugene Stoermer, 1934~2012)가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제안된 이
후,5)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뤼천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상실의 주된 원인을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특정하고, 수천 년 이상 유지되어야 할 온화한 지구 환경이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훼손되었다고 분석했다.6) 공식화를 검토 중인 인류세가 지질학계에서 정식으로 채택된다면, 약 1만 1,700년간 생명체의 번영을 가능케 했던 홀로세(Holocene)는 종료되고 새로운 지질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pp.22-23 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명을 위협하는 대표 사례는 바다에서 발견된다. 국제 환경단체 오세아나(Ocean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시간 약 675톤의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되며 이 중 절반은 플라스틱이다. 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70퍼센트는 해저로 가라앉고, 나머지는 해양 생물에게 섭취되거나 해류를 따라 이동하며 태평양의 일곱 번째 대륙으로 불리는 약 300만 톤 규모의 플라스틱 섬을 만든다.
(p.69 중에서)
슈마허는 불교적 노동 개념을 토대로 물질주의적 성장 논리를 비판하며 자연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기준으로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자기 균형의 원리를 강조했다. 그는 중간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중의 생산 기술은 근현대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하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대신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되었다. 나는 이 기술이 과거의 원시적인 기술보다 훨씬 우수하지만, 부자들의 거대 기술에 비하면 훨씬 소박하고 값싸고 제약이 적다는 의미에서 ‘중간기술’이라 명명한 바 있다.”
(p.108 중에서)
담양 소쇄원은 선비문화의 미학이 집약된 정원이다.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려진 공간 구성 덕분이다. 소쇄원은 자연과 인간의 영역 구분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순환 질서에 따라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전일론적 공간관을 상징한다.90) 자연 그대로의 대나무 숲, 물길,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건축의 경계가 느슨하게 융합된 소쇄원은 자연이 주는 감각 자극을 풍요롭게 하고 신체와 두뇌의 활성화 및 정서적 치유를 유도하는 생태적 환경을 조성한다.
<그림 18>은 소쇄원으로 유입되는 물길을 수용하는 오곡문이다. 오곡문은 외부와 내부를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담장의 흐름을 연장하는 열린 통로에 가깝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드나드는 열린 공간의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질서 안에서 소통하려는 한국의 전통 미학을 함축한다.
(pp.169-170 중에서)
자연과의 공명은 선택적 취향일 수 없다. 인간의 본능이자 존재 조건이다. 자연이 제공하는 회복과 보상은 대체로 미세하고 느리다. 이는 즉각적인 쾌락과 강한 자극으로 무장한 소비주의적 보상과는 다르다. 문제는 인간이 과도한 자극에 길들여져 이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상실한 데 있다. 자연과의 접촉은 신체, 감각, 두뇌, 정서를 서서히 조율하며 삶의 균형을 회복한다. 이것이 속도 중심의 문명이 놓친 인간성 회복의 조건이며, 초스피드를 지향하는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의 느린 걸음과 동행하는 생태미학의 시작점이다.
다음 제3부에서는 생태문명의 요구와 호모 유니타스 개념에 기초한 생태학적 공예디자인, 슬로우 크래프트를 제안한다. 이어 슬로우 크래프트의 개념과 핵심 원칙을 정립하고 슬로우 크래프트 방법론에 기초한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한다.
(pp.203-204 중에서)
사물 수명을 최대로 연장하는 것은 슬로우 크래프트의 핵심 과제다. 지속의 원칙은 사물을 오래 관리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사물 사이의 정서적 지속성에 주목한다. 사물의 상태를 끊임없이 살피고 손보는 행위는 정서적 친밀감을 축적하고, 이러한 관계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유와 대물림으로 확장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여백과 미완의 원칙이 사물의 미래 확장성을 확보해 수명을 연장한다면, 제5원칙인 지속의 원칙은 수요 주체가 사물을 자주 사용하고 함께 변해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정서적 애착을 유도한다. 이는 사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차원의 수명 연장이다.
(p.259 중에서)
목쌈 시제품이 습도와 시간의 변화에 반응하는 양상은 <그림 4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 41-1>은 제작 직후의 모습으로, 두 나무판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반면 <그림 41-2>는 제작 후 1년 뒤 겨울에 촬영된 사진이다. 습도가 낮은 조건에서 나무판이 휘어 목쌈이 볼록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측정 결과, 제작 당시 목쌈의 전체 두께는 18mm로 중간부와 양옆의 두께가 비교적 일정했다. 반면 습도가 낮은 겨울에 자연스럽게 휜 목쌈 중앙부의 두께는 38mm로 확연히 두꺼워진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변화는 시각적으로도 명확할 뿐 아니라 시제품을 손으로 들어보면 그 차이를 더욱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목쌈 디자인은 단순한 구조 덕분에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 가능하다. 목쌈 디자인을 활용한 몇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한다.
(pp.318-319 중에서)
공예와 디자인의 시대적 소임을 찾아서
자연의 침묵은 끝났다. 문명은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총체적 생태위기는 자연의 질서를 거부하고 인간의 본질을 외면해 온 근대 문명의 귀결이다. 산업화 이후 고도로 가속된 생산과 소비 체계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 이면에서 자연의 한계를 소진하고 삶의 통합성을 해체한다.
이러한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왜곡된 관계에 뿌리를 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사물 문화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제작 방식과 삶의 조건을 제시한다.
이 책은 이러한 전환을 위해 산업 문명의 한계를 검토하고, 생태적 공예디자인의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사물 문화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인간의 제작 행위를 인문학, 자연과학, 공예와 디자인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으로 고찰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이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관계를 매개하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슬로우 크래프트(Slow Craft)는 저자가 제안하는 생태적 공예디자인이다. 슬로우 크래프트는 자연을 품은 제작의 감각을 회복하고 창조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행위주체성을 형성하는 실천적 방법론이다. 자연 재료를 다루고 사물을 직접 만드는 활동은 자연의 시간성과 한계, 그리고 인간 행위에 대한 책임을 체화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말하는 ‘공예디자인’은 공예와 디자인을 단순히 병렬로 결합한 개념이 아니다. 기획과 설계, 탐구와 실험, 재료의 형성과 선택, 제작과 사용, 유지와 보수, 폐기와 순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연속된 창조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산업화로 분절된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 생애의 총체성을 지속 가능한 측면에서 회복하려는 개념적 틀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전개된다. Part I은 전 지구적 생태위기의 실태를 진단하고 그 사상적 배경이 되는 근대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기계론, 인간중심주의, 물질적 진보 이념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사유가 오늘날의 위기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형성해 왔는가를 분석함으로써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왜 불가피한 시대적 과제인지를 밝힌다. Part II는 생태주의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고 인간과 자연을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해하는 생태적 인간관을 정립한다. 이를 토대로 사물 문화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생태적 원리와 전환의 기준을 도출하고, 인간의 제작 행위와 일상적 실천이 어떠한 방향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Part III는 슬로우 크래프트의 개념, 지향, 지속 가능한 목표,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슬로우 크래프트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천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문명의 속도로 자연을 파괴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의 리듬에 문명을 조율할 것인가! 슬로우 크래프트는 사물의 차원에서 생태적 실천을 일상으로 옮기는 하나의 대안이다. 가장 인간적인 속도는 자연의 리듬에 있다.
생태미학, 일상의 예술로
자연이 파괴된 지구에서 인간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기계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단서를 자연을 품은 손의 창조 행위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생태미학에서 찾고자 했다.
이 책은 생태적 윤리와 존재 방식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호모 유니타스를 제안한다. 이는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규정한 근대적 세계관을 해체하고 모든 존재와의 연결, 즉 하나됨을 회복하는 인간상이다. 다가올 생태적 사물 문화를 위한 호모 유니타스로의 전환은 자연의 리듬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슬로우 크래프트는 생태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실천이자 자연과 나를 잇는 사유의 손길이다.
법정 스님(1932~2010)은 인간의 향기가 느림과 여백을 품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숭배하는 근대 문명이었으며,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추락은 그러한 문명에 대한 상징적 경고였다. 그는 모든 일에 뜸을 들일 줄 아는 느린 삶의 지혜를 제시했다. 이는 결과와 소유가 아니라 접촉과 과정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바라보는 감각의 회복이자 문명이 요구하는 직선보다 자연의 곡선을 따르는 삶의 방식이다.
문명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연의 종말 또한 가속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슬로우 크래프트는 단순한 제작 방식이나 취미를 넘어 절제와 생태적 책임을 실천하는 문화의 양식을 제안한다. 손의 창조 행위에 기초한 느린 사물 문화는 속도와 효율에 의해 지배된 문명의 시간 질서를 치유하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로 병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존과 연대를 지향하는 생태문명의 경로를 알려준다. 새로운 문명은 기계미학의 강요가 아니라 생태미학이 존중되는 곳에서 시작된다.
개인의 변화 없이는 사회적 전환도 불가능하다. 자연을 직접 경험하고, 느림과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신의 손으로 사물을 만들어 장기간 사용하는 태도는 생태적 감각과 책임을 회복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유의 토대이자 실천적 기준을 제안한다. 슬로우 크래프트는 축적된 인간의 생태적 지혜를 일상의 창조 행위로 되살리고 인간과 자연이 다시 공존할 수 있는 문명적 대안을 모색한다. 문명이 스스로 속도를 늦출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전환은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