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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98585158 |
|---|---|
| 쪽수 | 168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소설/에세이/시 > 수필
AI추천 이유
가자를 떠나온 한 소녀가 기억을 통해 다시 짓는 고향
팔레스타인의 가족, 여성,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가자지구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헤바 하이에크의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는 가자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그곳을 떠난 뒤의 삶을 오가며, 한 사람이 기억을 통해 자신이 떠나온 장소와 사람들을 다시 불러오는 책이다.
영국 런던에 사는 화자는 가자에서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가족이 함께 모이던 집, 할머니와 이모들, 사촌과 친구들, 음식과 꽃의 냄새,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목소리. 그 기억들 사이에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격, 검문소와 봉쇄, 죽음과 이별 역시 자리한다. 그러나 이 책이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학살과 폭력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농담을 주고받았는지, 소녀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와 같은 일상의 세부가 폭력의 기억과 나란히 놓인다.
짧은 장면들이 서로 이어지고 포개지면서 한 사람의 성장기가 되고, 동시에 가자라는 장소에 대한 기억의 지도가 된다. 화자가 기억하는 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가자를 떠나 낯선 환경에서 성장한 화자에게 기억은 자기만의 온실이다. 자기만의 온실에서 기르는 꽃이다. 정체성에 의해 규정되고 상처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정체성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온 소녀에게, 기억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는 방식이 된다.
기억이라는 온실
떠나온 장소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
『깨어 있는 시간과 꿈꾸는 시간 사이에』에서 고향은 하나의 고정된 장소로 남아 있지 않는다. 떠난 뒤에도 냄새와 음식, 언어와 몸짓, 가족들의 목소리를 통해 계속해서 되살아난다. 화자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자신의 기억을 거듭 들여다본다. 어떤 기억은 따뜻하고 우스우며, 어떤 기억은 고통스럽고 모순적이다. 기억 속 가자는 아름다운 유년의 공간인 동시에 점령과 폭력 아래 놓인 장소이고, 떠나고 싶었던 곳인 동시에 한없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이 책은 그러한 모순을 정리하거나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어긋나는 감정들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 준다. 고향을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을 수 있고,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가족이 부여하는 역할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정체성에 의해 상처받으면서도 바로 그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갈 수도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 책에서 기억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저장고라기보다, 과거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돌보고 다시 배치하는 공간에 가깝다. 다른 곳으로 옮겨진 식물을 살아남게 하는 온실처럼, 화자는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기억 안에서 다시 기른다.
팔레스타인의 여성과 소녀들
하나의 목소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야기
이 책의 중심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와 고모, 사촌과 친구, 그리고 어린 시절의 화자 자신이다. 이 여성들은 ‘팔레스타인 여성’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묶이지 않는다. 각자 다른 성격과 욕망을 갖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동시에 갈등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여자들이 나누는 농담과 잔소리, 결혼과 사랑을 둘러싼 이야기, 몸과 외모에 관한 말 모두 이 책의 중요한 일부다. 팔레스타인 아랍어로 나누는 생생한 대화 속에서 이들은 추상적인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욕망과 결점을 지닌 사람으로 등장한다.
특히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계와 어른이 된 화자가 되돌아보는 세계가 겹쳐지면서, 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거부하며 다시 만들어 가는지가 드러난다. 어른이 된 소녀는 고향과 이 여성들을 그리워하며, 가자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서 여성 그리고 퀴어들 곁에서 고향을 다시 쓴다.
헤드라인 너머의 가자를 만나는 통로
뉴스에서 가자지구는 학살과 죽음의 장소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자는 그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것이다. 누군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싸우며 미래를 상상했던 장소다.
이 책은 삶의 그 구체성을 보여 준다. 점령과 폭력이 이 책의 배경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삶 전체를 설명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지도 않는다. 죽음과 상실 옆에 유머와 사랑이 있고, 폭력과 학살의 한가운데에도 사소한 기쁨과 가족의 소란스러운 일상이 있다.
짧고 파편적인 기억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의 삶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한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한 장소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떠나온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장소에 관한 책이다. 돌아갈 수 없거나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기억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장소를 계속 살아 있게 할 수 있다. 헤바 하이에크는 자신이 떠나온 가자를 기억 속에 옮겨 심는다. 그렇게 자라난 기억의 온실 안에서 한 소녀와 그 소녀의 가족, 친구, 그리고 팔레스타인이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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