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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67072511 |
|---|---|
| 쪽수 | 256쪽 |
| 크기 | 규격 외(152mm X 225mm, 신국판) |
| 제품구성 | 단행본 |
- 인문/역사 > 사회학
AI추천 이유
‘노력’보다 ‘운’이 중요해진 사회
언제부턴가 ‘성공’을 설명하는 말에서 노력보다는 ‘운’의 비중이 커졌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느 지역에서 성장했는지,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지에 따라 삶의 출발선은 크게 달라진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전에 집을 샀는지, 주식이나 코인의 상승장에 올라탔는지와 같은 우연한 선택과 타이밍까지도 자산과 계층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 성실하게 일하면 조금씩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점점 힘을 잃는 반면, 남들보다 먼저 기회를 붙잡거나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을 뒤집었다는 성공담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거나 우연히 시대의 흐름을 잘 탄 경우에도 성공이 대개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 또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떠안곤 한다. 즉, 운이 성공에 미친 영향은 포장되고 지워지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원래 노력과 성취를 존중하기 위한 약속이었지만, 어느 순간 운에 의해 이미 벌어진 격차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언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식과 부동산, 코인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높은 수익을 향한 개인의 욕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노동과 저축만으로는 원하는 삶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인식이 커질수록 ‘이번에는 나도’라는 기대가 사람들을 새로운 복권판으로 이끄는 것이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 누구는 특권을 누리고 누구는 기회에서 배제되었다는 생각이 세대와 계층 사이의 분노로 이어지고, 서로가 받은 몫을 비교하고 계산하는 일이 사회적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회에서 ‘공정’만큼 자주 호출되는 말도 없다. 채용이 공정했는지, 보상이 공정했는지, 세금과 복지가 공정한지, 특정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이런 주제들이 도마에 올라온다. 공정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정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사회가 더 정의로워졌다는 확신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세대 갈등과 계층 격차, 공동체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자신의 몫을 지키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우리는 공정을 그토록 이야기하면서도 왜 여전히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공정을 외칠수록 정의는 자꾸 길을 잃는가
저자는 이 모순적인 풍경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복권 사회’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복권은 단순히 로또와 같은 확률 게임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복권 사회란, 개인의 노력과 선택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성공과 실패를 크게 좌우하면서도, 그 결과가 마치 개인의 온전한 실력에서 비롯된 것처럼 정당화되는 사회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 타고난 지능과 재능, 외모와 성장 환경처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은 삶의 출발선을 결정하는 ‘유전자 복권’이 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러 장의 당첨권을 손에 쥔 채 출발하고, 어떤 사람은 애초에 ‘꽝’인 복권으로 인생을 시작한다.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총 8장에 걸쳐 확장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과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공정성과 공의를 ‘정의의 빙산’이라는 하나의 구조 안에서 다시 바라본다. 이어서 유전자 복권과 능력주의가 출발선의 우연을 어떻게 실력으로 바꾸어 설명하는지 파헤친다. 나아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는 ‘존재 목적’, 더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과 미래 세대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긍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서로의 고유한 능력을 모으는 ‘코즈(Cause)’를 공의의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후반부에서는 공의의 부재가 사회적 신뢰와 행복, 정당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살펴보고, 인공지능(AI)이 노동과 전문성, 계층구조를 뒤흔드는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의의 기준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공정을 대체할 새로운 정의가 아니라, 공정을 다시 제대로 작동하게 할 토대다. 눈앞의 몫을 얼마나 정확하게 나눌 것인가에만 매달리는 대신, 그 몫을 만들어내는 공동체 자체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공정성과 공의를 정의의 한 몸으로 회복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복권 사회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제시하는 출발점이다.
‘지금 사회가 공정한가’를 넘어 ‘미래 세대에 어떤 가치를 남길 것인가’로
복권 사회의 문제는 단지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복권 당첨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며 타인과 자신의 몫을 비교하고 계산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그럴수록 ‘공정’은 공동체를 위한 기준이 아니라 내 몫을 지키기 위한 제로섬의 언어가 되기 쉽다. 저자는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나는 정당한 몫을 받았는가’를 넘어 ‘우리가 만든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도 지속 가능한가’를 묻자는 것이다. 지금의 성공과 성취에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운과 사회가 제공한 기회가 함께 작용했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산을 공동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할 때, ‘공의’의 가능성이 열린다.
특히 이 질문은 AI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지식과 전문성이 빠르게 보편화되고 인간의 노동이 재편될수록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졌는가보다 그 능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다. 저자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한 세대가 완성해 물려주는 결과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의 작업으로 바라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가 아니다. 복권 당첨을 꿈꾸는 사회를 넘어,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서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회를 남길 수 있는가. 공정을 넘어 공의로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질문에 함께 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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