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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ISBN-13 : 9791173327674 |
|---|---|
| 쪽수 | 4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양장 |
- 인문/역사 > 동양철학
AI추천 이유

자아가 없는데 누가 윤회하고 누가 해탈하는가?
불교사 2,500년을 관통해온 가장 첨예한 논쟁
그 오랜 논쟁에 마침표를 찍는 일곱 번의 강의
두 개의 불교, 하나의 붓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가르침은 하나로 남지 않았다. 한쪽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무아(無我)’를 강조했고, 다른 한쪽은 모든 것의 바탕에 하나의 마음, 즉 ‘일심(一心)’이 있다고 말했다. 대승불교가 등장한 이래, 이 둘이 같은 붓다의 가르침인가를 두고 논쟁은 한 번도 가라앉은 적이 없다. ‘대승은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오래된 공격, 초기불교만을 원형으로 떠받드는 서구 학계의 시선, 그에 흔들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불교 전통을 낮춰본 시간까지, 현재에도 여전히 이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아가 없다면 대체 어떻게 윤회가 성립하는가? 자아가 없다면 해탈로 나아가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 채 덮어두었던 이 질문들이, 실은 같은 논쟁의 다른 얼굴이다. 40여 년간 마음의 근원을 파고들어 온 철학자 한자경은 이 논쟁에 정면으로 뛰어든다.
없는 것은 ‘나’가 아니라 ‘실체화된 나’다
저자가 가장 먼저 걷어내는 것은 불교에 대한 오해다. 무아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의 선언이 아니다. 몸도 감정도 생각도 인연 따라 모였다가 흩어질 뿐, 파초 줄기를 한 겹씩 벗겨내도 끝내 단단한 심이 나오지 않듯이, 그 안에 붙잡을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이 책의 결정적인 통찰이 나온다. 몸과 마음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그 마음만은 번뇌 너머에서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는 것. 인연 따라 생겨난 것들 속에 ‘나’라는 실체는 없지만, 그것을 깨닫는 마음 자체는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이 곧 일심이다. 그러니 뒤집어 말할 수 있다. 무아라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있기에 무아가 성립한다.
의심이 깊어질수록 답도 깊어진다
이 책의 매력은 독자가 품을 법한 의심을 저자가 먼저 대신 물어준다는 데 있다. 하나의 의심이 풀릴 만하면 더 깊은 의심을 꺼내 든다. 자아가 없다면 전생의 업은 누가 짊어지고 오는가? 12지연기의 고리는 대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해탈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마음조차 없다면, 수행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저자는 이 질문들을 신비화하거나 얼버무리지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과 영혼이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을 나란히 물리치고, 그 사이의 제3의 길을 논증으로 뚫어낸다. 또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삶의 경험이 씨앗처럼 쌓였다가 다시 몸과 세계로 피어난다는 것.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세계조차 마음이 그려낸 것임을 하나씩 밝혀간다. 그 깊이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처음의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풀린다. 어렵기로 이름난 불교 교학의 봉우리들이 하나의 등산로로 이어지는 지적 쾌감이 여기에 있다.
그림은 지워도 종이는 남는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히는 것은, 저자가 독자를 혼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운 대목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구체적인 비유와 예시를 꺼내 든다. 가령 종이와 그림의 비유가 그 하나다. 우리의 삶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가는 일과 같다. 욕망을 따라 업을 짓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면, 수행은 그 그림을 지워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든 지우든, 바탕의 종이는 처음부터 거기에 있다. 우리가 놓치고 살아온 것은 바로 그 바탕이다. 이런 비유들이 책 곳곳에서 독자를 기다린다. 잎사귀를 한 겹씩 벗겨내도 끝내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 파초나무, 자신을 한 송이로만 알던 꽃이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모두가 한 생명임을 깨닫는 장면, 화살은 한 번 맞았을 뿐인데 스스로 두 번째 화살을 쏘아 괴로움을 키우는 우리의 습관,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꿈에서 깨어나는 일까지.
평생의 두 화두가 한 권에서 만나다
‘무아’와 ‘일심’은 저자가 평생 머리에서 떠나보낸 적 없는 두 화두다. 한때는 무아를 한 권으로, 또 한때는 일심을 한 권으로 써냈던 그가, 마침내 그 둘을 하나로 잇는다. 그리고 이 작업은 동시에 하나의 당당한 변론이기도 하다. 원효에서 지눌로, 다시 오늘의 선방으로 이어져온 한국 사상의 물줄기가 붓다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깊이를 끝까지 밀고 간 것임을, 이 책은 치밀하게 논증한다. 여정의 끝에서 독자가 만나는 결론은 뜻밖에 단순하다. 부처는 수행 끝에 비로소 만들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부처임을 깨닫는 일이라는 것.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되지 않듯, 좌선이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수행은 없던 보물을 얻는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 안에 있던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다.
“본심은 어떤 마음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지눌은 답했다. “지금 묻고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그 본심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당신 안에서 묻고 있는 그 마음. 그것이 이 책이 가리키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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