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나훔 목차
1. 보복하고 위로하시는 하나님(1:1-15)
2. 니느웨를 심판하시는 하나님(2:1-13)
3.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3:1-19)
하박국 목차
1부. 하나님과 하박국의 대화(1:1-2:20)
1-1.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 불의(1:1-4)
1-2. 하나님의 첫 번째 대답, 갈대아인의 침입(1:5-11)
2-1.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 하나님의 불공평(1:12-2:1)
2-2.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 정의의 실현(2:2-20)
2부. 하박국의 기도(3:1-19)
스바냐 목차
1. 여호와의 날의 심판(1:1-18)
2. 열방의 심판(2:1-3:8)
3. 남은 자의 회복과 기쁨(3:9-20)
학개 목차
1. 첫째 메시지, 성전 건축으로의 부름과 응답(1:1-15)
2. 둘째 메시지, 스룹바벨 성전의 영광(2:1-9)
3. 셋째 메시지, 부정에서 정함으로의 변화(2:10-19)
4. 넷째 메시지, 영광의 회복(2:20-23)
스가랴 목차
1부. 여호와께 돌아오라(1:1-6)
2부. 하룻밤의 8가지 환상(1:7-6:15)
1. 첫째 환상, 화석류나무에 선 사람(1:7-17)
2. 둘째 환상, 네 뿔과 대장장이(1:18-21)
3. 셋째 환상, 측량줄을 잡은 사람(2:1-13)
4. 넷째 환상, 대제사장 옷 세탁(3:1-10)
5. 다섯째 환상, 순금 등잔대와 두 올리브나무(4:1-14)
6. 여섯째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5:1-4)
7. 일곱째 환상, 에바 안의 여인(5:5-11)
8. 여덟째 환상, 네 병거(6:1-8)
9. 여호수아 대관식(6:9-15)
3부. 금식과 참된 신앙(7:1-8:23)
1. 금식이 아니라 정의와 긍휼(7:1-14)
2. 놀라운 축복(8:1-23)
4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적 메시지(9:1-14:21)
1. 임재, 여호와의 돌아오심(9:1-17)
2. 보호, 여호와의 돌보심(10:1-11:3)
3. 참 목자와 거짓 목자(11:4-17)
4. 예루살렘의 강건함(12:1-14)
5. 죄 씻음과 환난이 있는 신앙의 길(13:1-9)
6. 주님의 통치, 초림과 재림(14:1-21)
말라기 목차
1부. 하나님을 경외할 것에 대한 명령(1:1-2:9)
1.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1:1-5)
2.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장(1:6-14)
3.언약을 바르게 가르치라는 경고(2:1-9)
2부. 유다의 언약 파괴에 대한 경고(2:10-3:6)
1.결혼 언약 파괴(2:10-16)
2.언약을 깨뜨리는 불의에 대한 심판(2:17-3:6)
3부. 유다를 향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명령(3:7-4:6)
1.십일조 언약을 지킴으로(3:7-12)
2.완악한 말에 대한 심판의 경고(3:13-4:3)
3.언약 기억 및 엘리야 약속(4:4-6)
[본 문]
나훔
나훔, 하박국, 스바냐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 남쪽의 유다만 있는 상태를 배경으로 한다. 나훔서는 요나서와 함께 읽으면 좋다. 두 선지자는 모두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요나 시대에는 니느웨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긍휼로 심판을 면하였고, 나훔 시대에는 더 이상 회개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진다. 그 심판이 이스라엘에는 위로가 된다.
나훔서가 쓰인 배경은 주전650~620년경(므낫세~요시야)으로, 요나가 니느웨 성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던 주전780년경(여로보암 2세)으로부터130년 이상 지난 시점이다. 두 선지자의 예언 사이에는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들어가 있다.
1:1 니느웨에 대한 경고. 나훔서가 쓰이는 배경은 주전650~620년경으로, 요나가 니느웨 성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던 주전780년경으로부터130년 이상 지난 시점이다. 나훔 또한 요나처럼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엘고스 사람 나훔.'엘고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갈릴리 지역의 한 마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나훔 선지자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북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랐고, 북이스라엘 지역과 유다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박국
하박국서의 배경은 유다의 여호야김 시대(주전 609-598)로서 그는 악한 왕이었고 타락하였다. 하박국은, 앗수르는 쇠퇴하고 바벨론이 급속히 부상하던 국제 정세 속에서 유다 백성들이 정신 차리지 못한 채 수많은 죄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다. 포악함이 만연하였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사적인 폭력이 함께 난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박국서는 짧은 성경이지만 유명한 구절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아마 다음의 구절일 것이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이 구절을 유대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한 구절로 요약(캡슐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오경에는613개의 계명이 나온다.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계명이365개, 그리고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이248개, 합613개의 계명이다. 그 모든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신약에3번 인용되고 개신교(프로테스탄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이기도 하다. 루터는 면죄부를 파는 당시의 교회 기득권 세력에 반발하며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고 주장하였다.
이 구절을 고백주의처럼 해석하면 안 된다. 믿음을 고백하는 입술이 아니라 믿음을 고백하는 삶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믿음을 고백하는 삶은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이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이다. ‘포용하다’도 된다. 실망스러운 세상 때문에 신앙인들이 매우 낙심할 때가 많다. 정직한 신앙인에게 악이 가득한 세상은 상처가 된다. 악인이 더 성공하고 있는 모습은 절망스럽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불평하는 마음조차도 품어 주셨고, 하박국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품게 되었다.
세상이 옳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 세상의 죄 때문에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세상이 악하여도 우리는 여전히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2:4 보라. ‘보라(히. 힌네)’는 단어로 이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메시지의 내용으로서 이 구절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대조되어 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이것은 악인에 대한 말씀이다. 악인은 교만하다. 교만하여 자기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멋대로 산다.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속마음이 옳지 않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악을 행하면서 살고 있다. 악의 구체적 내용은 5절에 나온다. ‘술을 즐기고, 교만하며, 욕심을 넓히고, 만족을 모르며, 정복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면서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
악인의 삶은 의인을 아프게 한다. 그들의 성공은 더욱더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의인은 악인의 길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의인은 악인의 길이 아니라 의인의 길을 가야 한다. 그가 걸어야 할 길을 보는 것이 당연하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결국 악인은 악으로 망하고, 의인은 의(믿음)로 생명을 얻는다. 그러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이 말씀은 매우 유명하고 중요한 구절이다. 그런데 많이 오해한다.
이 구절은 의인이 1.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서 2.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이 둘은 하나다. 어느 하나가 없다면 나머지 하나도 없다. 여기에서 믿음을 ‘충실함’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하박국은 분명히 이 구절을 ‘모든 말씀에 충실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이 구절을 말씀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교리로 구원을 이루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말씀에 순종’을 강조하는 구절이 오히려 말씀을 부정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야(순종) 믿음으로 살게(구원) 될 것이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어찌 의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아무리 악이 승리하여도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지금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힘들고 실패인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결국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승리할 것이다. 이 땅에서 굳건하게 붙잡은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이다. 악한 사람이 붙잡고 있는 재산이나 거짓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산 그 믿음만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은 비록 믿음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도 믿음의 위대함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귀한지를 기억하며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면 믿음이 빛을 발휘하는 그날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오늘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스바냐
스바냐의 이름은‘하나님께서 숨기신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의미다. ‘열국과 유다의 심판 가운데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보호하신다’는 스바냐의 주제를 반영한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의 개혁의 시작인 주전628년이나 율법책이 발견된 주전622년경을 배경으로 한다. 요시야라는 위대한 왕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 요소가 많았지만, 백성들의 삶에는 우상숭배와 불의가 깊이 남아 있었다. 결국20년 후에 바벨론에 짓밟히고, 40년 후에 완전히 멸망한다. 이 시대는 왕은 개혁을 말하였지만 백성들이 여전히 신앙적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를 앞두고 있다. 유다에 닥칠 20년, 40년은 길기도 하고 짧을 수도 있다.
스바냐서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은 3장 17절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여호와의 날’이라는 환난의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백성과 함께하며 사랑하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환난의 날에 신실한 자도 환난을 당하지만, 말씀을 지키는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기쁨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말한다. 그 기쁨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3:17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보통 이 구절만 떼어 놓고 보기 때문에 그 의미를 많이 놓치는 구절이기도 하다. 이 구절의 의미를 위해서는 이 배경을 잘 알아야 한다. 형벌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 유다에 임할 형벌은 아직 수십 년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형벌을 당할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유다를 향한 형벌은 버림이 아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형벌이 죄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그 형벌은 오히려 하나님의 자리를 만든다. 그 형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욱더 함께 하시게 될 것이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직역하면 '용사로서 구원하신다'이다. 하나님은 기필코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후에 당하는 환난은 구원의 과정이지 패배가 아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직역하면'그가 너를 기쁨으로 기뻐한다'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매우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유다가 죄 때문에 멸망하는 그 순간에도 그 가운데 있는 남은자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그들이 아파하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그들의 기도를 기쁨으로 받아주신다. 멸망을 멈추지 않으실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심이 아니다. 단지 예루살렘이 멸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자를 향해서는 아주 기뻐하신다. 크게 기뻐하신다. 그들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신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뒷구절의 소리지르며 기뻐하는 모습과의 상관성 때문에 이것에 대한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이 서로 매우 반가울 때 말문이 막히고, 놀라움과 기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3번째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첫 구절만 말해도 기쁨을 강조한 구절인데 이렇게 세 번째 강조하며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진짜 기뻐하고 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늘 기뻐하신다. 그 백성의 기도와 찬양을 늘 기뻐하며 받으신다.
머리말
성경, 이해하며 읽기 시리즈를 시작하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면 풍성한 삶이 된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인격적인(지정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
그의 생각과 마음을 만나고 힘까지 공유하게 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지)과 마음(정)과 힘(의)이 담겨 있다.
성경을 잘 읽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주 실제적으로.
좋은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면 행복하듯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하다.
하나님을 만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실제적 방법이다.
마음과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대화가 무의미하듯이
성경을 이해하지 않고 읽으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이해하며 읽기를 소망하며
매우 쉽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주석이 되기를 소원하며
큰 글씨로 쉬운 주석 시리즈를 쓰고 있다.
이 주석이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나는 만남의 장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 영광되기를 기도한다.
2026. 1. 11
하늘기쁨교회 목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