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머리말
1부 ∙ 피, 땀, 뇌, 운
1장 ∙ 피
상속 ╻ 경주 은유 ╻ 세대 간 릴레이 경주 ╻ 상속 제도를 폐지할 수 있을까?
위대한 개츠비 곡선 ╻ 상속세 ╻ 워드와 월드
사회적 상속 ╻ 재산소유 민주주의
2장 ∙ 땀
언어의 물질성 ╻ 땀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 메리토크라시는 왜 승복의 윤리를 필요로 하는가?
공정: 땀에 대한 보상 규칙을 만드는 일 ╻ 새로운 질서
3장 ∙ 뇌
피의 지배에서 뇌의 지배로 ╻ 뇌와 피의 공동 지배 ╻ 뇌의 국가 관리
메리트 ╻ 보상의 우연성 ╻ 승자독식사회
가장 재능 있는 자에게 악기를? ╻ 1 : 12 국민투표 ╻ 나가며
4장 ∙ 운
성공과 운 ╻ 운칠기삼 ╻ 운의 중화
운 평등주의 ╻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 ╻ 국가가 운을 바꿀 수 있다
2부 ∙ 다섯 가지 핵심 질문
5장 ∙ 개천 용은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들어가며 ╻ 아메리칸드림 사재기 ╻ 유리 바닥
개천에서 용 나야 vs. 위층 사람들을 끌어내려야 ╻ 마음 편하게 해주는 이데올로기
개천 용 불평등지수 ╻ 개천은 용의 홈타운 ╻ 등용문, 드래곤 게이트 ╻ 개천에 남은 자들
6장 ∙ 평등이 왜 더 효율적일까?
단순하고 힘 있는 그래프 ╻ 그 밖의 증거들 ╻ 교육에서도 평등이 효율적일까?
아웃라이어, 한국 교육 ╻ 효율성을 위해 신뢰가 필요한가? ╻ 경제성장을 위해 평등이 필요한가?
7장 ∙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학생들은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을까? ╻ 빈곤의 책임 ╻ 윤리적 추론
가난의 책임에 대한 윤리적 추론 양태 ╻ 왜 높은 사고력이 복지에 도움이 될까?
8장 ∙ 노동자를 존중하면 더 평등하게 분배할까?
청소 노동자 표창장 ╻ 인정과 분배 ╻ 사고실험
임금 분배 사고실험 결과 ╻ 왜 인정이 중요할까? ╻ 평등을 위해 높은 사고력이 필요할까?
9장 ∙ 평등은 왜 인정에서 시작되는가?
마이클 영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 ╻ 왜 풍자소설로 썼을까? ╻ 소설의 줄거리
메리토크라시의 전복 ╻ 40년 후 ╻ 내 마음속의 메리토크라시
평등은 왜 인정에서 시작되는가? ╻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본 문]
한 사회가 노동에 대한 존엄성,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잃을 때, 그 사회가 어떻게 디스토피아로 빠질 수 있는가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메리토크라시의 발흥』을 쓴 이유였다. 이 책은 평등이 왜 인정에서 출발하는지에 대해 잘 알려준다. … 롤스야말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있어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복해서 강조했다.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하게 된 마이클 왈저(Walzer, 1983)는 우리 사회에서 힘든 노동이나 더러운 노동을 감당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야말로 윤리적 사회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된다고 말했다. 존중과 인정이라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피, 땀, 뇌, 운이라는 공정판별식의 네 변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_ 9~10쪽, “머리말” 중에서
『메리토크라시의 발흥』은 메리토크라시가 자기파괴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핵심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있다. 영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핵심 메시지는 메리토크라시는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기파괴적인 성격의 원인은 바로 데모크라시의 결여에 있다. 메리토크라시 체제는 노동계급에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만 남겨놓게 됨으로써 사회적 저항의 싹을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이다. 더 이상 노동계급을 교양하고, 지도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 자체를 남겨놓지 않는 것이 메리토크라시라는 계급사회가 2034년까지 발휘한 통치 기술이다. 흥미롭게도 영은 2034년 메리토크라시가 붕괴하는 모습을 마치 메리토크라시가 중세 봉건사회를 무너뜨리는 것과 유사한 동기로 파악하고 있다. 즉, 메리토크라시는 결국 고착된 계급을 세습하려고 하는 순간 붕괴하며, 그 동기는 근대혁명에서 메리토크라시를 불러들인 방식과 유사하다. _ 63~64쪽, “2장 ∙ 땀” 중에서
국가경쟁력 또는 사회 효율성 담론은 ‘인간의 존엄성’ 또는 평등이 사회 비판의 준거가 되지 못하도록 막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물론 국가 발전 이념은 세습이라는 봉건적 질서를 새로운 근대국가의 질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효과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후기산업사회로 돌입한 오늘날의 사회에서조차 여전히 국가경쟁력 담론은 인간의 존엄성 담론을 압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인정투쟁조차 국가의 효율적 운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도 메리토크라시가 국가 발전 이념과 결부될 때, 그 논리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다 엘리트 중심 사회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_ 84~85쪽, “3장 ∙ 뇌” 중에서
리처드 리브스가 말한 ‘유리 바닥’은, 중산층 부모들이 자녀가 아래 계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설치해 놓은 안전망이다. … 유리 바닥을 뚫고 올라가는 일은 단지 노력(땀)과 재능(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리 바닥이 설치된 것에는 피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 부모들은 부의 대물림을 통해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자녀에게 전달한다. 이와 같은 피의 요소는 자녀들을 계층 하강으로부터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된다. … 그렇다면 개천에 남은 미꾸라지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존감의 훼손이라 생각한다. 마이클 영이 메리토크라시에 대해 풍자한 동기도 한 사회가 자존감을 가진 노동자계급을 잃음으로써 디스토피아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_ 147~148쪽, “5장 ∙ 개천 용은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 중에서
따라서 진심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 사회정의 교육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기회의 평등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교육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민주시민으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불평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시험 경쟁에만 몰두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산불평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서로 신뢰하는 동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신뢰 자본은 다시 복지국가를 만들어나가는 데 자양분이 될 것이다. _ 165~165쪽, “6장 ∙ 평등이 왜 더 효율적일까?” 중에서
바람직한 분배 상태를 결정하는 행위는 개인의 정체성 및 도덕 체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레이코프(Lakoff, 2006)는 업적을 강조하는 인식 구조를 가진 사람은, 성공이란 자신의 노력에서 기인하며, 동시에 실패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밝혔다. 반면 시장의 효율성이나 개인의 책임보다는 공동체의 보살핌과 사회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연대를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 이 연구에서도 평등주의자들이 보다 다양한 준거를 사용하며, 이 준거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즉 레이코프의 주장과 어느 정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났다. 비교적 불평등한 분배를 선호한 학생들에 비해, 덜 불평등하게 분배한 학생들이 보다 다양한 준거를 종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성을 보여주었다. _ 227쪽, “8장 ∙ 노동자를 존중하면 더 평등하게 분배할까?” 중에서
번스타인도 역시 교실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 성취해 나가는 것(또는 실패하는 것)을 게임의 규칙과 그 참여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정이론에서 시사하는 것과 비슷하게, 교실의 질서가 인정의 질서가 되지 못하고 서열과 경쟁의 질서만이 중시되면 많은 학생들은 긍정적 자기 인식을 갖지 못하게 되어 참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인정이론이 새로운 인정 질서를 만들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한 존재로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수립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생각한다면, 이와 유사하게 번스타인 역시 새로운 교실 질서를 만들어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이 되도록 권고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렇게 본다면 교실 수준에서의 메리토크라시 윤리는 인정의 윤리와 충돌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교육 연구자들에게, 학교와 교실 수준에서 누가 인정받는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그들은 그러한 무시와 불인정에 대해서 지각하고 있는가? 인정 질서를 가진 교실과 그렇지 않은 교실의 특징은 무엇이고 이러한 차이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 등 많은 연구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_ 249~250쪽, “9장 ∙ 평등은 왜 인정에서 시작되는가?” 중에서
피, 땀, 뇌, 운이라는 네 가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 피, 혈연 간의 상속에서 나아가 출발선을 조정해 주는 ‘사회적 상속’으로
✔ 땀, 응분의 몫이라는 모호성을 넘어 ‘공동체가 합의’하여 분배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 뇌, 능력 일변도 인식에서 피와 운을 함께 고려하는 종합적 인식으로
✔ 운, 운을 중화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재산소유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오늘날 한국 사회는 거주 공간의 계급적 분화, 부와 지위의 대물림, 고교 계층화 등 다양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노력은 약하다. 이렇듯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관심이 낮은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 즉 메리토크라시가 ‘마음의 습관’으로서 사회구조와 분배 원리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불평등을 완화해 주는 각종 제도 등이 사후적인 처방이라면, 제도 이전에 사회 구성원 각자의 관점, 시선, 인식이야말로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출발점인 것이다. 이처럼 평등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각자의 태도와 인식을 돌아보게 한다. 이때 피, 땀, 뇌, 운은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다. 이 책의 3장에서 말하는 ‘뇌와 피의 공동 지배’와 같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밀접하게 얽혀 있는 요소들이다. 능력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을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에서 평등과 공정의 사고로 나아가려면 네 가지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이 다루는 두 개의 중심축
마이클의 영의 『메리토크라시의 발흥』과 존 롤스의 ‘재산소유 민주주의’
이 책이 피, 땀, 뇌, 운을 고려할 때, 주요하게 다루는 두 개의 축이 있다.
마이클 영의 책 『메리토크라시의 발흥』이 비판의 주요 텍스트라면, 다른 한편에는 존 롤스가 주창한 ‘재산소유 민주주의’가 있다. 영은 메리토크라시가 능력에 따라 응분의 몫을 분배하고, 능력이 낮은 사람들이 차별을 승복하게 만드는 윤리 위에서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때 문제는, 응분의 몫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능력주의는 이를 절대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또한 땀의 가치가 계급에 따라 서열화되어,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낮은 처지를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는 점도 메리토크라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반면에 롤스의 ‘재산소유 민주주의’는 단순히 불평등을 수당으로 보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일정 수준의 재산을 사전에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롤스가 그 누구보다도 피의 지배를 극복하고자 한 사람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산소유 민주주의가 시장의 효율성을 인정하되, 결국 민주주의라는 정치 또는 헌법이 더 우선적임을 분명히 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롤스에 따르면, 시장은 이윤을 추구하고 시장 주체들이 경쟁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출발선을 어떻게 조정할지, 규칙이 공정한지, 사회적 약자가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헌법에 달려 있다. 헌법이 있고 그다음에 시장이 있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평등 사회로 나아가는 인식의 핵심이다
다섯 가지 핵심 질문으로 평등과 공정에 대한 우리의 현재 인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교육’의 역할에 대하여
‘평등이 왜 더 효율적인가?’를 비롯하여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노동자를 존중하면 더 평등하게 분배할까?’ 등 2부에서 던지는 다섯 가지 핵심 질문은 불평등 인식의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미래 시민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 책의 분배정의 사고실험 결과를 보면, 학생들이 분배정의를 판단한 주된 근거는 땀과 뇌였다. 즉, 노력과 재능에 기반하여 차등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상속)와 운(우연)은 현실에서는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요소이지만, 학생들의 답변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학생들이 보다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확대해야 함을 시사한다. 타인의 처지에 대한 이해, 분배 결과에 미치는 여러 가지 원인(피와 운을 포함하여)에 대한 고려, 이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 공동체 속에서의 협력 등 종합적인 추론은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러한 종합적인 사고야말로 공동체 속에서의 협력과 상호 의존, 그리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노동에 대한 고마움과 존중이 높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의 방향성인 것이다.
우리는 늘 협력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타인의 노동과 수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출신이 어떠하든, 노동의 방식이 어떠하든, 타고난 재능이나 운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비롯해 우리의 인식 전반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