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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24539118 |
|---|---|
| 쪽수 | 376쪽 |
| 크기 | A5(148mm X 210mm, 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사회학
AI추천 이유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계, 그 바깥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세계를 눈앞에서 본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지구 반대편의 영화를, 번역 자막은 낯선 나라의 뉴스를, SNS는 실시간으로 타인의 일상을 실어 나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좁은 세계에 갇혀 있기도 하다. 알고리즘은 내가 이미 동의하는 의견, 내가 이미 좋아하는 화면만 골라 보여주고, 그렇게 편식된 정보는 확신으로 굳어진다. 더 많이 볼수록 더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같은 시야를 반복해서 확인할 뿐인 경우가 많다. 신간 『오만한 편견』은 바로 이 착각, '많이 보고 이미 익숙하니 잘 안다'는 착각의 구조를 정조준한다.
저자는 문화심리학자이면서, 동시에 각종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대중과 호흡해온 이야기꾼이다. 그 이력이 책 전반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저자는 흔히 편견이 무지에서 온다고 여겨지는 통념부터 뒤집는다.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설프게 아는 상태에서 더 알려 하지 않는 태도라는 것이다. 조금 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이내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그 확신은 다시 ‘우리가 더 낫다’는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책은 서장에서부터 이 지점을 짚는다. 문화란 애초에 줄을 세울 수 없는 것인데도, 우리는 은연중에 어느 문화는 더 앞서 있고 어느 문화는 뒤처져 있다는 식의 위계를 그려왔다는 것이다.
낯선 것에 '미개함'이라는 딱지를 붙여온 역사
이어 1장에서는 이 위계 짓기가 낳은 충돌의 현장들을 펼쳐 보여준다. 특정 문화권의 경전을 오독해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어온 관행이 있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들이 공유했던 ‘자국이 가장 우월하다’는 믿음도 있다. 식인 풍습이나 인신공양처럼 낯설게만 보이는 관습 뒤에도 기근과 애도와 권력의 논리가 숨어 있었음을, 저자는 하나하나 살펴본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해온 관습들 대부분이 실은 저마다의 합리적 맥락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논의는 과거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벌어지는 문화 원조 논쟁, 즉 어느 나라의 것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가를 둘러싼 다툼까지 같은 틀로 짚어내면서, 저자는 오만함이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1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낯선 관습을 미개함의 증거로 읽어온 우리의 습관이야말로, 정작 가장 오래되고 완고한 편견이었다는 것이다.
콘텐츠 속에 숨은 편견의 지도
2장에서 저자의 시선은 신화나 영화 등 콘텐츠로 옮겨간다. 삼국지와 무협지는 어떻게 중국인들의 역사적 열등감을 상상 속에서 되갚는 서사로 기능해왔을까? 〈터미네이터〉와 〈아바타〉 같은 할리우드 영화 곳곳에는 또 어떤 문화적 상징과 죄의식이 스며 있을까? 국가의 위상이 아무리 높아져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시선의 습관까지, 저자는 이야기 속 세계를 경유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편견의 지도를 그려 보인다. ‘도깨비’가 해외에서 ‘고블린’으로 번역되는 등 사소한 언어의 오류에서도 문화적 오해가 손쉽게 발생한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이 전혀 다른 존재로 상상되어온 이유, 최근 유행어들이 시대의 정서를 어떻게 반영해왔는지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콘텐츠가 그저 오락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가 자신과 타자를 상상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새겨지는 텍스트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즐겨온 이야기들 속에도 편견은 이미 촘촘히 스며 있다.
이상하고 당연한 관계의 역사
결혼과 가족, 젠더에 관해서는 더욱 예리한 저자의 태도를 만날 수 있다. 일부일처제가 과연 가장 진화한 결혼 형태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지구상에 여전히 남아 있는 모계사회가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도 함께 소개한다. 근친상간 금기와 신부 납치처럼 낯선 관습의 이면에 어떤 사회적 필요가 있었는지도 차분히 되짚는다. 옛이야기 속 인물을 오늘의 잣대로 다시 읽어내는 대목, ‘이모’라는 호칭 하나에 담긴 한국 특유의 가족 감각을 풀어내는 대목도 눈에 띈다. 어떤 관습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가 실은 시대와 문화가 새겨놓은 결과물이었다고 전한다. 가장 사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결혼과 가족의 형태도, 실은 특정한 시대와 사회가 빚어낸 하나의 선택지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의 정서가 만들어진 과정
시선의 대상은 이제 우리 자신, 한국인이다. 한(恨)과 신명, 정(情)과 눈치 같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 어휘가 문화심리학의 언어로 하나씩 풀린다. 한국인이 유독 공정에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냄비근성이라 불려온 쏠림 현상은 정말 부끄러워할 일일까, 자기소개를 유독 어려워하는 심리와 오래도록 미덕으로 칭송받아온 자식 교육열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 모든 물음에 앞서와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타인의 문화를 오해해온 방식을 앞선 장들에서 들여다봤듯, 이번에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가져온 확신이 도마 위에 오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묻는다. 타인을 향한 편견을 걷어내려는 노력은, 나 자신을 향한 확신부터 점검하는 데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해라는, 거창하지 않은 해법
이 책이 유효한 지점은, 문제를 이주민이나 타국과의 관계로만 좁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낯선 종교와 관습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익숙한 콘텐츠 속에 스며든 편견,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과 관계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저자가 짚는 ‘이해 빠진 확신’의 구조는 대상이 무엇이든 반복해서 나타난다. 초문화 시대를 건너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거창하지 않다. 낯선 것을 만났을 때 판단을 잠시 미루고, 그 문화가 어떤 조건에서 생겨났는지 조금 더 알아보는 수고를 들이라는 것. 이 단순한 습관이 쌓여 만드는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문화 문해력’이며, 이는 초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소양을 넘어 정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한 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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