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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규격 정보
| ISBN | ISBN-13 : 9791176612951 |
|---|---|
| 쪽수 | 300쪽 |
| 크기 | 기타 규격 |
| 제품구성 | 단행본 |
이 책이 속한 분야
- 인문/역사 >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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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줄여야 성공한다!”
압축 성장의 신화는 어떻게 우리의 밤을 빼앗았나
“잠이 오냐?”라는 말에는 한국 사회가 잠을 바라봐온 오래된 태도가 압축돼 있다. 할 일이 남았는데 잠을 자도 되느냐는 질책,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을 성실함과 의지의 증거로 여기는 문화다. 『무수면 사회』는 오늘날의 불면을 스마트폰과 카페인에서만 찾지 않고, 한국 사회가 성장해온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에는 100여 년 전 일본 오사카 방적공장에서 밤잠을 빼앗긴 채 일했던 조선인 소녀 노동자들의 노동요가 등장한다. 이후 한국은 초고속 산업화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야근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고, 직장인들은 긴 통근 시간을 감수했으며, 청소년들은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의 경쟁 논리 속에서 잠을 줄였다. 저자는 한국이 경제적 풍요를 이루는 동안 시간의 가난, 즉 ‘타임 푸어’가 일상화되었다고 지적한다. 2016년 OECD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회원국 평균보다 31분 짧았다는 사실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날의 심야배송으로 이어진다.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누군가는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분류하고, 누군가는 도로를 달린다. 맞벌이 가정과 1인 가구에는 더없이 편리한 서비스지만, 그 편의를 가능하게 하는 야간 노동자의 수면과 건강은 어디에 놓여 있을까. 저자는 새벽배송을 단순히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대신, 소비자의 편익과 노동자의 건강, 기업의 효율과 사회적 비용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를 묻는다. “새벽은 상품이 도착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잠과 회복의 시간”이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사회학적 시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잠의 본질부터 수면 친화적 삶까지
가장 사적인 잠의 가장 사회학적인 얼굴
『무수면 사회』는 잠의 본질에서 출발해, 불면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건과 마음의 구조를 차례로 따라간다. 1장에서는 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며, 한국 사회의 수면 부족 문화를 되짚는다. 2장에서는 자본주의와 수면 불평등, 심야 노동, 전쟁과 난민의 밤을 통해 잠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분석한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지만, 밤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일자리, 소음과 빛 공해 등 열악한 주거 조건에 노출되기 쉽고, 여성은 일과 육아의 이중 부담으로 잠을 잃는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수면 불평등’의 문제로 읽는다. 잠을 개인의 건강 관리 차원에서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계급과 노동, 정치, 젠더 등의 격차가 밤이 되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어 3장에서는 밤마다 되살아나는 후회와 자책, 모멸감과 불안의 메커니즘을 살피고, ‘예정된 걱정 시간’ 같은 인지행동치료의 방법과 호흡·이완 등을 소개한다. 4장에서는 저녁과 밤, 아침이 지닌 감각과 의미를 되짚으며 잃어버린 하루의 리듬을 회복하는 방법을 살핀다. 마지막 5장에서는 등교 시간, 산모의 수면, 돌봄, 연민, 사랑과 우정 등을 통해 수면 친화적 사회의 조건을 제안한다. 특히 한국 청소년의 밤은 입시 경쟁과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책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평균 수면 시간은 약 5시간 32분에서 6시간 수준이며, 고등학생의 약 47퍼센트가 하루 6시간 미만을 잔다. 반대로 등교 시간을 늦춘 사례에서는 수업 집중도와 정서 안정이 개선되고 지각이 줄어드는 변화가 보고되었다. 개인에게 “일찍 자라”고 말하기 전에 학교와 사회가 실제로 잠잘 시간을 허락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모의 수면 역시 개인의 육아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밤낮없이 깨어나는 신생아를 돌보면서도 회복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핵가족화와 관계망의 약화로 돌봄을 혼자 떠안는 산모가 늘었다. 결국 “누가 잘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누가 안전하고 보호받는가”라는 질문과 맞닿는다.
잠을 빼앗고, 다시 잠을 판다
‘무수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시 밤을 되찾을 것인가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수면이 거대한 산업이 된 역설이다. 실제로 세계 수면 관련 의료·산업 시장이 750억 달러, 국내 시장 역시 3조 원을 넘어섰으며, 수면 클리닉, 수면제와 건강기능식품, 침구, 각종 슬립테크가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자본주의가 한편에서는 사람들을 더 오래 깨어 있도록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빼앗긴 잠을 다시 상품으로 판매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무수면 사회』가 개인의 책임을 사회 탓으로 돌리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불면 경험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며,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함께 들여다본다. 4장에서는 하루를 무한히 연장하는 24시간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저녁과 밤의 감각을 복원하고, 좋은 잠은 잠자리에 눕는 순간이 아니라 아침부터 준비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은 “오늘 몇 시간을 잤는가”가 아니다. 왜 쉬는 동안에도 불안한지, 나의 하루에는 낮과 밤을 가르는 경계가 있는지, 내가 누리는 편리함이 누군가의 밤을 희생시키고 있지 않은지, 서로가 안심하고 잠들기 위해 어떤 관계와 사회가 필요한지를 돌아본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수면 친화적 사회란 모두가 똑같이 일찍 잠드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의 몸이 요구하는 휴식과 회복이 존중받는 사회다. 『무수면 사회』는 우리가 어떤 속도로 일하고 소비하며 경쟁하고 돌볼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묻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