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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88937465017 |
|---|---|
| 쪽수 | 244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문고/전집
AI추천 이유
■ “약자에 대한 사랑에는 늘 살의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새벽 4시 3분, 갑자기 부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구급차가 와서 자고 있던 남자의 아내를 강제로 싣고 어디론가 가 버린다. 남자(‘나’)는 아내를 찾아내기 위해 수소문하여, 그녀가 폐쇄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된 거대한 병원에 강제 입원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하나의 마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한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춘 그곳에 몰래 숨어 들어가 아내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구급차에 실려 왔던 아내가 병원에 정식으로 입원했는지, 혹은 어딘가에 강제로 잡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남자는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당직 의사를 미행하다가 병원 측에 발각되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이 거대한 폐쇄병동은 이른바 ‘인간관계 신경증’을 앓다가 발기 부전이 된 부원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하반신을 말[馬]로 바꿔 버린 기이한 인물이다. ‘말 인간’인 부원장은 ‘나’에게 아내의 흔적을 찾으려면, ‘나’ 자신의 소리를 몰래 녹음한 도청 테이프를 녹취해야 한다는 임무를 맡긴다. 이 병원은 수많은 도청 장치들을 통해서 환자들이 성적 일탈을 위해 ‘밀회’하는 소리를 포르노 테이프로 녹음하여 이를 치료라는 목적으로 유통하고 있다.
엉겁결에 부원장이 떠맡긴 임무를 수행하게 된 남자는 집착이 강하고 괴이한 성격을 지닌 부원장의 여비서, 폭력적인 경비 주임 등과의 조우를 거친 끝에 뼈가 녹아내리는 골용해증이라는 기이한 병을 앓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에게서 묘한 연민을 느낀 그는 아내를 찾는 동시에 소녀를 병원에서 탈출시키고자 한다. 곧 이 병원의 가장 큰 이벤트인, 의사와 간호사에서부터 환자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전야제 연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연회에서는 이른바 오르가슴 콩쿠르가 개최되는데, 참가자 중엔 남자의 아내일지도 모를 ‘가면여자’가 유력한 우승 후보로 출전하게 된다. 과연 남자는 전야제에서 아내를 찾을 수 있을까.
■ 인간 실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초현실적인 세계로의 초대
작가인 아베 코보는 191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성장기를 만주에서 살았고 일본의 패망 이후 도쿄로 돌아온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도쿄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했지만, 그는 의학보다는 문학에 이끌려 의사의 길을 단념했다. 1947년 아방가르드와 초현실주의 사조에 매료된 그는 ‘세기의 모임’이라는 아방가르드 문학 동인을 결성했고,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열성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1951년 「벽─S. 카르마 씨의 범죄」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그는 “1950년대 일본 풍토 속에서 당연히 출현하지 않으면 안 될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1962년 『모래의 여자』를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급부상했다.
『모래의 여자』는 끝없이 솟아나는 모래 구덩이 속에 세워진 집이라는 허구적인 설정에, 사막과도 같은 만주에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과 치밀한 상상력을 더해 모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을 감각적으로 그려 냈다.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서스펜스와 철학적 깊이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져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는 독자들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일본 전후 문학계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그는 그 후로도 『밀회』, 『불타버린 지도』, 『상자 인간』, 『타인의 얼굴』 등 심도 있는 실존주의적 작품들을 발표하여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근미래적이고 초현실적이며 기괴한 스타일과 구조를 지닌 문제적 소설 『밀회』는 전후의 성장기에 들어선 현대 일본 사회의 이면 혹은 발밑의 지옥으로 향하는 일종의 ‘여행 안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베 코보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옥으로 가는 여행 안내서를 써 봤다. 특별한 장비는 필요치 않다. 다만 입구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잘 따라가야 한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그 길은 당신에게 익숙한 길과 똑같을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랑과 살의라는 두 개의 가지로 나뉘었던 것이 지옥에서는 하나의 구근으로 녹아 있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 기계적인 일상을 깨부수는 실험 정신,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근원적 질문
아베 코보는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일본의 패망을 직접 경험한 젊은 세대로, 본격적인 창작 궤도에 올라선 이후엔 경제 성장기에 들어선 일본 사회와 문단에 강렬한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그가 일본의 카프카로 불리는 이유는 현대적인 삶을 지탱하는 각종 장치들을 일순간 제거하고 낯설고 초현실적인 환경에 인물들을 몰아넣음으로써 그들을 무의식과 악몽, 원초적 욕망과 공포의 여행길에 오르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밀회』, 『모래의 여자』, 『불타버린 지도』, 『타인의 얼굴』은 모두 누군가(특히 주인공의 아내 혹은 가족)의 실종으로 시작되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추적의 과정에서 인물은 불가해한 세계로 발을 들인다.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이형(異形)의 인물들과 공간은 주인공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끝없는 미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초현실적인 세계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정확하고 깔끔한 결말이 아니다. 단순히 우화로도, 미스터리로도 정의할 수 없는 이 ‘실종’ 시리즈는 현대인에게서 시스템과 체제를 제거했을 때 본연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상상하게 하는 실험의 여정이다.
일본 본토가 아닌 중국 펑텐에서 일본의 패망을 접하며 살던 집을 빼앗기고 거리를 전전하며 무정부 상태를 경험한 아베 코보는 “국가나 향토에 귀속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그의 문학 속에서 겉으로 ‘정상적’이며 멀쩡해 보이는 안온한 일상을 소거하고, 인간관계가 본질적으로 불러오는 폭력과 지배, 무의식적 순응과 욕망의 구조를 소환한다. 이런 실험 정신이 이미 60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아베 코보의 문학이 당대에 불러왔을 충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같은 ‘실종→탐험→혼돈’의 도식은 이후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찾는 모험 3부작’ 같은 비교적 최근의 일본 문학에서도 그 영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에로티시즘과 강박, 지배와 감시로 이뤄진 초현실 세계로의 초대장이자 불친절한 여행 안내서인 『밀회』는 6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지금도 독자를 실존적 낯섦 속으로 던져 넣고 끝없이 헤매게 하는 매혹적인 아방가르드의 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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