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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98773326 |
|---|---|
| 쪽수 | 422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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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 연극/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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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결국 오늘을 묻는 일이다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과 우주 시대까지, SF라는 렌즈로 다시 읽는 인간과 사회
SF, 즉 공상과학은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상의 산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좋은 SF의 상상은 언제나 현실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한쪽 발을 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는 상상이 왜 굳이 현실의 가능성과 과학적 근거를 붙들고 있는가. 어쩌면 그 이유는 SF가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의 조건을 낯설게 비틀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훈의 『SF와 사회: 미래를 읽는 8개의 렌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에서 SF는 먼 미래의 기계와 우주선을 구경하는 오락물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 기후 위기, 인구 변화, 인공지능, 자본주의, 우주 개발까지 우리 사회가 지나왔고 또 앞으로 마주하게 될 문제들을 비추는 렌즈로 기능한다. 저자는 SF를 통해 사회 변화의 징후를 읽고, 기술이 인간의 삶과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지 다양한 작품과 사회사의 흐름 속에서 짚어 나간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에서 출발한다
화성인의 침략에서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를 읽어 낼 때
이 책은 산업혁명에서 시작해 디지털 혁명과 기후 위기, 인구절벽,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자본주의와 우주 개발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경험한 변화와 앞으로 맞닥뜨릴 가능성을 SF 콘텐츠와 함께 살펴본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역사를 설명하고 그 곁에 작품을 단순히 덧붙이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살피고, 그 변화가 SF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과장되고 변형되었는지를 교차시키며 읽는다.
외계인의 침공을 그린 H. G. 웰스의 『우주 전쟁』에서 저자는 단순한 침략 서사 너머에 당대 유럽 제국주의의 모습을 포착한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인간을 학살하는 화성인의 모습은 군사력과 기술력을 앞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탈했던 유럽 열강을 떠올리게 하고, 화성인과 인간 사이의 철저한 비소통은 식민지의 원주민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제국주의의 시선을 연상시킨다. 결국 외계인은 두려운 타자이면서 동시에 인간 문명이 과거에 보여 준 자신의 얼굴이 된다.
이러한 독해는 SF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는다. 『멋진 신세계』에서 대량생산의 논리가 인간의 삶까지 규격화하는 사회로 확장되고, 『타임머신』의 미래 인류가 산업사회와 계급 분화의 극단을 보여 주듯 SF 속 낯선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기술 발전과 자본, 노동과 계급, 전쟁과 제국주의 같은 당대의 현실이 상상력이라는 프리즘을 거쳐 새로운 사회 구조와 인간형으로 재구성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SF를 읽는 일은 이야기 속 설정의 기발함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상상이 어떤 시대적 불안과 욕망에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익숙한 현실의 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과장하거나 뒤집어 보여 주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던 문제도 시간과 공간을 멀리 이동시키면 오히려 그 윤곽이 선명해진다. SF가 사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해석 도구가 될 수 있는 이유다.
『SF와 사회: 미래를 읽는 8개의 렌즈』가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의 시대까지 긴 시간을 횡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 왔지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의 노동과 삶, 사회의 권력관계 역시 함께 재편되어 왔다. 산업혁명기의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하기 시작했다면, 오늘날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노동까지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시대의 기술 변화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기술의 진보와 사회의 진보가 반드시 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SF는 예언이 아닌 질문이다
아직 오지 않은 세계가 우리에게 묻는 것
그렇다면 왜 하필 SF인가.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다른 장르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SF가 갖는 특별한 힘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경험하게 한다는 데 있다. 과학적 가능성과 현실의 징후를 토대로 한 상상은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눈앞의 구체적인 풍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막연한 경고가 하나의 세계가 되고, 숫자로만 존재하던 문제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된다.
오염과 자연재해, 해수면 상승으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그리는 작품이나 물 부족으로 식수가 새로운 계층의 기준이 되는 미래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기후 변화와 자원 불평등을 조금 더 먼 곳까지 밀어붙인 결과에 가깝다. 현실에서는 통계와 전망으로 접하는 문제가 SF에서는 한 개인의 삶과 선택, 생존의 문제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독자는 단순히 위험의 규모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변화가 인간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까지 상상하게 된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막대한 생산성과 풍요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그 자체로 더 나은 사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기술을 소유한 일부에게 부가 집중된다면 우리는 이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저자는 〈AI 2041〉 등의 사례를 통해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금융과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짚는다. 결국 기술의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둘러싼 제도와 분배의 방식이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수록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도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딥페이크와 가상현실의 문제 역시 기술의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판단 기준 자체를 흔든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무엇을 믿을 것인지, 기억과 역사는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다시 결정해야 한다. 우주 개발 또한 단지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달과 행성의 자원은 누구의 것이며, 새로운 영역에서도 인류는 지구에서 반복했던 경쟁과 착취를 되풀이할 것인가. 기술이 인간의 활동 반경을 넓힐수록 윤리와 제도의 범위 역시 함께 넓어져야 한다는 문제가 따라붙는다.
이처럼 SF는 현실에서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극단적인 상황 속에 배치함으로써 그 본질을 선명하게 만든다. 이미 모든 변화가 끝난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서사의 형태로 시뮬레이션해 보는 셈이다. 그래서 SF를 읽는 독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그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를 함께 검토하는 참여자가 된다.
SF가 비추는 세계는 결국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선택을 더 크게 드러낸다. 같은 기술도 어떤 사회적 합의와 제도 속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새로운 불평등과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 가상현실과 우주 개발을 서로 다른 주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인간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인 동시에,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SF를 읽고 보는 일은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 속 설정과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자본과 권력, 노동과 윤리, 인간의 욕망까지 함께 보게 된다. 하나의 콘텐츠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사회의 구조를 읽는 단서로 확장되는 순간, SF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장르가 된다.
『SF와 사회: 미래를 읽는 8개의 렌즈』는 그 과정을 보여 주는 한 권의 안내서다. SF를 소비하던 독자가 작품을 통해 사회를 읽고, 기술과 제도의 관계를 살피며,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세계의 방향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는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과연 어떤 오늘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