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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71831838 |
|---|---|
| 쪽수 | 22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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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심리상담사가 또 있었을까. 불안했고, 지금도 불안하며, 앞으로도 불안할 것이라고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사람이.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해 왔지만 자신의 삶만큼은 모두 이해한다고 꾸미지 않는 사람. 그래서일까. 몰래 멋을 부리던 딸로도, 여전히 물건을 사 모으는 엄마로도, 내담자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는 상담사로도 억지 부리는 곳 없이 써 내려간 글을 읽다 보면 가슴 한편이 애잔하게 저민다. 저자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흔들리고 뒤늦게 깨닫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준다.
모든 딸을 위한 이야기
많은 여성이 자신의 마음보다 가족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딸로 자란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하고, 집안의 분위기를 살피며,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때도 엄마가 걱정할지 저 생각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뒤에도 이 습관은 계속된다. 나이 든 부모에게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느끼고, 엄마의 말 한마디에 잠 못 이루며, 엄마와 닮은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른이 되었지만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칭찬받고 싶고,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딸로 돌아간다.
《비로소 딸이 아닌 엄마》가 ‘엄마’와 ‘딸’을 소재로 한 여느 책들과 다른 점은 이 복잡한 마음을 상처나 원망, 희생이라는 단어들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엄마는 고맙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암에 걸린 엄마를 돌보고 요양원에 모셨을 때는 사랑과 죄책감, 안도와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통장 아줌마 돈”, “거기는 밥을 해 주잖아” 같은 너무도 엄마다운 말 앞에서는 후회와 애틋함을 함께 느낀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만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성격과 보기 싫은 습관까지 입체적인 모습을 품는 일이다.
이 책은 좋은 딸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을 덜어 준다.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답답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해 돌본 뒤에도 미안할 수 있으며, 떠나보낸 뒤 슬픔과 안도감을 함께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여러 감정이 한 마음 안에 공존한다고 해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독자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따라가며 자신 역시 서툰 채로 최선을 다해 한 시절을 건너온 딸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랑해도 삶은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엄마’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밥을 차려 주던 모습, 잔소리하던 목소리,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던 습관 또는 모두를 기다리던 거실의 뒷모습일 수도 있다. 저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엄마의 임종 날이다.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건너가는 엄마의 귓가에 울부짖기만 했던 그날, 슬픔에 막혀 끝내 건네지 못한 말이 남았다. 저자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히 불러도 엄마가 가야 할 길을 대신 걸을 수는 없다. 엄마는 자신의 생을 끝까지 살아 냈고, 남겨진 딸에게는 다시 자신의 생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았다.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딸은 엄마가 가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하지만, 엄마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엄마에게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설명하지 않은 외로움과 딸이 알지 못하는 시간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엄마의 생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붙이는 것은 아니다. 심리상담사인 저자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두고, 한 사람의 생을 몇 가지 심리학적 언어로 결론 내리지 않는다. 다만 엄마에게도 딸이 전부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깨달음은 엄마에게서 자신으로 건너온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고,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선택이 있으며, 시어머니와 내담자, 한집에서 시간을 나눈 고양이에게도 저마다의 생이 있다. 저자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의 미래까지 대신 정해 줄 수는 없고, 관계를 지키고 싶어도 끝내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있으며,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살아가며 배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두 해결하거나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책임질 수 없다.
함께할 수 있는 동안 곁에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며, 헤어져야 할 때에는 그 사람의 몫을 돌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끝내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쓸쓸한 사실과 그럼에도 서로의 생에 오래 흔적을 남긴다는 다정한 진실을 함께 보여 준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았고, 딸은 딸의 삶을 살아왔다.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했어도 함께한 시간은 영원하다.
엄마에게 받은 삶을 내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
엄마가 떠난 뒤에야 저자는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은 삶 앞에 선다. 엄마를 실망시키거나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딸의 마음 때문에 오래 미뤄 둔 선택들이 있었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반응을 짐작하고,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일이 삶의 한편을 차지했다. 그 자리가 비자 상실과 함께 이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까지 자신 감당해야 한다는 고독을 맞닥뜨린다.
많은 모녀 이야기가 이해와 화해에서 끝나지만, 삶은 그 뒤에도 계속된다. 엄마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오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상실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슬픔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아이를 키우고, 사랑하고,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며, 떠난 존재를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산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삶을 미루지 않고, 관계가 끝났다는 이유로 함께한 시간을 실패로 만들지 않으며, 아이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대신 살아 주려 하지 않는다.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거나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조금씩 벗어난다.
이 책에서 ‘엄마가 된다’는 불안과 결핍을 안은 자신으로도 필요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누군가를 돌보되 자신의 몫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욕망 역시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저자는 엄마에게 받은 사랑과 기억을 간직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자신의 삶에서 새롭게 이어 간다.
《비로소 딸이 아닌 엄마》는 엄마를 이해하거나 용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지도, 엄마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엄마를 사랑해도 모든 마음을 이해할 수 없으며,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한 딸, 아직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딸, 엄마를 잃고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딸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사랑한다고 서로의 삶까지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고. 엄마가 자신의 생을 살았듯, 이제 당신도 자신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