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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자라는 마음의 정원사(청어산문선14)

  • 송병옥
  • 청어
  • 2026년 0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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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상품상세정보
ISBNISBN-13 : 9791168555037
쪽수152쪽
크기A5(148mm X 210mm, 국판)
제품구성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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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작가의 말

 

 

상쾌한 아침 공기를 흠흠거리며 꽃들과 인사를 나눈다. 어제저녁만 해도, 통통하게 물오른 입술을 내밀고 있던 으아리꽃이 비밀스러운 말을 퍼뜨린다. 꽃과 나, 우리는 마주 보고 환히 웃는다. 하루의 첫 문을 열고 출근 준비로 한창 바빴을 이 시간이, 지금은 내 곁에서 늘어지게 게으름을 부린다. 처음에는 낯선 조용함 속에 놓인 여유가 어찌나 쓸쓸하게 다가오던지, 긴장감이나 소속감이 떠난 자리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빈 시간이 차츰 편해질 무렵 잔디 인형을 곁에 두게 되었다. 손바닥만 한 인형에 물을 주며 조심스레 눈을 맞추었다. 매일 들여다보고 정성을 쏟은 만큼, 녀석은 정직하게 초록빛 싹을 밀어 올렸다. 그 작고 순수한 존재를 보며 알았다. 내 안에도 소박한 나만의 뜰을 가꾸는 정원사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 정원사의 손길을 따라 마음을 낮추니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그제야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열망들이 비로소 싹을 틔웠다. 작은 것을 가만히 보듬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그것은 잔디 인형을 비롯한 주변의 사물이 내게 가르쳐 준 삶에 새로운 눈이었다.

그 눈으로 가만히 돌아본다. 지나온 길목마다 깃들어 있는 수많은 인연, 숨 가빴던 나날들. 그 시간들이 내면에서 고요히 발효되어, 이제야 내 삶의 고유한 무늬를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모나고 울퉁불퉁하던 마음도 거친 계절을 구르는 사이 스스로 모서리를 다듬어 유순해졌다. 지금처럼 오롯이 마음을 매만지는 시간들은 나를 더 세심히 공글려 평온하고 깊은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내 안에 사는 정원사는 날마다 자라고 있으니까.

9년 만에 묶는 이 글들은, 내 안에 새겨진 시간의 나이테이자 고요해진 마음의 문양들이다.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은 나이 드는 것이 삶의 축소가 아니라, 안으로 삶을 겹겹이 채워가는 하나의 과정임을 말해준다. 느림도, 늦음도, 쉼도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삶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형태를 바꾸며 지속되기에,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란다.

접어두었던 소망들을 하나씩 펼쳐보며, 온기 품은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일. 그 담담한 걸음이 나와 주변을 향한 가장 따뜻한 위로임을 깨닫는다.

언제나 기댈 언덕이 되어 주는 사랑하는 가족과 고마운 인연들, 그리고 날마다 나를 자라게 하는 내 뜰의 작은 생명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2026년 여름

송병옥

 

목차

[목 차]

작가의 말 4

 

1

삶이란, 형태를 바꾸며 지속되는 성장이라던가

 

초록 머리가 건네는 안부 12

눈부신 페이지, 유월 15

아랫입술 밑에 초승달 17

코끝을 스치는 그리움 22

얻은 것 너머의 여백 27

앵초의 영토 31

비워낸 품에는 빛바랜 꿈을 34

오월은 초록을 향해 달리고 38

코바늘 걸음을 따라오는 평온 41

기꺼이, 맏딸 44

 

 

2

외로운 섬에서 보내온 가장 환하고 찡한 선물

 

꽃들의 말 50

지지 않는 장미꽃 53

마시따 부인의 다이어트 성공기 56

마음의 속도위반 60

몸의 안테나가 켜진 순간 64

지는 법은 낯설어 68

조용하던 작은 섬 71

무엇이 먼저였나 75

우리 동네 이야기꾼 78

부자유의 맛 82

 

 

3

보이는 대로 닿는 대로 아깝고 아쉽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진통제 86

청춘의 환호에 고개를 끄덕 89

뿌리가 숨겨둔 힘 92

느끼는 만큼이 내 것이지 94

질긴 인연, 습관 97

공생자들과 나누는 양식 100

강아지풀이 던진 물음표 104

적당함을 배운 수업료 107

진정한 반려는 110

조용한 서명 114

 

 

4

중요한 것은 식지 않는 이상과 열정이라고

 

오이 한 이랑, 백일홍 한 이랑 120

또 한 사람의 우리 편 123

몸에 저축된 시간 126

가장 말끔해야 할 정리 정돈 129

그쯤은 다 괜찮아 133

아무튼 밥은 해야지 136

이제라도 140

정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며 143

마주 선 거울의 말 146

그해 봄날, 친구들에게 149



[본 문]

**초록 머리가 건네는 안부

 

인형의 머리에 푸른 머리카락이 돋았다.

안녕?”

책상 위 물컵에 올라앉은 잔디 인형이 인사를 건넨다. 갈색 헝겊 뭉치 같은 인형 정수리에서 파릇한 싹이 배죽배죽 돋아나다니, 눈이 번쩍 뜨인다.

발목 스타킹 앞부분에 넣었던 잔디 씨가 톱밥을 딛고 며칠 만에 존재를 드러냈다. 씨가 든 쪽을 머리로 하여 털실로 눈, , 입 모양을 만들어 붙였을 때만 해도 인형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어설픈 모양새였다.

그새 잔디 씨가 내민 연둣빛 촉들이 모여서 인형의 머리칼이 되었다. 푸른 머리 인형이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민머리 때와 사뭇 다른 생기발랄한 모습에 마음이 다가간다.

창문으로 스며든 빛과 물 한 컵만으로도 살아 숨 쉬는 인형의 기운이, 내 마음에 선명한 빛깔로 머문다. 변화라고는 머리카락이 난 것뿐인데, 인형의 얼굴엔 활기가 돌고 표정이 살아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 아프다고 말할 것 같다.

, , 그래, 안녕?”

알아듣는다고 여기며 나는 반려견에게 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이상하게도 빼곡하게 돋아난 연둣빛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인형이 내게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의 다정한 속삭임으로 들려온다. 초록빛 숨결로 내게 말을 건네는 순간, 잔디 인형은 이미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으로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나서 자란다는 그 사소한 변화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태동을 본다. 인간이 잘 자라는 존재에 본능적으로 애착을 갖는다는 것은, 이처럼 자라나는 모든 생명의 신비에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전부터 잔디 인형이 심리와 정서 등 치유 측면에 효과가 있다는 점에 관심이 있었다. 이번에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잔디 인형 만들기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잔디 인형에 물을 주며 잔디가 자라는 모습에 관심을 두다 보면 심리적 안정과 작은 성취감이 생긴다고 한다. 자신도 다시 자랄 수 있다는 의지를 싹트게 하여,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변화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잔디 인형이 또렷이 더 가까이 다가온 이유도 그 때문인가. 요즘 들어 마음이 오목하게 가라앉는 날이 잦았다. 마치 내 삶의 부피 자체가 조금씩 쪼그라들어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초록 머리를 가만히 응시한다. 내 마음 한구석에도 작은 씨앗들이 들어있었나. 긴가민가한 꼼틀거림이 느껴진다.

삶이란, 형태를 바꾸며 지속되는 성장이라고 했던가. 치유농업에 대해 배우며, 미미하게나마 내 마음이 반응하는 작은 움직임을 마주한다. 그곳에는 날마다 자라는 마음의 정원사가 살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치유라는 이 가느다란 느낌이, 치유농업을 펼쳐나가는 일에 든든한 마중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잔디 인형이 밀어 올리는 푸른 안부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줄어든다는 게 아니야, 삶은 매일 자라고 있으니까.”

비록 느릿할지라도 지금 내 어딘가에서는, 무언가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무성하게 자라던 시절을 한참 지나온 것 같은데, 나만의 시간으로 계속 자랄 부분이 있다니. 뿌리가 점점 깊어진다는 말일까? 어쩌면 오랜 시간 다져온 내면에서 마침내 나만의 꽃을 피워낸다는 뜻인가?

느림도, 늦음도, 때로는 멈춤조차도 저마다의 삶이 자라나는 하나의 방식이라니.

잔디 인형의 말들이 내 마음으로 파릇파릇하게 스며든다.

 

저자 소개
저자 : 송병옥

경기 김포 출생

2002년 《수필춘추》로 수필 등단

수필집 『다섯 번째 계절에 피는 꽃』

수필집 『날마다 자라는 마음의 정원사』 출간

2019년 《시와 소금》 신인상 시 등단

시집 『보조개 사과』 『산이 자라다』 출간

 

2024년 그림책 『눈으로 먹는 밥』 출간

 

인천시 근로자종합예술제 수필 부문 대상 및 동 예술제 시 금상 수상

2019년 인천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

2026년 인천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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