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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30682921 |
|---|---|
| 쪽수 | 40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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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세이/시 > 외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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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일랜드 소설과 그리스 비극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이 두 가지가 훌륭하게 결합된 소설을 발견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예상했던 대로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심오하다.”
_R. F. 쿠앙(소설가)
“우정, 예술의 치유력, 그리고 왜 우리가 꿈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소설이다.
나는 첫 페이지부터 완전히 빠져들었다.”
_더글러스 스튜어트(소설가)
역사상 최초의 죽음의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는
비극 속의 희극, 희극 속의 비극
이야기는 기원전 4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에서 시작된다. 20년 가까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기세등등한 아테네가 시켈리아 땅 전체를 집어삼킬 목적으로 시라쿠사를 포위했으나 시라쿠사 해군은 아테네군을 격파했고 출구를 봉쇄하여 퇴각조차 가로막았다. 살아남은 약 7천 명의 아테네 침략자들은 포로가 되었지만, 당시는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는 시점으로부터 2,361년 전이었다. 포로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식이 없던 시라쿠사 당국은 ‘채석장’이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석회암 가득한 도시 외곽 채석장에 7천의 포로를 가두고 굶어 죽을 때까지 방치하자는 것이었다. 누구도 이 상황을 두고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두 명의 실직한 도공, 겔론과 람포가 예외라면 예외라고 할 수 있었다.
아테네와의 전쟁 탓에 직업을 잃은 람포와 겔론은 가끔 물, 빵, 치즈 같은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썩은 내 나는 채석장으로 향한다. 그들이 포로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는 동기는 연민이 아니다. 그저 연극 애호가로서, 아테네의 위대한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대사를 아는 만큼 좀 읊어달라는 것이다.
이제 곧 아테네를 향한 스파르타의 침공을 앞두고 있고 스파르타는 도시 전체를 몽땅 불태워버릴 기세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앞으로 영영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겔론은 결심하고 람포를 설득한다. 채석장에서 죽어가는 아테네인 포로들을 모아 『메데이아』를 연극으로 올리자고. 가발이고 갑옷이고 소품도 제대로 갖출 거고, 악사도 부를 거고 관객도 부를 거다. 에우리피데스의 마지막 작품을 지켜내야 하니까. 에우리피데스를 세상에 남겨야 하니까.
주인공 겔론과 람포는 둘 다 노동 계급이면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웃사이더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둘은 자신들의 눈동자 색깔(얕은 바닷물 색깔과 똥빛 갈색)처럼이나 서로 매우 다른 인물이다. 겔론은 가수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그것을 이루지 못했고 끝내 예술적 상상력을 발산할 수 없었다. 또한 그는 병마로 죽은 아들의 아버지이며 그 슬픔으로 떠나버린 아내의 남편이다. 아테네 포로들을 통해 에우리피데스를 무대에 올리려는 그의 집착은 자신의 좌절과 고통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하다.
반면 람포는 평범하고 천박하고 가벼운 청년이다. 연극에 대한 애호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에우리피데스에 미쳐 있는 겔론과 달리 람포가 조금이나마 아테네 비극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오직 친구인 겔론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연극보다 매일 밤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며 술집에서 일하는 노예 소녀 리라에게 말을 거는 것이 오히려 훨씬 큰 즐거움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람포는 희극에서 나온 인물이고 겔론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영광 없는 영웅들』의 성공은 저자가 겔론이 아닌 람포를 화자로 삼은 결정 덕분이 크다. 이 결정으로 인해 겔론의 깊고 절박하고 진지한 감정이 람포의 경쾌한 어조를 통해 굴절되어 전달되고, 결과적으로 비극과 희극을 왔다 갔다 하는 효과를 작품 전반에서 자아내게 되었다.
죽이고 부수고 불태우는 잔혹한 세계에서
그럼에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무언가를 위하여
역사 속에서는 시라쿠사 당국이 아테네 포로들을 채석장에 가두어 굶어 죽게 했으나 만약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 시라쿠사가 패배했다면, 당연히 아테네가 도시를 불태우고 시라쿠사인들을 가차 없이 노예로 삼았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실제로 도시가 멸망하고 문화가 통째로 지워져버리는 잔혹한 곳이었다. 레넌은 시라쿠사인 연출가와 아테네인 포로의 관계를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미화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포로들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는 겔론과 람포의 행동은 결코 자비와 연민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테네는 굶어 죽어가는 벌을 받고 나아가 멸망하는 것이 마땅한 적국(敵國)이다. 이는 포로이자 배우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두 주인공의 바람에 따라 연기를 시작한 것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살아남게 하려는 숭고한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치즈와 올리브를 얻어 먹으며 며칠, 몇 주라도 더 살고자 하는 단순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연습하며 연극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조명하기 위해 적국의 인간과 협력하는 경험은 양쪽 모두에게 스스로도 몰랐던 이타적인 충동을 일깨워준다. 아테네의 연극을 향한 겔론의 사랑과 집착을 보며 포로들은 아테네 문화를 향한 잃어버린 자긍심을 느끼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며 적국의 인간이 하나로 녹아들 수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겔론과 람포는 포로들의 너덜너덜한 옷 아래로 그들의 앙상한 다리와 쇠사슬에 묶인 발목을 드디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레넌의 작품에 등장하는 연극이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상상을 할 수 있는 매개’인 셈이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예술과 문화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전 세계가 전쟁에 시달리는 시대이기에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에서 엿보이는 예술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술이란 반복되는 반증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을 고수하는 것이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순진하거나 위선적이지 않은 태도로 이러한 예술의 가치를 옹호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