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프롤로그
1장 사이보그 사회와 AI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특이점이 온다 - 이언 매큐언, 『나 같은 기계들』
연결체라는 정체성 정치 - 김초엽, 『파견자들』
사이보그의 감각 전환 - 세라 핀스커, 「이차선 너비의 고속도로 한 구간」
생애 창조의 주역은 나 - 테드 창, 「옴팔로스」
모든 인연을 찾아주는 AI 알고리즘 - 켄 리우, 「천생연분」
기억, 스토리텔링 퍼즐 - 테드 창, 「사적인 진실, 감정적 진실」
태고 신화의 정치성 -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정체성과 메타인지 - 스타니스와프 렘, 「가면」
사이보그 가이아와 인류 문명사 - 켄 리우, 『제왕의 위엄』과 『폭풍의 벽』
2장 멀티버스와 시간여행
다선적 시간이 교차할 때 -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다세계 평행우주의 평행자아‘들’ - 테드 창,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다중우주 살인사건의 종말 - 세라 핀스커, 「그리고 (N-1)명이 있었다」
시간의 문: 후회, 희망, 참회 - 테드 창,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먼 별에서 오는 빛, 사람들 사이의 시차 - 김초엽, 「캐빈 방정식」
광기를 건너는 시간여행 -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사랑과 우정, 돌봄과 착취의 딜레마 - 옥타비아 버틀러, 『킨』
우주 시대의 노스탤지어 - 켄 리우, 「내 어머니의 기억」
암흑의 숲과 미래 정치 - 류츠신, 『삼체』
3장 과학기술과 비/인간화
‘되기’와 ‘이해’의 거리, 너와 나의 ‘관계 장치’ - 그렉 이건, 「우리 사이의 간극」
승부사 AI와 예술로서의 바둑 - 벵하민 라바투트,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
과학기술의 문화 정치, 그 딜레마와 가능성 - 테드 창,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나쁜 기억 지우개 - 세라 핀스커, 「기억살이 날」
메타/인류의 문해력 격차 - 테드 창, 「인류 과학의 진화」
번역자의 과제: 외계어 편 - 김초엽, 「숨그림자」
정보자본주의의 함정 - 켄 리우, 「매듭 묶기」
만능을 향한 욕망의 무한 동력 - 스타니스와프 렘, 「세탁기의 비극」
우주 시대의 그림자 노동 - 박해울, 『기파』
이주와 번역의 시대, 우리가 준비할 것들 - 다와다 요코, 『지구에 아로새겨진』
전지적 외계인 시점 - 에두아르도 멘도사, 『구르브 연락 없다』
문밖의 외계인 -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4장 네트워크로 엮인 AI와 인간
사랑, 알게 된 순간 사라지는 그것 - 천선란, 「얼지 않는 호수」; 김초엽, 『원통 안의 소녀』
쓸모없음의 가치 - 김보영, 『종의 기원담』
확률 너머의 희망에 대하여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오프라인 콘서트의 신체성과 현장성 - 세라 핀스커, 「열린 길의 성모」
공감 없는 초공감의 역설 - 옥타비아 버틀러,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이야기라는 마술과 정체성 정치 - 다와다 요코, 「개 신랑 들이기」
AI는 우정을 학습할 수 있을까? -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 - 켄 리우,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5장 인구 재생산과 생명 정치
여자 없는 출산은 가능한가?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복제인간은 인간인가? - 애드워드 애슈턴, 『미키7』
모성의 분할, 돌봄의 기계화 - 테드 창,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부/모 ‘되기’의 수행성 - 그렉 이건, 「큐티」
맞춤 아이의 역설 - 그렉 이건, 「유진」; 「너 혼자서?」; 「꿈 공장」
늙어갈 자유, 생명의 자본화 - 켄 리우, 「호(弧)」
고장, 노화, 쓰레기 - 김초엽, 「최후의 라이오니」
자본과 기술의 난산 - 그렉 이건, 「적절한 사랑」
6장 디지털 망자와 포스트휴먼
디지털 원격 임종 - 켄 리우, 「곁」
디지털 망자와 디지털 착취 - 박해울, 『세 개의 적』
죽음 관리와 무덤 친구 - 세쿼이아 나가마쓰, 「당신이 바다로 녹아 없어지기 전에」
죽음을 향한 선택, 삶을 향해 끝까지 - 세쿼이아 나가마쓰, 「당신의 부패에 관한 노래들」
살아 있다는 것, ‘되어가기’의 수행성 - 그렉 이건, 「내가 되는 법 배우기」
애도와 용서 - 세쿼이아 나가마쓰, 「추도사에 가려진 3만년」, 「웃음의 도시」, 「돼지 아들」, 「애도 호텔」; 천선란, 「뼈의 기록」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의 역설 - 다와다 요코, 「헌등사」
애도를 위한 닻 - 김초엽, 「관내분실」
에필로그
주
출전 목록
[본 문]
2025년 5월 말, 한남동의 리움미술관에서 《피에르 위그: 리미널》 전시를 관람했다. 티켓의 바코드를 찍고 입구로 들어가는데 전시장이 컴컴하고 공기가 묵직해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왼쪽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는 얼굴 없는 여자가 벌거벗은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검고 둥근 판이 얼굴에 씌워져서 마치 얼굴이 없는 것 같다. 순간, 거대한 공포감이 육체를 압도했다. 조명이 켜진 아래층으로 내려가 전시를 관람하고 올라오면서 나는 불안감의 진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는 SF 영화에서처럼 최첨단 기술로 세팅된 금속성의 세계가 아니라 사막처럼 광활하고 암석처럼 단단한, 검고 깊은 물질성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원시적 공포감, 미래세의 인류는 벌거벗은 생명체로 무한 우주를 독대하리라는 불안감은 리미널의 감각 그 자체였다 . - 13~14쪽
장르로서의 SF 소설과 영화에서는 대개 인류 문명사의 원시적 퇴행을 가상하기보다 기술적 차원에서 최첨단의 발전을 이룬 미래세 문명을 등장시키는 편이다. 재앙과 불행이 가득한 디스토피아일지라도, 그 세계에는 아직 인간‘들’이 존재하고 ‘사회’가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 함께 감당하게 된다면 고독과 불안, 공포감은 완화될 것이다 . - 14쪽
SF는 미래세에 대한 감각과 사유를 질문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특히 21세기에 창작된 SF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초래할 미래를 자의적인 상상력으로 그리기보다, 실재하는 과학 이론과 개념을 활용해 재현의 감각을 구체화한다. -15쪽
이 책의 글쓰기 방식은 SF를 온전히 완결된 문학 작품으로서 비평하는 방식과는 결을 달리한다. SF 텍스트를 미학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미래세를 디자인하는 작가의 아이디어에 반응해서 작품이 제시하는 질문을 재구성하는 데 주력했다. SF을 매개로 삼아 미래와 현재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교섭하고 대화하면서 전대미문의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통찰력을 공유해 보려고 했다. -17쪽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은 가속화되는 문명의 변화를 사유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기술문명과 정보공학의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안내된다. 편리성, 효율성, 합리성, 경제성, 대세라는 그럴듯한 명분 속에서. 겉으로 보기엔 인터넷, 스마트폰, 디지털 플랫폼, 일상에 안착한 각종 AI에 대한 진입 장벽이 허물어져 문화 간 연결성이 강화되는 듯하다. AI를 통해 각종 편의시설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기에 편리성도 확보된 것처럼 보인다. 시간도 절약하고 체력도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쩐지 약탈당한 느낌이다. 일상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이 우위를 점하다 보니, 불편함을 견디는 일은 어리석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 -35쪽
21세기의 SF는 과학과 문화, 상상과 실재가 스며들 듯 넘나들기에 독자가 작품 속 미래세를 현대사회로 환치해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SF를 매개로 해서 작가가 고민하는 것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그 미래를 끌어당길 현재의 수행성이다.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주체는 우리 자신이다. 나를 대신해 나의 미래를 만들어 주는 존재는 없다. 만약 그런 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저 믿고 따르기보다 의심하는 게 마땅하다. 우리는 누군가 미리 만들고 준비해 놓은 미래세의 소비자가 아니라 주인이다. 지구인과 온 우주의 모든 생명체와 광물질까지도 모든 시간의 주인이다. - 377~3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