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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73830624 |
|---|---|
| 쪽수 | 416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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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설정을 비틀고 뭉개고 뒤엎어 버리는 SF 풍자소설계의 ‘원탑’ 작가의 특별한 소설
화형, 약탈, 배신, 혐오 속에서 인간성을 체득하며 점점 인간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AI
통렬한 아이러니와 뭉글뭉글한 카타르시스가 뒤엉킨 블랙코미디
애슈턴은 기존 SF 작가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영화, 소설 등 서사를 다룬 창작 영역에서 ‘인간 VS 기계’의 설정은 대부분 존립이 위태로워진 인간의 위기, 인간성 상실 등을 소재로 삼아왔다. 하지만 애슈턴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서사를 여러 갈래로 비틀고 뒤엎어 버린다. SF 소설 형식 또한 작가에게는 현재의 우리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고찰해 보기 위해 선택한 수단으로 보인다.
어떠한 기술의 도움 없이 인간의 특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휴머니스트 진영의 논리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인본주의를 외치는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지 차츰 본색이 드러난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건 AI인 멀이다. 이 소설은 휴머니스트군 대 연방군의 전투를 검은개미 대 붉은개미의 싸움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보던 멀이 차츰 인간성을 획득해 나가고, 섬뜩한 인간들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멀의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게 된 건 인류를 위한 숭고한 사랑이나 희생 같은 거창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던 멀은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인물들과 인간적인 교류(갈등을 겪기도 하고 합심하고, 농담을 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등)를 나누게 되면서 변화한다.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정보와 이론이 가득하지만, 실제 경험이 전무한 멀은 평범하지 않은 인간들과 쉽지 않은 소통을 이어나간다. 멀과 동행하는 이들은 엄마의 그릇된 욕망 때문에 열여덟 살인데도 다섯 살 아이의 몸로 살아가야 하는 소녀, 휴머니스트군이었다가 포로가 된 젊은 남성, 세상사에 별 관심 없이 안락하게 살다가 세파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 휴머니스트군과 연방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나이도 종잡을 수 없는 미스터리한 여성 등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단한 인물들이다. 멀은 이들 사이에서 데이터로만 축적해 온 인간에 대한 개념과 이해를 우정, 배려, 희생 등 구체적인 감정으로 체화하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가 되어간다.
애슈턴은 전작에서 역설적인 상황과 촌철살인의 대사로 ‘인간성’을 탐구해 왔다. 『미키7』이 복제인간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라면, 『멀 혹은 멀의 세계』에서 작가의 시각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전작에서 주변인물들이 주인공에 비해 비중이 커 보이지 않은 데 비해 이 소설에서 주인공 멀뿐 아니라 멀과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는 인물들의 특성이 도드라지는 이유다. 작가는 또한 기술 발전이 야기하는 새로운 불평등과 양극화, 서로 다른 계층을 향한 혐오, 점점 모호해지고 갈등을 빚어내는 인간의 기준, 핵미사일의 작동 버튼만큼 무서운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남용 등 미래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멀 혹은 멀의 세계』는 유쾌한 블랙코미디와 속도감 있는 모험 속에 다채로운 인물들이 마주하는 사건을 통해 진일보한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