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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24225134 |
|---|---|
| 쪽수 | 16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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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형식 위에 새로 찍히는 발자국들
모상철 시인의 뜻을 잇는 일곱 시인의 시조, 『미리내에 뜬 시조의 별들』
『미리내에 뜬 시조의 별들』은 한 시인의 문학적 뜻이 어떻게 다음 세대의 작품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화집이다. 모상철 시인의 시조 사랑과 후배 문인에 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마련된 모상철시조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수상의 기록을 넘어 한국 현대시조의 현재를 함께 보여준다. 이 책은 모상철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제1회부터 제7회까지 수상 시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창작의 결을 살펴보게 한다.
시조는 오래된 형식이지만 결코 낡은 문학이 아니다. 초장과 중장, 종장으로 이어지는 정형 속에서 말을 절제하고 사유를 응축해야 하는 시조는 오히려 빠르게 소비되는 오늘의 언어 환경 속에서 더욱 또렷한 존재 이유를 갖는다. 『미리내에 뜬 시조의 별들』에 실린 작품들은 이러한 시조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자연과 인간, 가족과 고향, 시대와 역사, 그리움과 성찰을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책의 중심에는 모상철 시인이 있다. 193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그는 시조와 동시조, 동시를 두루 써 왔으며, 여러 권의 시조집과 동시조집, 동시집을 통해 꾸준히 작품세계를 일구었다. 그의 시에는 세월을 통과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깊은 성찰과 따뜻한 시선, 정형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문학적 태도가 배어 있다. 이번 책에 실린 「얼음의 징검다리 건너며」, 「어느 역정」, 「심경」, 「득음을 꿈꾸며」, 「널문리 환상곡」 등은 역사와 삶, 개인의 내면을 시조의 정제된 가락으로 담아낸다.
이어지는 수상작가들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빛깔을 낸다. 임만규의 「사막에서」는 사막이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인생과 존재를 돌아보게 하고, 배종도의 「사과나무 엿보기」는 사계절의 변화를 통해 성장과 결실의 의미를 보여준다. 천옥희의 「동백섬 이야기」는 고독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마음을, 김은자의 「어머니의 강」은 한 어머니의 생애를 강물의 이미지로 풀어낸다. 김현자의 「각시붓꽃」은 짧은 형식 안에서 단시조 특유의 단아함과 응축미를 드러내고, 손성자의 「해녀를 읽다」는 바다와 노동, 생존의 서사를 해녀의 삶으로 새긴다. 류미월의 「노랑의 은유」는 색채와 자연 이미지를 통해 생명과 희망의 감각을 확장한다.
이처럼 작품의 소재와 어법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들 모두가 시조를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형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막과 사과나무, 동백섬과 강, 붓꽃과 해녀, 노란 꽃과 빛은 각각의 시인에게서 삶의 질문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정형의 틀은 작품을 제한하기보다 오히려 언어를 밀도 있게 만들고, 짧은 형식 안에 긴 사유를 담게 한다.
『미리내에 뜬 시조의 별들』의 의미는 수상작을 기념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이 책은 수상 이후 시인들이 어떤 시적 세계를 이어왔는지까지 함께 보여준다. 한 편의 수상작이 한 시인의 출발점이라면,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은 그 시인의 깊이와 지속성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이 사화집은 문학상의 기록이자 창작의 현재형이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시조문학의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서문에서 이석규 모상철시조문학회 고문·가천대 명예교수는 모상철 시인의 문학이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고 후배 시인들의 창작과 만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처럼, 한 시인이 놓은 징검다리를 따라 또 다른 시인들이 건너오고, 그 길 위에 새로운 독자들이 함께 선다면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표지에 펼쳐진 밤하늘과 은하수 역시 이 책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별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빛나지만, 함께 놓일 때 하나의 미리내를 이룬다. 모상철과 일곱 수상 시인의 작품 또한 그러하다. 각기 다른 삶과 목소리, 다른 소재와 리듬을 품고 있으면서도 한 권 안에서 만나 한국 시조의 넓이와 깊이를 드러낸다.
『미리내에 뜬 시조의 별들』은 시조를 오래된 형식으로만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오늘의 시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시조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동시대 작가들의 다양한 성취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쁨을 선사한다. 한 시인의 뜻이 여러 시인의 작품으로 이어지고, 그 작품들이 다시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순간, 문학은 비로소 한 시대를 넘어 오래 살아남는다. 이 책은 그 이어짐의 아름다운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