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추천사
장종현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 대표 총회장·백석대학교 설립자)
박형용 박사(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한국성서신학회 회장)
김성영 목사(전 성결대학교 총장·전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프롤로그
복음만 선포되는 강단목회를 위하여
서장(序章) |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에의 초대
복음과 강단목회, 그 깊은 은혜의 지성소
창조의 복음-구원의 복음-심판의 복음
구원론적인 최초의 원시복음
최초의 행위언약과 원시복음
원시복음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
신학계가 아프게 들어야 할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
보다 폭넓은 복음의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폭넓은 의미
동의어로서의 말씀과 복음
복음으로서의 하나님 말씀
복음의 이중적(二重的) 의미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
서장 미주(尾註)
제1부 | 성경과 복음: 창조-타락-구원-재림
제1장•창조와 복음
성경은 복음을 창조론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먼저 선포하고 있다
고난당하는 욥에게 말씀하신 ‘창조의 복음-구원의 복음’
창조의 복음을 믿지 않음으로 타락한 아담
사도 바울이 강조한 ‘믿음과 순종’
‘나의 믿음’이냐, ‘하나님의 믿음’이냐
축복만이 복음은 아니다. 책망도 복음이다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의 복음과 구원의 복음
‘불신(不信)’으로 타락, ‘신앙(信仰)’으로 구원
시편과 선지서를 통한 창조의 복음-구원의 복음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
제1장 미주(尾註)
제2장•구원과 복음
아들로 선포하신 복음
최초의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한 인간
믿음과 순종, 불신과 불순종
만민에게 열린 복음
하나님의 복음, 아들의 복음
‘성경이 응(應)한 복음’은 구속사의 성취
성경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증언한 사도들
믿음과 행함이 함께하는 복음
율법에서 복음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
사도행전 28장에 이어지는 복음의 한반도 상륙
민족 복음화의 도화선, 빌리 그래함 성회와 엑스플로
민족복음화운동, 세계복음화운동으로
한반도중앙교회의 한반도복음화운동
어린 시절,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하다
한반도중앙교회라는 이름을 받다
“한반도 복음화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하나님이 부리시기에 편한 멍청한 촌놈
한반도 복음화의 출발점: 한반도중앙교회
왜 한반도 복음화인가
한반도복음화운동은 예루살렘으로
제2장 미주(尾註)
제3장•재림과 복음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재림의 복음’과 종말론적인 구원
재림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
재림의 시기와 징조에 대하여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
‘재림의 복음’과 ‘심판의 복음’
성경이 가르치는 심판(審判)
제3장 미주(尾註)
제4장•율법과 복음
율법과 복음의 긴장 관계
바울의 복음을 위한 변증법
율법이란 무엇인가
율법은 복음의 전주곡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인 복음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義), 복음으로 말미암은 의(義)
구약에서 발견하는 ‘복음의 회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율법
그것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사랑의 계명
사랑의 계명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
복음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제4장 미주(尾註)
제2부 | 복음과 목회: 실천적 사중복음
제1장•중생의 복음: 바른 복음
목회에 적용한 실천적 사중복음
‘바른 복음’, ‘바른 예배’, ‘바른 삶’, ‘바른 열매’라는 용어에 대하여
사중복음은 성결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교육’이라는 토대
자유의지의 남용과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율법을 보면 복음이 보이고, 복음을 보면 율법이 보인다
중생의 복음과 예배를 통한 경건
신앙의 시작인 거듭남
바른 복음(중생의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
사중복음에서 다뤄야 할 실천적 교리
성령의 내적 증거와 성경의 영감
회개와 중생과 성화에 이르는 믿음
회개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중생
예수 그리스도로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거듭남
여자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구원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오심으로 시작되는 성도의 삶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사중복음훈련원을 통한 실천적 복음 훈련
바른 복음으로 바른 예배를 드린다
바른 복음을 떠받드는 믿음
복음이 모든 것에 앞서가야 한다
강단의 타락은 바른 복음을 떠날 때 시작된다
예절이 복음은 아니지만, 복음은 예절이다
예(禮)를 모르는 상스러운 목회를 할 것인가
영적 예절은 경건의 시작이다
바른 복음을 떠나면 이단이 된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분리될 수 없다
복음은 복음 자체가 완전하다
신학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은 없다” 이것이 복음이다
제1장 미주(尾註)
제2장•신유의 복음: 바른 예배
‘바른 예배’로 신유가 일어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다
성경은 복음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목회 현장에서 시시각각 나타나는 신유의 복음
강단목회는 복음 목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리가 강단이다
성령님이 계시지 않은 강단은 생명력이 없다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은 성령님이 주인이시다
복음이 선포되는 지성소가 강단이다
신유의 복음 공동체로서의 예배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배의 삶이다
바른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육신과 영혼의 치유
공동체 예배의 첫 요소인 찬송
공동체 예배의 두 번째 요소인 말씀
공동체 예배의 세 번째 요소인 기도
공동체 예배의 네 번째 요소인 예물
공동체 예배의 다섯 번째, ‘거기서’ 제단(예배)을 쌓으라
제2장 미주(尾註)
제3장•성결의 복음: 바른 삶
성결의 복음은 ‘바른 삶’이다
예배의 승리가 인생의 승리이다
경계해야 할 ‘주관적인 복음’ 이해
예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
‘성결’에 대한 오해: 인간이 하나님처럼 성결할 수 있는가
예배와 기도, 성결의 복음
기도하기를 쉬는 죄: 영혼이 죽은 상태
성막의 울타리(중생의 복음-바른 복음)
성막 뜰(신유의 복음-바른 예배)
성소(성결의 복음-바른 삶)
하늘의 분향단에 드려지는 기도의 향연
성결의 복음과 분향단 기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 향기로운 기도
지성소(재림의 복음-바른 열매)
예수의 제자는 훈련을 통해서 길러진다
제3장 미주(尾註)
제4장•재림의 복음: 바른 열매
바른 열매로 나타나는 재림의 복음
한반도중앙교회의 두 기둥인 한반도 복음화와 강단목회
강단목회의 두 기둥과 네 축(軸)에 대한 보완 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중생의 복음과 유월절(출 12:1-14; 레 23:4-5)
중생의 복음과 무교절(민 28:11-25)
신유의 복음과 초실절(레 23:9-14)
성결의 복음과 오순절(레 23:15-21; 신 16:9-12)
재림의 복음과 나팔절(레 23:23-25; 민 10:1-10)
재림의 복음과 속죄절(속죄일, 레 23:26-32; 16:5-10, 30-34)
전도(선교)는 재림의 복음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전도(선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는 재림의 복음
전도하면 모든 것이 된다. 전도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안 된다
재림의 복음과 초막절(레 23:33-44)
재림의 복음, 전도하여 제자를 남기는 일
제4장 미주(尾註)
제3부 | 복음과 강단목회
제1장•강단은 복음이 선포되는 지성소다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은 말씀의 지성소
복음을 통하여 얻는 구원의 확신
강단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보게 한다
강단의 복음으로 상담이 이루어진다
왜 강단이 복음의 지성소인가
성전 지성소 안의 율법, 성전이신 예수님 안의 복음
그러므로 강단은 복음이 선포되는 지성소다
제1장 미주(尾註)
제2장•강단의 복음으로 교회와 성도가 산다
강단의 복음으로 교회가 움직인다
오늘날 복음의 강단 맡은 테넌트들의 착각
행복한 목회는 ‘복음만이 선포되는 강단’
성도는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을 신뢰한다
강단의 복음으로 성도들이 살아난다
강단의 복음은 예배가 중심이다
복음이 선포되는 강단의 예배
복음과 예배에 대한 성도들의 자세
예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제3장•강단의 복음으로 전도(선교)가 시작된다
강단으로 세상에 나아가자
강단의 복음으로 가정과 사회로 나아간다
강단의 복음으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성전 되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수
강단에서 사회 변화가 시작된다
강단의 복음은 삶의 현장에서 성취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전도 안 할 건가
강단목회의 꽃인 전도와 선교
강단의 복음에서 시작되는 전도와 선교
제3장 미주(尾註)
제4장•바른 복음의 선포가 강단목회의 승리다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복음을 선포하신 골고다 강단
순교의 각오로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자
유대교 회당에서까지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나사렛과 가버나움 회당에서 복음을 증언하신 예수님
피 묻은 복음을 물려받은 우리,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을 따라 하기: 사도 베드로의 복음 강단
예수님을 따라 하기: 사도 바울의 복음 강단
예수님을 따라 하기: 초기 한반도중앙교회의 차량 교회 ‘핸들 강단’
바른 복음의 선포가 강단목회의 승리다
제4장 미주(尾註)
에필로그
그날이 오늘 되게 하소서
부록_ 강단 이야기
講壇牧會, 강단이란 무엇인가
서장•강단에서 헛소리하지 마라
제1장•강단목회의 비전을 받다
한반도 복음화의 베이스캠프: 한반도중앙교회
능력 받기 위한 장기 금식기도 중에 얻은 깨달음
손바닥에서 불이 나오기를 기도한 부끄러움
예수님은 무엇으로 사역했니?
제2장•강단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강단’ 이야기[1]: 에스라의 민족대각성운동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을 듣고 백성이 회개하며 울다
성경에 기록된 ‘강단’ 이야기[2]: 솔로몬의 기도를 통한 회개와 감사
강단은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자리
성경에 기록된 ‘강단’의 언어적 의미
보이는 강단, 보이지 않는 강단
가장 높은 곳의 우주적인 하나님의 강단
가장 낮은 곳에 교회로 오신 예수님의 강단
하나님의 강단은 구속사적인 언약의 강단
시내 산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신 하나님
강단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자리
초대교회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강단과 강대의 의미
성전의 동편을 향한 강단과 강대의 유래
강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예배의 중심 자리
보이는 강단보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강단
제2장 미주(尾註)
제3장•제단과 강단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증언하는 제단과 강단
갈보리 언덕 십자가 강단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강단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증언하는 강단
솔로몬 행각 강단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
제3장 미주(尾註)
제4장•한국 교회 강단 회복을 위하여
강단의 회복, 예수님에게서 배우자
구약이 보여 주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통한 영적 회복
신약이 보여 주는 그리스도의 구원 성취로써의 회복
신유와 회복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강단의 회복
교회의 회복은 강단 말씀에서
강단으로 장사하지 말아야
강단에서 나오는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자
강단 회복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자”
제4장 미주(尾註)
강단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도 강단을 붙잡고 이 종은 웁니다
[본 문]
(…)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good news)이 복음(gospel)이다. 죄로 죽어가는 영혼에게 “너를 살려 주겠다!”, “너를 살리려고 내가 왔다!”는 뉴스보다 더 기쁜 소식이 있겠는가?
한강에 빠져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누군가 와서 그를 살려 주는 것이다. 당장 죽어 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밥도 아니다. 권력도 명예도, 그 무엇도 아니다. 사는 것이다. 목숨이고 생명이다. “살려 주겠다.” 그것이 가장 기쁜 소식이고 가장 절박한 소식이다. 이 말이 맞는가? 그 누구도 이 말에 저항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보다 근본적으로 죽어 가는 존재이다. 죄에 빠져 죽어 가는 존재다. 인간 최대의 난제는 죄의 문제다. 처음부터 죄의 굴레를 쓰고 태어난 존재가 인간이다. 시인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는 예외 없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죄의 몸으로 태어났다(시 51:5).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불쌍한 존재고, 그것을 알면서도 부정하려 발버둥을 치는 미련한 존재다. “아아!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줄 것인가?” 이것은 자신을 살려 줄 분을 찾기에 갈급했던 사도 바울의 탄식만은 아니다(롬 7:24). 바로 나의 탄식이며, 당신의 절규이다.
이런 우리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살려 주마” 하고 손을 내미시는 분이 계신다. “여기 살길이 있다” 하고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 분이 있다.
그분이 바로 이 세상과 당신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pp. 26-27 「복음에의 초대」 중에서
(…) 한반도 복음화는 나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언약이며 또한 구속사적인 사명이다. 이 시대에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미국의 국력과, 일본의 경제, 한국의 선교 사명이 동북삼성을 통하여 복음의 땅끝인 이스라엘로 들어가야 한다. 또 다른 한 길은 연해주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전파되고 증거되는 이것이 한반도 복음화의 길이다. 그러므로 세계 복음화의 첫 성이자 관문이며 발판이 바로 한반도이다. 따라서 한반도 복음화는 곧 세계 복음화인 것이다. 이 한반도 복음화를 위하여 두 개의 기둥과 네 개의 축을 나는 극한의 군 생활 행군을 통하여 20일 금식기도와 40일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으로 받은 것이다. (…) p. 132 「한반도복음화운동은 예루살렘으로」 중에서
(…) 필자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예수님의 역사적인 재림을 믿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과 동시에 이미 다시 오셨다는 초역사적 상징적인 재림을 주장한다. 이는 분명히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평신도들 사이에서도 의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이 적다. 아니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거나 설교를 하면 어딘가 좀 촌스러운 성도나 목회자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최후 심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는 장(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에서 지극히 간명하게 언급하고 부활과 심판을 다루고 있다. 그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놓인 처지는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면서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이다(딛 2:12-13)”, 또한 “바울은 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우리 몸의 구속’이라고 부른다(롬 8:23)”.
이처럼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앞에서도 상기시킨 바와 같이, 성경은 “내가 속히 오리라” 예수님의 재림 약속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 약속에 대한 성도들의 화답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이다. “마라나타(maranatha)!”, “주여, 오시옵소서(O Lord Come!)”이다. (…) pp. 138-139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중에서
(…) 이 종이 사중복음훈련원을 운영하는 목적은 결국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받아(묵상) 분향단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장소인 언약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때 그 성도는 마치 사무엘상 16장 13절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창세기 41장 38절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창세기 21장 22절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말씀처럼, 성령 충만을 경험한다. 양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성막)를 통하여 성막 안으로 들어온 성도는 번제단에서 5대 제사를 드리고 물두멍을 통과하여 성막으로 들어가 금 등대(성령의 참 빛)의 조명을 통하여 떡 상에서 생명의 떡 되신 말씀을 받는다. 그 말씀을 가지고 분향단에 나아가 다섯 가지의 향을 드리는 기도를 드린 후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언약궤)을 누리는 성도는 임마누엘의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기도 생활이다. 나의 사중복음훈련원의 최종 목표는 성도들이 기도 생활에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일컬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기도하는 교회’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요 바램이다. (…) pp. 344-345 「예수의 제자는 훈련을 통해서 길러진다」 중에서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화목제물이 되셨으니 우리가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 간과하다는 말은 ‘불문에 부친다’는 뜻이다. ‘죄를 사면(赦免)한다’는 것과는 달리 죄를 ‘불문에 부친다, 간과하다(pretermit)’란 말은 로마 법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자신의 의중에서 빼 버리는 것이다. ‘지나치다(뛰어넘다, passover)’란 의미이다. ‘지나치다’, ‘눈감아 버리다(over look)’, ‘고려하지 않다’, ‘주목하지 않고 흘려보내다’, ‘고의적으로 눈감아 버리다’라는 뜻으로 바울은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택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기셨다”는 말이다. 십자가의 화목제물인 피의 믿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간과하셨다. 그래서 법궤 위에 제물의 피를 부은 것이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바른 복음이 증거되는 강단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그 법궤 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증거되는 그 강단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하시는 것이다. (…) p. 424 「강단으로 세상에 나아가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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