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경제학 학습을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되길 기대하면서
올해로 저자가 경제학을 공부한 지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경제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그 폭과 깊이는 넓어지고 깊어져 저자와 같은 범재는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정도이다. 경제학의 발전이 황새의 걸음이라면 필자는 뱁새에 불과하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현대 경제학을 양자역학이나 세포생물학처럼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전문 학문으로 분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의 분류와는 달리 미시경제학은 저자와 같은 범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심정도 집필 동기 중의 하나다.
저자가 미시경제학을 배울 때 국내 교과서는 15장, 600쪽 정도의 분량이었고 불과 2, 3권 정도만이 교과서로 쓰인 정도였다. 요즈음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무려 20여 개의 장, 천 쪽에 가까워 초심자에게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상당한 기간 유능한 교수자의 도움 없이는 학습할 수 없는 내용이고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들이 시중에 많이 출간되어 있다. 50년 전에는 미시경제학 교과서 시장이 독점력이 강한 과점시장이었다면 요즈음은 독점에 방점이 찍히는 독점적 경쟁시장으로 진화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아마도 독자들은 부족함으로 인한 선택의 고민이 아니라 풍요 속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겪지 않나 생각한다. 능력 있고 열정적인 학자들이 우수한 책을 많이 공급하고, 선의의 경쟁을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학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이렇게 우수한 미시경제학 교과서가 포화상태인데도, 저자가 중급 미시경제학 수준의 책을 내는 것은 경제학 학습이 초급 단계를 벗어난 독자들에게 좀 더 확실하게 미시경제학을 학습하게 할 목적에서이다.
경제학을 코끼리에 비유한다면, 미시경제학은 코끼리의 ‘코’에 해당한다고 본다. 코끼리가 코끼리인 것은 ‘코’의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이듯 미시경제학이 경제학을 가장 경제학답게 만든다고 본다. 경제학이 자랑하는 ‘차가운 머리’로 표현되는 논리적 정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 핵심에 미시경제학이 있다. 하지만 코끼리의 코가 코끼리의 모든 것이 아닌 것처럼 미시경제학을 경제학의 전부인 양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미시경제학은 경제학의 가장 밑받침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은 정답이 없다고 한다. 모순 덩어리인 인간과 인간의 집합인 사회를 분석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학이 요구하는 엄밀성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주어진 여건 내에서 합리적인 행동을 추구하는 인간을 분석하는 데 미시경제학만큼 설명력이 있는 학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미시경제학의 엄밀성을 철저히 학습함과 동시에 인간의 비합리성 영역이나 역사성·철학성도 같이 학습한다면 큰 틀에서 사회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동시에 작은 틀에서도 세상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이 책 역시 수많은 수식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은 약 180개 정도이고, 수식은 세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또 200여 개의 예제와 150여 개의 연습문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문제에 풀이와 답을 제공하고 있다. 700쪽에 가까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일견 질릴 정도의 많은 분량, 어려운 수식, 복잡한 그림에 관심조차 갖기 싫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찬찬히 공부해 보면 논리적 합리성과 치밀함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쓰이는 수학 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고 그림은 2차원 공간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즐거움 혹은 노력의 성과를 경험할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데, 미시경제학은 철저하게 수식과 그림 그리고 표로 그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가장 확실하고도 정확하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정답을 가지고 있는 학문이라는 점이 매력이자 맹점이다. 자연과학에서의 진리라고 믿었던 사실도 변하는 데 정답을 추구하는 미시경제학에서의 정답 역시 당장은 맞지만 틀릴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나름의 차별화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각 주제마다 정형화된 문제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반화시켜 공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여러 숫자를 대입하여 스스로 문제를 만들 수 있고 답도 찾을 수 있게 하였다. 둘째, 미시경제학의 최대 응용 분야인 국제무역이론과 산업연관분석을 포함하였다. 여기에 게임이론에서 좀 더 심도 있고 다양한 예를 제공하였다. 셋째, 주제와 부합하는 이야기 보따리를 곳곳에 배치하였다. 미시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친 학자들의 일생과 업적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특히 2024년 저자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사마천의 사기 등 동서양의 고전을 공부하는 교내 교수학습모임에 참여하여 다시금 배운 고전의 지혜를 이야기 보따리에 담아보았다. 또 이 책의 내용과 부합하는 일상에서의 예도 보여줌으로써 미시경제학의 현실성을 확인할 수 있게 노력하였다.
이와 더불어 한계점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복되는 내용과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처음에서 출간까지 거의 저자 혼자의 힘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실수나 오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수식으로 연습문제가 가능한 주제만 모았기 때문에 교과서로서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국내외의 우수한 저작과 자료들로부터 큰 영감과 자양분을 얻었음에도, 그 출처를 본문에 일일이 명기하지 못하고 참고문헌에 수록하는 것으로 대신한 아쉬움도 크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점 독자 여러분의 넓은 양해를 구한다. 출간 이후 확인되는 수정·보완 사항은 자유아카데미 홈페이지 자료실(www.freeaca.com)을 통해 게시할 예정이니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부족한 글에 대한 강호제현(江湖諸賢)의 아낌없는 가르침을 언제나 겸허히 기다리겠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길게 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개인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 임이 틀림없다. 조선 시대 왕의 평균수명이 47세 정도였고, 재임 기간이 50년을 넘은 왕은 영조 한 사람밖에 없다. 심지어는 미국 역사의 오분의 일, 경제학 역사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꽤 긴 시간 미시경제학을 공부한 저자로서는 차별화된 책 한 권은 남겨야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지...”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키우는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정세영(1938∼2005) 회장이 한 말이다. 저자 역시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지.” 어쩌면 겁 없이 달려드는 무모함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 “드디어 글 감옥에서 벗어난다.”라고 표현하면서 저작 활동을 감옥살이에 비유한 조정래 작가의 후기도 생각난다. 저자는 ‘글 감옥’에 더해 ‘문제 형벌’에서도 벗어나는 기분이다.
경제학 책으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많은 분의 도움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물론 김광배·임윤덕 큰 고모님 부부, 모교의 곽상경ㆍ이학용 은사님들, 혜화학원 대전대학교 관계자들, 저자에게 출판의 기회를 만들어 주신 자유아카데미 관계자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뜻을 남기고 싶다. 아내를 비롯한 식구들의 도움 역시 큰 힘이 되었다. 초고부터 꼼꼼하게 읽고 교정을 봐 주신 장기성 선생님, 필요한 책과 자료를 구입해 주고 거기에 더해 장기간 연체에도 편의를 봐 준 도서관 직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박건휘·박리휘·임라윤·임류이 등 어린 손주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 보잘 것 없는 책이 경제학의 핵심에 해당하는 미시경제학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오해를 없애고 중급 경제학도에게는 좀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학습할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의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 본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과는 약간 다른 뉘앙스의 사자성어를 쓰면서 배우는 지혜, 저학상장(著學相長)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2026년 8월
대전 전민동에서 임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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