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립금
950원 (5% 적립)
추가 적립 안내
5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10만원 이상 결제 시 (*배송비 제외)
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2,000원 이상이면 2,000원 추가적립정가제FREE(상품/사은품) 금액이
5,000원 이상이면 5,000원 추가적립
회원가입 시 적립금 즉시 지급!
등록 페이지로 이동
배송비
무료 (해외배송의 경우 지역에 따라 상이)
배송안내
배송비 안내
- 1만원 이상 주문 시 무료배송 입니다.
- 주문하신 상품을 해외로 배송 하시는 경우에는 별도의 항공료 가 부과됩니다
주문 수량 변경시 안내
[주문/배송] 주문 수량 변경 시 안내
주문 수량 변경 시,배송일정이 변경될 수 있으니 반드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객센터 1544-9020)
지금 주문하면 9/7(월) 출고 가능
택배보다 빠른, 나우드림
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88965234500 |
|---|---|
| 쪽수 | 32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정치/사회 > 정치학
관련 이벤트
AI추천 이유
책 소개
목차
출판사 서평
저자 소개
도서리뷰 (0)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리뷰를 남기고 다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해보세요.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이 분야의 화제의 신간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교환/반품/환불
| 반품/교환방법 |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 반품/교환비용 |
|
| 반품/교환 불가 사유 |
|
| 상품 품절 |
|
|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















‘정읍 선언’은 자유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독트린’이었다
“이제 우리는 무기휴회된 미소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야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撤退)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강조 괄호 편집자)
1946년 6월 3일, 이른바 ‘정읍 선언’으로 알려져 온 이승만 발언의 요지다.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말뜻은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전후 맥락을 떼어내고 “우리는 남방만이라도”를 부각시키는 세력은 바로 이 한마디를 빌미로 이승만을 한반도 분단의 원흉으로 지목해 왔다.
그러나 1946년 ‘남선(南選) 순회’ 당시 이승만의 이 발언은 당시론 별달리 새로운 발언도 아니었다. 소련의 발목잡기로 미소공동위원회가 공전(空轉)하여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발언은 정식 건국을 말하지도 않았다. 문면 그대로 “소련이 철퇴(철수)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할 준비를 하자는 촉구였다. 『이승만 독트린』(기파랑 刊, 2026)의 저자는 이승만의 이 호소가 “한반도 분단을 불러오긴커녕, 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소련의 야욕에 맞서 ‘반쪽의 자유’만이라도 지켜 낼 수 있게 한 ‘이승만 독트린’이었다”고 재평가한다.
분단의 원흉은 누구인가
한반도 분단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2차대전 종전(終戰) 직전 미국이 제안하고 소련이 수용한 38선이다. 미국은 왜 38선을 그었나?
소련은 사실 2차대전에서 함께 피를 흘린 연합국도 아니었다. 전쟁 막바지에야 ‘무늬만 연합군’으로 가세한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패망하자마자 폴란드를 시작으로 동유럽부터 공산화해 나가고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까지 기정사실화 되자, 소련은 재빨리 한반도를 향해 군대를 진격시키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폴란드화’를 막으려는 미국이 부랴부랴 저지선으로 그은 것이 38선이다. 이미 개성을 넘어 서울을 코앞에 두고 있던 소련은 미국의 원자탄이 무서워 울며 겨자 먹기로 38선 너머로 물러났다. 아직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기도 전의 일이다.
소련은 1945년 9월에 38선을 봉쇄해 사람과 물자의 통행을 막았다. 이때부터 6·25전쟁이 끝나는 1953년 7월까지 8년 동안, 북에서 남으로 향하는 대규모 피난 행렬 얘기는 수없이 많아도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피난 대열 얘기는 없다는 사실이, 38선 이북은 당시 이미 다른 세상이었음을 웅변한다.
대한민국은 ‘강요된 차선’이었다
정읍 선언에서 이승만은 “세계 공론에 호소”하자고 했다. 그 결실이 1년 5개월여 뒤, 1947년 11월 유엔총회의 ‘한국 결의안’이다. 결의안대로면 한반도에서는 1948년 3월 31일 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해야 했다. 알다시피 총선은 그해 5월 10일에야, 북한 전역과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알고도 제 입으로 말 못 하는 사람을 위해 다시 불러 준다. 북한은 총선거를 거부했고, 제주도는 공산 폭동으로 할 수 없었다. 남한만의 총선거는 이승만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차선(次善)’이었다.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후 그해 12월 유엔 총회가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1946년 정읍 선언의,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라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정읍 선언’ 후 80년이 흘렀다. ‘강요된 차선’은 돌이켜보면 ‘선택 가능했던 최선’이 아니었을까? 두 가지를 자문(自問)해 보면 안다.
첫째, ‘소련 치하의 공산 통일’이 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반쪽만의 자유’보다 더 행복했을까?
둘째, 만약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다음 여섯 나라 중 어느 나라 순서로 태어나고 싶은가? (1)한국 (2)미국 (3)일본 (4)중국 (6)러시아 (6)북한
『이승만 독트린』을 읽고 나면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위 질문의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