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하나다. 나는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_ 「서문」 중에서
‘북한 고위급 외교 인사’의 탈북으로 주목받은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이일규 참사가 20년 이상 외교관으로서 직접 목격한 북한 정권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스토리부터 외교 비화, 그리고 긴박했던 ‘북한 탈출기’를 『내가 본 김정은―북한 외교관의 탈북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전격 공개했다.
그의 스토리는 일본에서 『내가 본 김정은 - 북한 망명 외교관의 수기』라는 이름으로 먼저 출간돼 1만 권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당 내용은 그가 최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직접 출연해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일규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나 부모의 성분 덕에 알제리와 쿠바에서 8년간 유학하고, 명문대인 평양외국어학원과 평양외국어대학을 나와 외무성에 입직했다. 입직 8년 만인 2008년 꿈에도 그리던 노동당에 입당했고, 3년 만인 2011년 9월 다음 목표인 ‘해외 파견’까지 이루었다. 그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대외직급 1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가족과 함께 쿠바에서 4년 4개월간 근무했다. 임기 동안 북한 선박 ‘청천강호’ 파나마 억류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김정은표창장’도 받았다.
2016년 2월 귀국해 외무성 1국(정책종합국) 과장으로 임명됐고, 몇 개월 뒤 아라국(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힘 없고 배경도 없어서 남들보다 뒤늦게 천천히 출발했지만, 불과 마흔넷의 나이에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젊은 부국장 겸 당 세포비서가 됐다. 부국장으로 일하면서 쿠바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김정은과 직접 만났으며,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조직비서, 리용호 외무상 등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익숙한 최고위급 인물들의 외국 방문도 직접 설계하고 동행했다.
2019년 3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겸 세포비서로 임명돼 다시 쿠바로 향했고, 4년 8개월간 근무하다 2023년 11월 탈북에 성공했다.
50년 이상을 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열심히 살아온 저자는 왜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북한 체제를 버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기다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택했을까?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저자는 그 기막힌 사연을 구체적으로 풀어놓고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야말로 긴박했던 탈북 상황을, 저자는 제1장 「분노가 불러온 탈출」에서 공개한다.
부정으로 가득해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과 고립만 더해가는 북한 사회에 분노를 느낀 저자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근무지였던 쿠바에서 치밀하게 탈출 계획을 세운 뒤, 한밤중에 가족들에게 통보하고 그 즉시 짐을 싸 탈출을 감행한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외교관증과 집 열쇠, 자금이 든 가방도 챙기지 못해 낭패를 겪기도 했다. 가까스로 출국 수속을 통과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남은 1시간은 저자에게 몇 년과도 같았다. 북한대사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잡으러 올까 봐 시계를 백 번은 확인했다.
저자는 그때 자기도 모르게 기도했는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어본 적 없었던 저자였지만, 생사의 위기 순간 의지할 데도 없고 기도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지만, 그저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쥔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 가족을 보호해주십시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일생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일규 가족은 제3국 공항에서 정치망명을 신청하고 대한민국 대사를 만났고,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탈출 48시간 만에 마침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제2장 「나의 삶」도 우리가 쉽게 경험하거나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년간의 알제리 생활을 마치고 1987년 귀국해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에 입학한 저자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한 한국 대학생 임수경 씨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난 경험과 당시 북한의 분위기도 생생히 들려준다. 아버지를 따라간 쿠바 유학 기간은 저자에게 가장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북한에 납치돼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여성과 만나는 경험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소환되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야 했고, 지방 추방 명령을 거부하던 아버지는 무려 7개월 동안 보위부 지하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외국어학원에 다시 복학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담았다.
제3장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에서는 1999년 외무성에 입직해 탈출 직전까지 이어진 외교관 생활을 회고한다. 저자가 북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안 배경도 가진 돈도 부족하다 보니 실력만큼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외무성은 그런 ‘텃세’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저자는 “북한 사회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노동에 대한 보수, 노력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국가가 인간의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주지 않으니 온갖 부정부패, 권력남용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북한 외교에서 ‘핵무기’ 이슈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도 저자의 경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들이 활동할 외교 무대는 계속 좁아졌으며, 이는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외교부는 2010년 초 북한 외무성이 오랫동안 제기했던 북한대사관 설립을 위한 대표단 파견에 동의한다는 각서를 보내왔지만, 막상 캐나다에 파견된 북한 대표단을 향해 천안함 사건을 강력 규탄하며 일절 협상이나 논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저자는 “무모한 도발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뿐”이라는 교훈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말한다.
저자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전 세계가 알 때도 정작 북한 주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사실도 들려준다. 그사이 쿠데타가 일어날까 염려해서다. 저자는 이 아이러니한 북한의 비밀 관념이 오히려 체제의 불안정성을 방증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아버지의 ‘혁명화’ 경력으로 외무성 입직 13년 만인 2011년에야 주쿠바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진정한 외교관이 됐다. 쿠바대사관에서는 처음 카리브공동체 회원국 14개국 포함 중남미 지역 17개국과의 관계를 주 업무로 했지만, 외교관들과 직원들이 ‘대사파’와 ‘당비서파’로 갈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해 몸싸움까지 벌이는 일도 경험했다. 북한 특유의 감시 체계 때문에 대사에게 전권이 주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저자가 한국 미디어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북한 외교관들은 허울만 좋을 뿐, ‘넥타이 맨 꽃제비(거지)’에 불과한 현실도 이 책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외교관이면 누구나 불법 장사에 연루돼 있고, 충성자금‧지원자금‧기금헌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북한 정권에 수탈당한다. 저자는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강요받은 ‘충성심’을 지키며 정권 유지를 위해 지혜와 정열을 바치는 그들이 참 안쓰럽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으니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북한과 쿠바 관계에 냉각기를 가져온 중대 사건, 즉 쿠바에서 설탕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경유해 북한으로 가던 ‘청천강호’가 파나마 당국에 억류됐던 사건의 해결을 주도한 과정도 상세히 기록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표창장’까지 받았다.
아울러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된 장성택 사건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당시 쿠바 대사는 장성택의 매제인 전영진이었는데, 그는 저자와 함께 긴급 본국 소환 지시를 받았다. 결국 전영진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을 전하면서, 저자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아무 죄도 없는 일가친척과 지인들까지 무참히 희생되는 북한 특유의 연좌제가 없어지고, 그 땅에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이 필 날을 학수고대한다”는 바람을 적었다.
저자의 북한 외무성 ‘갓생 직장생활’부터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긴박했던 탈북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제4장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에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북한 최고위급의 말과 생각이 담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이 장에는 김정은의 신뢰를 받은 소심한 인물 최룡해, 노련한 외교관으로서 외무상에까지 임명된 리용호 등과 함께 저자가 쿠바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준비하며 가까이에서 만난 김정은과의 일화도 담겨 있다.
2018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에 쿠바 고위급 대표단이 초청되었고, 저자는 쿠바 부통령 대표단 지휘를 맡았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돌발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 두 달 뒤 쿠바 미겔 디아스 카넬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준비하며 김정은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과시하던 쿠바는 2024년, 결국 대한민국과 수교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북한이 아무리 ‘혁명적 원칙과 동지적 의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우정으로 쿠바의 발목을 잡으려 안간힘을 써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그것이 ‘역사의 대세’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4장에는 이 밖에도 2018년 북한 체제가 노래방을 일제히 폐쇄한 사건과 그 배경, 장성택 이후 날로 위세를 더해가던 황병서가 보고 시 단어 2~3개를 잘못 썼다가 청소부로 좌천된 사건, 량강도당 책임비서 리상원의 허위자백 사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김정은의 전화를 받지 못해 외무성이 당 국제부에 밀려버린 일과 공개 처형으로 사라진 외무성 간부들, 김정은 통역사들의 불우한 운명, 외무성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탁구 경기 등 다양한 북한 내부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북한 내 소문도 소개하고 있다. 바로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다.
사실인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김정은은 일반 사병으로 배치되었는데, 1년 6개월 복무 중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분대장은 그의 ‘특별지시’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추천받은 반면, 그를 괴롭히던 사관장은 후일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심금을 울리는 혁명일화’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밖에도 김정은과 관련된 일화는 많지만, 그 모든 일화들이 그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애민 지도자’로서의 우상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선전 조작인지는 알 수 없다”며 “분명한 것은,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은 단순한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적 면모와 애민정신을 세뇌하는 ‘혁명일화’로 기록됐다. 이것이 북한식 우상화의 뒤에 숨은 현실”이라며 “김씨 일가의 ‘혁명일화’는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위대한 수령’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고 적었다.
끝으로 “이제라도 한국에 정착해 남은 인생을 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아직도 북한 땅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나의 동료들과 친척들, 2,500만 북한 동포를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라고 자부한다”며, “죄라면 그저 북한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불쌍한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하루빨리 인간의 존엄과 자유, 민주주의, 유족(有足)하고 문명한 생활이 보장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을 앞당기는 길에 내 남은 생을 바치고 싶다”는 희망을 남기고 있다.
“내가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하나다. 나는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_ 「서문」 중에서
‘북한 고위급 외교 인사’의 탈북으로 주목받은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이일규 참사가 20년 이상 외교관으로서 직접 목격한 북한 정권의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스토리부터 외교 비화, 그리고 긴박했던 ‘북한 탈출기’를 『내가 본 김정은―북한 외교관의 탈북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전격 공개했다.
그의 스토리는 일본에서 『내가 본 김정은 - 북한 망명 외교관의 수기』라는 이름으로 먼저 출간돼 1만 권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당 내용은 그가 최근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직접 출연해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일규는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나 부모의 성분 덕에 알제리와 쿠바에서 8년간 유학하고, 명문대인 평양외국어학원과 평양외국어대학을 나와 외무성에 입직했다. 입직 8년 만인 2008년 꿈에도 그리던 노동당에 입당했고, 3년 만인 2011년 9월 다음 목표인 ‘해외 파견’까지 이루었다. 그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대외직급 1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가족과 함께 쿠바에서 4년 4개월간 근무했다. 임기 동안 북한 선박 ‘청천강호’ 파나마 억류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김정은표창장’도 받았다.
2016년 2월 귀국해 외무성 1국(정책종합국) 과장으로 임명됐고, 몇 개월 뒤 아라국(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 부국장으로 승진했다. 힘 없고 배경도 없어서 남들보다 뒤늦게 천천히 출발했지만, 불과 마흔넷의 나이에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젊은 부국장 겸 당 세포비서가 됐다. 부국장으로 일하면서 쿠바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김정은과 직접 만났으며,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노동당 조직비서, 리용호 외무상 등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익숙한 최고위급 인물들의 외국 방문도 직접 설계하고 동행했다.
2019년 3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치참사 겸 세포비서로 임명돼 다시 쿠바로 향했고, 4년 8개월간 근무하다 2023년 11월 탈북에 성공했다.
50년 이상을 체제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열심히 살아온 저자는 왜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북한 체제를 버리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기다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택했을까? 고위층의 삶도, 인생 막바지의 인생도 모두 경험해본 저자는 그 기막힌 사연을 구체적으로 풀어놓고 북한 주민들의 삶, 특히 고위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야말로 긴박했던 탈북 상황을, 저자는 제1장 「분노가 불러온 탈출」에서 공개한다.
부정으로 가득해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과 고립만 더해가는 북한 사회에 분노를 느낀 저자는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근무지였던 쿠바에서 치밀하게 탈출 계획을 세운 뒤, 한밤중에 가족들에게 통보하고 그 즉시 짐을 싸 탈출을 감행한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외교관증과 집 열쇠, 자금이 든 가방도 챙기지 못해 낭패를 겪기도 했다. 가까스로 출국 수속을 통과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남은 1시간은 저자에게 몇 년과도 같았다. 북한대사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잡으러 올까 봐 시계를 백 번은 확인했다.
저자는 그때 자기도 모르게 기도했는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어본 적 없었던 저자였지만, 생사의 위기 순간 의지할 데도 없고 기도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지만, 그저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쥔 채 같은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 가족을 보호해주십시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일생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일규 가족은 제3국 공항에서 정치망명을 신청하고 대한민국 대사를 만났고,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탈출 48시간 만에 마침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제2장 「나의 삶」도 우리가 쉽게 경험하거나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년간의 알제리 생활을 마치고 1987년 귀국해 평양외국어대 프랑스어과에 입학한 저자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한 한국 대학생 임수경 씨를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난 경험과 당시 북한의 분위기도 생생히 들려준다. 아버지를 따라간 쿠바 유학 기간은 저자에게 가장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북한에 납치돼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일본인 여성과 만나는 경험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소환되면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와야 했고, 지방 추방 명령을 거부하던 아버지는 무려 7개월 동안 보위부 지하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외국어학원에 다시 복학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담았다.
제3장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에서는 1999년 외무성에 입직해 탈출 직전까지 이어진 외교관 생활을 회고한다. 저자가 북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안 배경도 가진 돈도 부족하다 보니 실력만큼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자리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외무성은 그런 ‘텃세’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저자는 “북한 사회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노동에 대한 보수, 노력에 대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국가가 인간의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주지 않으니 온갖 부정부패, 권력남용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북한 외교에서 ‘핵무기’ 이슈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지도 저자의 경험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들이 활동할 외교 무대는 계속 좁아졌으며, 이는 천안함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 외교부는 2010년 초 북한 외무성이 오랫동안 제기했던 북한대사관 설립을 위한 대표단 파견에 동의한다는 각서를 보내왔지만, 막상 캐나다에 파견된 북한 대표단을 향해 천안함 사건을 강력 규탄하며 일절 협상이나 논의를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저자는 “무모한 도발은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뿐”이라는 교훈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말한다.
저자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전 세계가 알 때도 정작 북한 주민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사실도 들려준다. 그사이 쿠데타가 일어날까 염려해서다. 저자는 이 아이러니한 북한의 비밀 관념이 오히려 체제의 불안정성을 방증한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아버지의 ‘혁명화’ 경력으로 외무성 입직 13년 만인 2011년에야 주쿠바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임명돼 진정한 외교관이 됐다. 쿠바대사관에서는 처음 카리브공동체 회원국 14개국 포함 중남미 지역 17개국과의 관계를 주 업무로 했지만, 외교관들과 직원들이 ‘대사파’와 ‘당비서파’로 갈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해 몸싸움까지 벌이는 일도 경험했다. 북한 특유의 감시 체계 때문에 대사에게 전권이 주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저자가 한국 미디어에서 여러 차례 밝혔듯 북한 외교관들은 허울만 좋을 뿐, ‘넥타이 맨 꽃제비(거지)’에 불과한 현실도 이 책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외교관이면 누구나 불법 장사에 연루돼 있고, 충성자금‧지원자금‧기금헌금 등 갖가지 명목으로 북한 정권에 수탈당한다. 저자는 “불우한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강요받은 ‘충성심’을 지키며 정권 유지를 위해 지혜와 정열을 바치는 그들이 참 안쓰럽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으니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북한과 쿠바 관계에 냉각기를 가져온 중대 사건, 즉 쿠바에서 설탕을 싣고 파나마운하를 경유해 북한으로 가던 ‘청천강호’가 파나마 당국에 억류됐던 사건의 해결을 주도한 과정도 상세히 기록했다. 저자는 이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표창장’까지 받았다.
아울러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부분적으로 알게 된 장성택 사건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당시 쿠바 대사는 장성택의 매제인 전영진이었는데, 그는 저자와 함께 긴급 본국 소환 지시를 받았다. 결국 전영진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을 전하면서, 저자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아무 죄도 없는 일가친척과 지인들까지 무참히 희생되는 북한 특유의 연좌제가 없어지고, 그 땅에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꽃이 필 날을 학수고대한다”는 바람을 적었다.
저자의 북한 외무성 ‘갓생 직장생활’부터 북한 외교가의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긴박했던 탈북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제4장 「내가 만난 김정은, 김정은의 사람들」에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북한 최고위급의 말과 생각이 담긴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이 장에는 김정은의 신뢰를 받은 소심한 인물 최룡해, 노련한 외교관으로서 외무상에까지 임명된 리용호 등과 함께 저자가 쿠바 대표단의 평양 방문을 준비하며 가까이에서 만난 김정은과의 일화도 담겨 있다.
2018년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행사에 쿠바 고위급 대표단이 초청되었고, 저자는 쿠바 부통령 대표단 지휘를 맡았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돌발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 두 달 뒤 쿠바 미겔 디아스 카넬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준비하며 김정은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북한과의 혈맹 관계를 과시하던 쿠바는 2024년, 결국 대한민국과 수교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북한이 아무리 ‘혁명적 원칙과 동지적 의리’라는 말을 반복하며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우정으로 쿠바의 발목을 잡으려 안간힘을 써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허물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그것이 ‘역사의 대세’가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4장에는 이 밖에도 2018년 북한 체제가 노래방을 일제히 폐쇄한 사건과 그 배경, 장성택 이후 날로 위세를 더해가던 황병서가 보고 시 단어 2~3개를 잘못 썼다가 청소부로 좌천된 사건, 량강도당 책임비서 리상원의 허위자백 사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김정은의 전화를 받지 못해 외무성이 당 국제부에 밀려버린 일과 공개 처형으로 사라진 외무성 간부들, 김정은 통역사들의 불우한 운명, 외무성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탁구 경기 등 다양한 북한 내부 이야기와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한편,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북한 내 소문도 소개하고 있다. 바로 ‘김정은 우상화’를 낳은 혁명일화다.
사실인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김정은은 일반 사병으로 배치되었는데, 1년 6개월 복무 중 그를 따뜻하게 대해준 분대장은 그의 ‘특별지시’로 김일성종합대학에 추천받은 반면, 그를 괴롭히던 사관장은 후일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심금을 울리는 혁명일화’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밖에도 김정은과 관련된 일화는 많지만, 그 모든 일화들이 그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애민 지도자’로서의 우상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선전 조작인지는 알 수 없다”며 “분명한 것은, 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은 단순한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적 면모와 애민정신을 세뇌하는 ‘혁명일화’로 기록됐다. 이것이 북한식 우상화의 뒤에 숨은 현실”이라며 “김씨 일가의 ‘혁명일화’는 대부분 그렇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위대한 수령’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고 적었다.
끝으로 “이제라도 한국에 정착해 남은 인생을 천국과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만, 아직도 북한 땅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나의 동료들과 친척들, 2,500만 북한 동포를 생각하면 나는 행운아라고 자부한다”며, “죄라면 그저 북한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불쌍한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하루빨리 인간의 존엄과 자유, 민주주의, 유족(有足)하고 문명한 생활이 보장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그날을 앞당기는 길에 내 남은 생을 바치고 싶다”는 희망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