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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 - 바람과 흙의 소리를 듣는 법 그리고 흩어진 생명을 묶는 언어의 그물
- 신승철,이승준,이윤경,조해민,홍승하 외 42인
- 알렙
- 2026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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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300152 |
|---|---|
| 쪽수 | 65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서양철학
AI추천 이유

사전이지만 뜻을 닫지 않는다
생태적지혜연구소가 천착해 온 집단지성의 목록
일반적인 사전은 개념의 경계를 정하고 하나의 뜻을 안정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생태적 현실은 고정된 항목으로 분리하기 어렵다. 숲과 도시는 연결되어 있고, 기후위기는 불평등과 노동의 문제를 통과하며, 마음의 고통은 공동체와 제도의 배치에서 생겨난다. 한 존재의 변화는 다른 존재의 조건을 바꾸고, 그렇게 달라진 환경은 다시 그 존재를 변화시킨다. 이 책이 개념을 독립된 표본처럼 박제하지 않고 서로를 통과하는 관계망으로 배치한 이유다.
서문을 쓴 이승준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이사장은 “우리는 생태적 지혜를 다양성, 생성, 내재성, 특이성으로 구성되는 ‘삶-앎’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어 “생태적 지혜가 만들어 내는 삶-앎은 몸의 에토스(습관), 타인과의 정동적 관계, 세계와의 깊은 유대감 등에 바탕을 둔다”고 설명한다.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진리를 소수가 소유하는 대신, 감각과 경험을 지닌 여러 사람이 잠정적인 의미망을 함께 만드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지혜다.
이러한 태도는 같은 용어를 둘러싼 차이도 숨기지 않는다. 하나의 개념은 철학과 사회 운동, 정책과 생활의 현장에서 서로 다르게 번역되고 사용될 수 있다. 책은 그 차이를 오류로 지우기보다 대화가 발생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독자는 필자의 정의를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현장의 언어를 더해 개념을 계속 갱신하는 다음 필자가 된다.
따라서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완결된 지식의 목록이라기보다 미래를 향해 열린 지도에 가깝다. 낯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이면서, 익숙한 말을 다른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제 제기의 책이다. 개념과 개념 사이의 여백은 독자가 새로운 접속을 만들 수 있도록 남겨 둔 공유지다.
3년간의 기획, 1년간의 집필·편집, 75개의 생태적 지혜 개념어
공유지에서 싹트고, 연결망을 따라 흐르며, 정동으로 움직이다
2025년 4월 22일 시작된 집단 집필 프로젝트에는 연구자와 활동가, 예술가와 교사, 종교인과 시민 등 47명이 참여했다. 필자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만을 설명하지 않았다. 도시 농업과 공동체 밥상, 대안 화폐와 공동 주거처럼 삶에서 직접 시도한 경험, 기후 정책과 생태 법학을 연구하며 얻은 통찰, 돌봄과 예술과 영성의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을 서로의 글과 연결했다. 읽고 토론하고 쓰고 고치는 과정에는 170여 명의 조합원이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탰다. 그렇게 개인의 저작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망이자 누구나 이어 쓸 수 있는 사회적 공유재가 만들어졌다.
75개의 개념어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공유지의 지혜’, ‘연결망의 지혜’, ‘정동의 지혜’라는 세 부에 놓인다. 이 배열은 사물과 제도를 공동으로 돌보는 기반에서 출발해,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관계를 살피고, 그 관계를 실제 변화로 움직이게 하는 힘에 이르는 흐름을 만든다. 서로 분리된 분야가 아니라 공유지가 연결망을 낳고 연결망이 정동을 발생시키며 정동이 다시 공유지의 배치를 바꾸는 순환 구조를 이룬다.
제1부 ‘공유지의 지혜’에는 26개의 개념어가 실렸다. 첫 항목인 ‘커먼즈’에서 시작해, 생활을 유지하는 자원과 공간을 누가 소유하는지 묻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함께 사용하고 관리하며 돌볼 것인지를 살핀다. 공유지는 이미 주어진 장소가 아니라 공동의 책임과 실천 속에서 비로소 생겨나는 관계다.
권범철은 커먼즈를 공동 소유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고 변화시키는 것”으로 읽는다. “스스로 변화하는 일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은 함께 일어난다. 커먼즈는 그 과정에서 출현해 내가 그것의 일부로 살아가게 되는 어떤 삶이다.”(46쪽) 이 정의를 따라가면 정책과 제도처럼 보이는 개념들 역시 멀리 있는 추상이 아니다. 음식을 나누는 방식,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동하는 방식에서 소유와 돌봄의 질서를 바꾸는 선택이 된다.
제2부 ‘연결망의 지혜’는 20개의 개념어로 관계의 형상과 윤리를 탐색한다. 이때 연결망은 사람끼리 맺는 연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술과 사물, 동물과 식물, 토양과 미생물도 세계를 함께 구성하는 행위자로 들어온다. 홍승하는 이 책의 전체 기획을 설명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생태적 지혜는 바로 공유지에서 싹트는 지혜이며, 그 지혜에서 파생한 다양한 지혜의 개념이 서로 연결되고 정동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쓴다.(233쪽) 관계는 이미 존재하는 개체들을 사후에 이어 주는 선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는 사건의 장이다. 이 관점은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 생태 윤리의 토대를 마련한다.
제3부 ‘정동의 지혜’는 29개의 개념어를 통해 변화가 시작되는 미세한 힘을 포착한다. 기후위기를 알면서도 행동하기 어려운 이유, 한 번의 만남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 공동체의 활력이 생기거나 사라지는 과정을 몸과 감각의 차원에서 설명한다. 김미정은 정동을 단순한 감정 상태와 구별하며 “정동은 추상적인 마음의 작용이기 이전에 어떤 몸들의 행위 능력”이고, “의식/무의식적 마주침들로 인해 변용하는 몸의 양태와 그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한다.(386쪽) 이 책에서 정동은 개인의 내면에 갇힌 기분이 아니라 몸과 세계 사이를 흐르며 관계의 가능성을 늘리거나 줄이는 힘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사전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정해진 독법이 없다. 첫 장부터 읽어도 좋지만, 그날 마음에 걸리는 단어를 찾아가거나 무작위로 책을 펼쳐 만난 항목을 ‘오늘의 생태적 화두’로 삼아도 된다. 커먼즈에서 공동체 밥상으로, 생태 슬픔에서 정동과 마주침으로, 탈성장에서 지역 되기와 미래진행형으로 이동하다 보면 독자마다 다른 개념의 길이 생긴다.
기후 재난 소식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무기력, 죄책감을 설명할 말이 필요할 때는 ‘생태 슬픔’과 ‘생태 치유’를 펼칠 수 있다. 녹색 정치와 전환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현장에서는 정의로운 전환, 생태 민주주의, 자연의 권리 소송, 세 가지 생태학이 이론적 참조가 된다. 공동체 안의 갈등과 거리 조절을 생각할 때는 호혜, 공동체, 횡단성, 국지적 절대성이 다른 질문을 건넨다.
세미나와 독서 모임에서는 하나의 항목을 함께 읽고 각자의 현장 경험을 보태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필자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좋은 토론의 출발점이다. 책의 여백에 지금-여기의 사례와 새 정의를 적어 넣는 순간 독자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이동한다. 이 사전이 제공하는 것은 행동 지침의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실천이 발아할 수 있도록 생각의 배치를 바꾸는 도구다.
도토리 한 톨에서 떡갈나무 숲까지
책의 마지막 표제어는 ‘떡갈나무 혁명’이다. 다람쥐가 겨울 먹이로 묻어 두고 잊어버린 한 톨의 도토리에서 새순이 나고, 마침내 숲의 천이가 시작되는 생태계의 이치를 문명 전환의 이미지로 바꾼 개념이다. 계획과 성과를 독점하려는 의지보다 이름 없이 건넨 돌봄과 우연한 접속, 작은 실천의 확산이 거대한 변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책 전체의 흐름을 매듭짓는다.
김신윤주는 떡갈나무 혁명을 위에서 아래로 사회를 한꺼번에 개조하는 방식과 구별한다. 그것은 각자의 생활 태도와 욕망에서 출발한 미세한 변화가 연결망을 따라 공명하고, 끝내 네트워크 전체를 바꾸는 분자 혁명이다. “결국 떡갈나무 혁명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거대한 문명적 전환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생활 양식이자 행동 양식이다.”(606쪽)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이 모은 75개의 말은 미래를 대신 설계해 주는 청사진이 아니다. 각자도생의 질서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잊고 있던 연결을 감각하게 하며, 독자가 선 자리에서 다음 행동을 시작하도록 돕는 씨앗이다. 멸종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문법은 이미 완성된 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과 삶을 내어놓는 순간부터 함께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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